[박종면칼럼] 이제 MBK같은 ‘메기’도 필요하다

한앤컴퍼니 IMM 스틱 등 누구도 안하는 일

주주가치 제고 밸류업 등 자본시장 변화 배경

재계 나쁠 것 없어…“지배구조 선진화 계기"

‘메기 효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부가 정어리가 들어 있는 수조 속에 천적인 메기를 넣어서 정어리들이 죽지 않게 운반했던 것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미꾸라지들이 사는 연못에 메기를 풀어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움직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메기 효과’는 상식과는 다르게 막강한 포식자와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큰 위협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잠재력을 끌어올림으로써 전체로 보면 플러스 효과를 얻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고전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서경’에는 ‘군자 소기무일’(君子 所其無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군자는 불편함에 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불편함이 사람을 깨어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장가 구양수는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말도 했는데 삶이 어려워진 뒤에야 더 뛰어난 작품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가장 뜨거운 경제 뉴스가 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영풍-MBK 연합군이 이기느냐 아니면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한 최윤범 회장 등 최씨 가문이 이기느냐입니다. 싸움의 승자는 영풍-MBK 연합군이 공개 매수가격을 다시 최 회장 측과 동일한 83만원으로 올림으로써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싸움이 그야말로 ‘쩐의 전쟁’이 되면서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망한 경우처럼 안타깝지만 고려아연도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번 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고려아연의 주인은 장씨도 최씨도 아닌 사모펀드나 다른 기업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은혜가 해(害)를 낳는다고 하지요. 역사적으로 반역자의 대부분은 가까이 두고 극진히 대해 주던 사람입니다. 황제도 임금도 대부분 가장 친한 사람의 손에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업도 가장 친한 사람 때문에 실패합니다. 70년 동업으로 오늘의 고려아연을 일군 장씨와 최씨 일가도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와는 별개로 또 하나의 이슈는 사모펀드 MBK의 행태입니다. 국내 대표 토종 사모펀드 MBK가 헤지펀드도 아닌데 마치 행동주의 펀드처럼 움직이는 것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집니다. 분명한 것은 국내에 한앤컴퍼니 IMM 스틱 등 많은 대형 사모펀드가 있지만 MBK 외에는 이같이 경영권 분쟁에 과감하게 뛰어들 펀드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앤컴퍼니나 IMM도 MBK처럼 해외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대부분 자금을 조달해 국내의 여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만 한상원(한앤컴퍼니)·송인준(IMM) 대표의 철학이나 기업 문화, 처한 상황 등이 MBK의 김병주 회장과는 크게 다릅니다. 스틱은 펀드 자금의 국내 조달이 많은 데다 도용환 회장의 철학이나 스타일상 절대 분쟁에 뛰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MBK가 상호 적대적이기까지 한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말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진행 중이던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에 이어 이번 고려아연의 동업자 간 분쟁이 두 번째입니다. 시장에서는 여러 분석이 나옵니다.

MBK파트너스는 2004년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이래 20년 만에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대로 성장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사모펀드입니다. 운용자산만 40조원이 넘고 그동안 국내에 투자했던 기업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합니다. 홈플러스 롯데카드 오렌지라이프 딜라이브 한미캐피탈 등등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 투자 리스크가 커진데다 홈플러스(유통) 딜라이브(케이블TV) 네파(아웃도어) 등 기존 투자한 여러 기업들에서도 엑시트를 제때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MBK만은 아니고 국내 사모펀드 대부분에 해당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동안 급성장했던 국내 사모펀드 산업이 과도기적으로 침체에 빠진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MBK는 새로운 성장동력과 새로운 투자 아이템을 찾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경영권 분쟁에 사모펀드가 뛰어들어 공개매수를 통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고 미국 등 자본 선진국들에서는 흔히 있는 방식입니다. 국내에서는 오너 경영의 뿌리가 깊고 기업 간에 연대도 강한데다 정부당국의 눈치도 봐야 해서 부담을 느낀 사모펀드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금도를 깬 게 바로 MBK파트너스입니다.

다른 사모펀드 창업자들과는 달리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어 몸은 한국인이지만 선진 시장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바로 MBK의 창업자 김병주 회장입니다. 더욱이 MBK는 펀드 자금을 해외에서 대부분 조달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눈치 볼 데가 없습니다.

MBK가 그동안의 국내 사모펀드 비즈니스의 관행을 깨고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기업의 인수합병에 뛰어든 것은 국내 대기업들이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 시대로 이행하면서 형제·동업자 간 연대가 약해지고 와해되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이번 고려아연 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앞으로 이런 류의 경영권 분쟁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지금은 평판 리스크나 정치적 부담 등을 의식해 망설이지만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면 MBK를 따라 경영권 분쟁에 참전하는 펀드들이 하나둘 늘어날 것입니다.

MBK가 한국앤컴퍼니 고려아연 등의 분쟁에 뛰어든 데는 자본시장을 둘러싼 여러 환경변화도 결정적입니다. 무엇보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주가 ‘밸류업’ 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금융당국이 고려아연 분쟁과 관련해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시세 조정 같은 명백한 불법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도 이런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내놓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한 논평은 참고할만합니다. 결론은 “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버넌스포럼’은 “공개매수는 고려아연뿐 아니라 저평가된 국내 상장사들이 가진 다양한 권리가 재평가될 기회를 제공하며, 이번 공개매수가 이사 선임과 주주제안 인수합병 등 주주의 다양한 권리를 환기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재계 입장에서는 사모펀드가 새로운 비즈니스로 인식해 형제·동업자 간 분쟁에 뛰어드는 게 못마땅하고 때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강한 포식자인 한 마리 메기가 수많은 정어리 떼와 미꾸라지들을 더 강하게 만들듯이 재계 전체로 보면 결코 나쁠 게 없습니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가를 밸류업하고 소유·지배구조를 정비하고 선진화하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고려아연만 해도 ‘거버넌스포럼’이 지적했듯이 최윤범 회장이 취임 후 수익성 악화와 차입금 증가 등 기업가치 제고를 이루지 못하고, 선진국 중 가장 거북이걸음을 하는 코스피보다도 주가가 낮았기에 생긴 일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만도 이제 1400만명을 넘습니다. 대주주가 갖는 주식 1주와 소액주주 1주가 같다는 인식도 팽배합니다.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 밸류업은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입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따라야 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제 국내 자본시장도 MBK파트너스 같은 ‘메기’쯤은 용인해야 합니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우리 자본시장의 수준을 평가하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