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오덴세의 경기장에서 열린 덴마크오픈 8강전, 안세영은 다시 한 번 세계 1위다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1세트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완벽한 경기 운영으로 2세트와 3세트를 모두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단 58분 만의 경기였지만, 그 안에는 그녀의 침착함과 집중력, 그리고 세계 정상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번 경기는 단순한 8강전이 아니었다. 상대는 일본의 미야자키 토모카, 세계랭킹 10위의 강자이자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선수였다. 경기 초반 안세영은 미야자키의 빠른 템포와 예리한 드롭샷에 흔들렸다. 셔틀콕의 궤적이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리듬을 잃었고, 점수는 6-11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안세영은 특유의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점수를 추격하며 13-14까지 따라붙었지만, 마지막에 연속 실점하며 1세트를 내줬다. 그래도 그녀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라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2세트에 들어서자 경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안세영은 초반부터 공격적인 리시브와 예리한 스매시로 분위기를 바꿨다. 미야자키의 실수를 유도하며 3-0으로 앞서나가더니, 이후엔 점수 차를 크게 벌리며 흐름을 완전히 잡았다. 조급해진 미야자키는 범실을 연발했고, 안세영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라인 끝을 찌르는 정확한 공격과 코스 조절로 상대를 무너뜨리며 21-9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이때부터 안세영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졌고, 미야자키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밀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3세트는 말 그대로 압도였다. 안세영은 시작하자마자 7점을 연속으로 따내며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했다. 미야자키가 반격을 시도했지만, 안세영은 모든 공격을 읽어내며 수비로 버텼다. 특히 12-4 상황에서 보여준 다이빙 디그는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셔틀콕을 살려냈고, 결국 상대의 범실로 이어졌다. 이 한 포인트가 미야자키의 의지를 꺾었다. 이후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안세영은 21-6으로 세트를 마무리하며 완벽한 역전승을 완성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올 시즌 그녀는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 일본오픈, 중국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까지 무려 7개의 국제 대회를 제패했다. 그중 세 대회는 세계 최고 등급인 슈퍼 1000 시리즈였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 뒤에는 부상과 피로의 그림자가 있었다. 7월 중국오픈에서는 무릎 통증으로 4강에서 기권했고, 8월 세계선수권에서는 천위페이에게 패하며 2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이후 중국 마스터스에서 무실세트 우승으로 완벽하게 부활했지만, 코리아오픈 결승에서는 야마구치 아카네에게 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덴마크오픈은 그런 아쉬움을 씻어내는 무대다.

덴마크오픈은 1936년에 시작된 역사 깊은 대회로, 최근 3년간 중국 선수들이 여자 단식을 석권했다. 안세영에게는 단순한 시즌 8번째 우승이 아닌, 생애 첫 덴마크오픈 정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자신을 꺾은 야마구치와의 리턴 매치 가능성이 높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야마구치는 안세영에게 몇 안 되는 패배를 안긴 라이벌로, 두 사람의 대결은 이미 전 세계 팬들이 기다리는 ‘결승 같은 경기’로 불리고 있다.
1세트를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던 안세영의 경기에는 세계 1위로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경기 중 보여준 표정 관리와 침착함은 그 자체로 예술에 가까웠다. 배드민턴은 단순히 스매시나 드롭샷으로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순간의 판단력, 심리전, 그리고 흐름을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안세영은 그 모든 것을 갖춘 선수다. 상대가 강하게 몰아붙여도,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스스로의 리듬을 되찾는 순간, 경기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기운다.

이번 대회에서는 라이벌 천위페이가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안세영의 우승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천위페이는 덴마크의 미아 블리치펠트에게 패하며 16강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여자 단식은 사실상 안세영과 야마구치의 양강 구도로 좁혀졌다. 특히 안세영은 이번 덴마크오픈에서 우승하면 시즌 8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세계 랭킹 1위를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다.
이제 안세영의 다음 상대는 야마구치 아카네와 대만의 추핀치안 경기 승자다. 전력상 야마구치가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지난달 코리아오픈 결승의 리턴 매치가 성사된다. 안세영 입장에서는 복수의 기회이자, 올 시즌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천위페이가 없는 이번 대회는 사실상 ‘여제의 재확인 무대’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8강전에서 가장 빛난 것은 안세영의 기술이 아니라 멘탈이었다. 1세트를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그런 냉정함이 바로 그녀를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덴마크오픈은 그녀의 8번째 우승을 향한 여정이자, 여전히 안세영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무대다.
결승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지금의 안세영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1세트에서 흔들려도, 부상에서 돌아와도, 그녀는 결국 다시 일어서고 또 이겨낸다. 이 모든 과정이 안세영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만든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두 경기. 그리고 그 끝에서, 안세영은 또 한 번 세계를 향해 증명할 것이다. 2025년 배드민턴의 주인공은 여전히 안세영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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