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위기가구] ③혼자 100명 생계 확인.."가족이라도 못할 일"

박동해 기자 2022. 9.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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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복지' 현실적 한계..인력충원·민관협업 절실
민간에서 발굴 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물적 지원 필요

[편집자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여전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모두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합니다. 뉴스1은 절벽으로 내몰린 위기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보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지난 8월 병환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가 거주했던 다세대주택 내부가 청소돼 있다. ⓒ News1 최대호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본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사실상 확인을 할 수 없는 것이네요."

"네 맞아요. 저희가 나가서 가가호호 다닐 수가 없는 구조예요."

경기도의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공무원 이모씨는 지난 2020년 자신이 상담한 한 여성의 사례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사채 빚만 남기고 집을 나가고 빚쟁이들이 몰려오자 딸과 함께 이씨의 관할 구역으로 몰래 이사를 왔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여성은 공황 증상을 보이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딸은 폐렴을 3개월째 앓고 있었다.

당장의 삶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부양의무자인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았고 주소지에 실거주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이 여성은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씨가 관련 기록을 뒤져 보니 이 여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상이 되지 못하니 지원을 신청하지 못하고 1년째 '문의'만 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여성은 이씨의 도움으로 '통합사례관리대상'으로 등록됐고 이혼 절차, 주소지 이전, 개인파산 등의 절차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지만 이씨는 이 여성처럼 적극적으로 복지기관에 문을 두드리지 않는 위기가구를 과연 공무원들이 '발굴'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 혼자서 100명 이상 돌보는 구조…직접 방문할 시간 없어

비슷한 사례가 지난달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60대 모친과 40대 두딸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수원 세 모녀'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은 가난과 빚을 피해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이곳으로 숨어들었고, 전입신고도 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현행 복지 체계상 주소지를 옮기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고립되기를 선택한 취약계층을 발굴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나오자 정부는 다시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씨를 비롯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인력 부족, 과도한 업무 등으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될 수 없는 환경이라며 한숨을 쏟아냈다.

그동안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직접 발굴해 내겠다며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전국 읍·면·동 단위로 확대해왔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18년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 3509곳의 주민센터에 기존의 복지행정팀 외에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정부는 지난 2018년 찾아가는 복지팀 확대를 위해 사회복지·간호직 공무원 약 1만5000명을 충원하겠다고 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까지 실질적으로 충원된 인원은 54%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복지 업무를 보는 인원의 순증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존에 복지 업무를 보던 행정직 직원을 사회복지직으로 전환한 것이 상당수라 일을 하는 인원은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전담팀 최근 5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120명이었던 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 숫자는 2022년 6월 기준 1만1882명으로 3762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사회복지공무원이 담당해야 할 위기가구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통해 확인된 발굴 대상은 2018년 36만6755명에서 지난해 133만9909명으로 늘었다. 전담 공무원 수와 비교했을 때 공무원 1명이 감당해야 할 담당인원도 같은 기간 45.2명에서 113명으로 늘어났다.

이씨는 위기가구 발굴 외에도 기타 복지 업무가 몰려드는 상황에서 사회복지공무원들이 현장으로 나가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눈앞에 민원 처리라든가 기안이라든가 업무가 내 앞에 있는데 찾아 나갈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이 겉으로만 '찾아가는' 이름을 붙여 놓고 실제로는 과거의 복지팀과 다를 게 없는 업무를 보고 있다는 폭로도 있었다.

사회복지공무원 조모씨는 정부가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을 읍·면·동에 별도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실제로는 별도의 조직이 신설되지 않았거나 기존 복지팀의 이름만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사무소 조직도만 봐도 복지팀 하나만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라며 "이름만 바꾸고 설치가 됐다고 보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 민간에서 함께 발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 필요해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뉴스1은 실제 지역에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작업이 어려운 이유를 듣고 대안을 마련해 보고자 지난 14일 마포구 서교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복지공무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회복지관, 우리동네돌봄단 관계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다.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주민센터에서 위기가구 발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 관계자들이 참석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2022.9.1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박혜경 서교동주민센터 복지1팀 주무관은 수원 세모녀 사건의 경우는 현재 구조상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굴 대상자라고 명단이 내려오지만 이들은 서교동에 주소지가 되어 있는 분들에 해당된다"며 "고시원이나 주민등록신고를 하지 않은 분들은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데 이들을 커버(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입자가 있을 때 하나하나 직접 대면하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는 주민센터, 지역 복지관, 자원봉사자 등이 협업해서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조사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대상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동네에서 통장을 맡고 있는 이혜영 서교동 우리동네돌봄단 활동가는 위기가구 발굴과 관련해 통장에게도 의뢰가 오지만 개인정보 등의 한계상 조사와 방문이 어려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는 통장에게라도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주면 위기가구를 찾는 것이 더 용이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공공과 민간이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통합하고 효율적인 자원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지역 단위의 '컨트롤 타워' 조직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제기됐다. 노현주 염리종합사회복지관장은 "현재도 각자 현장에서 잘하고 있지만 같이 고민해 보고 돕고 효과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민간에서 위기가구 발굴과 봉사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일종의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은정 마포구 서교동지역사회보장 협의체 위원은 "지역에서 일하는 분들, 도와주사는 분들은 한정적이고 인센티브도 따로 없어서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는 것이 힘들다. 하시던 분들만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위기가구 발굴의 민간 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이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헌혈증처럼 일종의 포인트를 만들어서 봉사를 했던 사람들이 비슷한 사회서비스를 받게 될 때 비용 절감 등의 혜택을 주는 방식도 고민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공무원, 사회복지사, 봉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과 관계를 쌓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에서 관계 형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혜영 활동가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뭔가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며 현장 방문을 할 때 전달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도 전달할 수 있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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