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도 주체갱도 아닌 '북한'을 철학하기
얼마 전 철학자 김상봉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김상봉은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베트남에도 여러 권의 책이 번역 출간되어 있고 해마다 베트남 공산당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다. 마오주의, 주체사상과 비견되는 독자적 철학사상을 제시한 적이 없는 베트남공산당이 자신들의 철학적 탐색을 김상봉 철학과의 조우를 통해 시도하는 듯하다. 필자는 그에게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철학은 홀로주체성이 아닌 서로주체성을 강조한다. 자기 내부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서양적 나르시시즘이 아닌 서로가 대면하는 주체성. 그는 이것을 추구하는 철학자다. 그는 북한이란 홀로주체성의 대표적 구현태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예상은 했지만 비판의 강도에서 조금 놀랐다.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서 한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철학적 능력을 익히 알기에 어느 경계를 돌파해주기를 내심 고대했지만 그런 탈주는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그런 돌파, 탈주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심리학자 김태형이다. 그래서 그의 책 <월북하는 심리학>(서해문집 펴냄)을 꺼내들었다.
저자 김태형은 박노자 교수의 '제3세계형 복지국가론'을 소개한다. 북한의 복지에 관한 저자의 말이다.
"북쪽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급받는 것만으로도 굶어죽을 위험은 없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북은 1950년대부터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택 제도를 확립했고, 현재까지 일관되게 실시해 오고 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북 정부는 1950년대에 무상의료를 법제화했고, 1970년대에는 인구대비 의사·간호사·의료시설·침상 수에서 세계 최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북은 1950년대부터 공교육 전반에 걸쳐 무료교육제를 실시하고 있고, 12년간의 의무교육제도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의 70년 역사에서 복지제도는, 약 10여년(고난의 행군 시기-필자주)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법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못하는 허구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실일까? 재미 언론인 진천규, 최재영 목사 등을 위시한 많은 북한 방문객들은 고난의 행군은 오래전에 끝났고 현재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개발이 진행중임을 증언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가난한 북한이지만 제3세계에서는 이것조차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다. 서구의 북한 추종자인 '주체갱'이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문화 수준에서 남북한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는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말한다. 한국인에게 돈이란 행복을 위한 절대적 존재이다.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행한 조사에서 선진국 대부분은 가족을 행복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한국만이 물질적 성공을 선택했다. 북한은 어떨까? 저자 김태형은 북한에서는 '사회의 인정' 혹은 '존경'이 최우선 순위라 말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배급으로 거의 해결하는 북한사람은 돈이 아닌 명예를 추구한다. 저자의 설명이다.
"북쪽 사람들이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게 이 '인민' 칭호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고 존경하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당원이 되고자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북쪽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목적은 '명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학대위계사회'로 진단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문화를 거론한다. 구체적 상황에서의 학대를 우리는 '갑질이라고 한다. 갑질은 조직 내부 민주주의의 부재로 초래된다. '조직 내 민주주의'란 "구성원들이 조직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조직에 지배권·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형식적 민주주의는 쟁취했지만, 정작 일상과 밀착해 있는 조직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티끌만큼도 쟁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 내 민주주의가 부재한 나라는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 결국 갑질은 비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북한의 경우 적어도 조직문화에 있어서만은 필자가 아는 한 우리보다 진보적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조직내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생활총화'와 한국의 민원제도와 비슷한 '신소제도'가 작업장 민주주의를 뒷받침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 당 간부부터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원병제인 북한 군대의 조직문화도 비슷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북한은 악셀 호네트의 '인정욕구'를 현실에서 구현한 정치체제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북한은 소비재상품의 측면에서는 아주 가난한 나라이다. 재화의 부족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벌충할까? 재화에는 물질적·정신적 재화가 있다. 북한은 물질적 재화인 상품의 부족을 정신적 재화인 '인정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유지되는 사회다. 보상이 반드시 물질적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가난한 사회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인정이 오히려 더 나은 보상전략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한국 지식인들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가령 '인정' 개념을 철학적 담론으로 편입한 헤겔 철학에 관한 정상급 철학자인 나종석, 인정이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체적 조망을 제시하는 악셀 호네트의 수제자 문성훈, 이분들은 왜 북한을 철학담론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까? 나종석의 책 <차이와 연대> 및 <대동민주유학과 21세기 실학> 2000페이지를 뒤져봤지만 북한이란 존재는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재계를 배제함으로써만 상징계가 성립한다는 지젝의 철학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례가 한국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북한의 인정욕구를 중점으로 설계된 정책들에 주목하는 것은 필자가 친북적 생각을 해서가 전혀 아니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수축사회가 전면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사회적 보상시스템을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으로 어떻게 재배치하고 설계할 것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재명의 기본소득노선은 반쪽의 대안이라 생각한다. 필자의 입장은 모든 주의(ism)를 거부하며 공(空)을 설하는 중관학파에 가깝다. 북한에 주목한 이유는 극단적으로 경직된 사회가 어떻게 아나키즘적 모습을 보이는지 그것이 궁금해서였다. 인민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째서 수령이 대타자로 존재하는가? 이런 종류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필자의 생각은 다른 기회에 피력해 보겠다.
왜 우리는 북한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가? 김태형은 반북의식을 공포의 산물이라 이해하는 데 절반의 진실일 따름이다. 한국의 광적인 반북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북한은 한국 사회에 침입하는 '실재'다. 지젝을 살펴보면 북한이야말로 '실재계'에 가장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다. 지젝의 철학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 6개월부터 18개월 사이에 상상계를 경험한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지들의 단계다. 언어 이전의 세계다. 이후 아이가 자라면서 진입하는 세계를 상징계라고 부른다. 이때 아이는 언어를 배우면서 세계를 언어로써 구조화한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구조화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특정 부분에 대한 배제의 과정을 수반한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상징화해서 이해할 수 없다. 언어에 기반한 상징계에는 세계의 전부가 담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상징계로부터 배제되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실재' 또는 '실재계'라고 부른다. 실재계는 상징화되지 않는 것, 언어의 영역에서 배제된 것이다. 그렇다고 실재계가 상징계와 완전히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배제되는 실재계가 가까이 있어야만 우리의 상징계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실재란 상징화에 저항하는 중핵이다. 그럼에도 실재계의 존재는 상징계를 유의미하게 만든다. 말이 어렵다. 쉽게 풀어쓴다면 대한민국은 북한이라는 대상을 의도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음'으로써만 정립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을 상징계에서 봉인해도 현실의 모순은 남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환상, 능력주의라는 환상, 환상은 모순의 폭발을 지연시키지만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통진당의 해산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어떠한 이질적 요소도 거부하는 광기로 유지된다는 것을 보았다. '조화로운 사회'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상징계는 상징계로부터 배재되어 왔던 실재계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실재의 상징계로의 진입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상징계의 담론 수준으로는 실재를 상징화할 수 없음을 고스란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학으로는 담론화가 불가능하다. 김태형은 북한을 폭압정권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금을 낸다. 3대를 세습하는 정부가 어떻게 폭압정권이 아닐수 있을지 한국 정치학도의 담론 능력으로 설명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필자가 김상봉에게서 아쉬웠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필자는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다만 국제적 형세가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간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스로를 '전략국가'라 칭한다. 프랑스의 석학 에마뉘엘 토드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종속국가에 불과하다. 결국 미국을 제외하면 장거리 핵투발수단을 완벽히 갖춘, 그래서 자기의 의견을 국제 사회에서 투사시킬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 중국, 북한에 불과하다. 실재계에서 은둔하던 북한이 우리의 상징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상징계 안에서 해석해내야만 한다. 그래야 급격한 혼돈을 예방할 수 있고 대한민국을 존속시킬 수가 있다. 극우가 외쳐대던 경멸의 '북괴'도 아니고 서구의 주체사상 추종 그룹들이 노래하는 숭배의 '주체갱'도 아닌 진짜 북한을 우리는 담담히 조우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국제정세의 엄혹한 파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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