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그만"…탄력 잃은 '문신사법' 수갑 찬 문신사들, 절규

정심교 기자 2025. 5. 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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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신사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신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권리 및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안 통과와 문신사 양성화를 촉구했다. 2025.5.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문신 시술을 하려면 의대에 가란 말입니까? 국회가 멈추면 문신사들의 삶도 멈춥니다. 법제화 희망고문은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9일 오후, 사단법인 대한문신사중앙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거리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문신사들이 외친 구호다. 우리나라에선 비의료인이 문신을 시술하면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으로 처벌받는데, 이를 법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문신사법안'이 여야 모두에서 발의됐지만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날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장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문신업계의 현실과 현재 진행되는 문신사 제도화 논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며 "문신은 아직도 '의료행위'라는 잘못된 인식 아래, 제대로 된 법적 지위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수십 년간 불법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아 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를 막론하고 문신사 법안이 발의됐다"며 "수많은 문신사와 그 가족들, 안전하고 건전한 문신 문화 속에서 건강한 생활권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국민을 위해, 국회는 조속히 문신사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비의료인의 반영구화장·타투 시술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이른바 '문신법안'은 앞서 18대·21대 국회에서도 소위원회에서 논의된 바 있다. 특히 지난 21대 국회에선 관련 문신법안이 12개나 발의됐고 소위원회에 두 차례 상정됐지만,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선 지난 1월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연 '제1차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상정됐는데, 하루 전날(1월21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입장문을 통해 "절대 좌시하지 않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제동을 걸었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신사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신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권리 및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안 통과와 문신사 양성화를 촉구했다. 2025.5.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당시 의협은 "비의료인이 사람의 피부에 침습해 완전성을 해치고 영구적인 색소 침착을 남기는 행위의 위험성에 대해 그동안 지속해서 국회와 정부에 경고해왔다"면서 "문신은 감염·면역질환·알레르기 및 쇼크·발적·통증·과민반응·이물반응·중금속의 체내 축척 등의 부작용뿐만 아니라 MRI(자기공명영상)의 부정확성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마취 연고로 인한 호흡곤란 발생 우려 △영상의학 검사 결과 판독을 방해해 유방암 등의 조기 진단을 방해할 가능성 △문신 색소의 위험성 등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반대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문신사들은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가 아니란 입장이다. 이준수 대한문신사중앙회 지부장은 "오히려 문신사법이 제정돼야 무자격자의 무분별한 문신 행위를 차단하고, 마취크림·문신색소 등을 법망에 따라 안전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문신사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지난 2일,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민원신고를 당한 타투이스트 주가을(24)씨도 자리했다. 주씨는 "이 직업(타투이스트)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범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물네살에 마련한 저만의 첫 공간인 개인 샵이 신고당해 너무 억울하다"면서 "저 말고도 두려움에 떠는 문신사들이 많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큰 꿈을 꾸는 청년을 위해서라도 국회가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신사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신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권리 및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안 통과와 문신사 양성화를 촉구했다. 2025.5.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이날 대한문신사중앙회 소속 문신사 20여명은 죄수복과 범인을 상징하는 빠삐용(Papillon·파피용) 의상과 수갑을 착용한 채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범죄자로 몰리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들은 "문신이 의료행위라면 의대에서 문신을 가르치나", "치료는 의사에게, 문신은 문신사에게", "국가에 빼앗긴 문신사의 30년을 되찾아달라"라며 연신 구호를 외쳤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반영구화장·타투 시술을 받아본 사람은 약 1300만명, 관련 시술자는 약 3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지난해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기준). 이처럼 문신이 일상에 스며들고 있지만, 1992년 대법원에서 문신을 의료행위라 판단하면서 '의사가 아닌 사람'이 행한 문신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이후, 비의료인의 문신 행위는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에 따른 불법으로 간주해왔다. 이에 이번 22대 국회에선 △문신사법안(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 △문신사·반영구화장사법안(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대표발의) △타투이스트에 관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 대표발의)을 포함, 여야에서 모두 문신사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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