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밥상 - 그리움과 간절함을 조물조물 무쳐내 [전국 인사이드]

박서화 2024. 9. 1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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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 2556번지.

강원도의 밥상엔 그리움이 오른다.

그러나 한때 그리움을 달랬던 밥상의 응원만은 여전하다.

밥상에 담는 그리움은 삶에 대한 애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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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서울보다 넓다. 명절 이야기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전국 인사이드’ 필자인 지역 언론인들이 각 지역의 ‘추석 밥상’ 이야기를 전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 2556번지. 이곳의 주인인 야생동물의 흔적을 따라 비좁은 산길을 오른다. 곳곳에 보이는 풍경은 빨간 역삼각형 경고판. 지뢰지대라는 뜻이다. 꼴딱 숨이 넘어갈 듯 한참을 오르면 이내 절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왼쪽에 금강산, 그리고 등 뒤로는 설악산이다.

한반도 남쪽의 최북단, 알알이 익어가는 고개 숙인 벼 사이로 북풍이 한기를 몰고 미리 찾아오는 강원도의 9월,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볼 무렵이면 실향민들은 이곳으로 와서 그리운 피붙이를 찾는다. 일찍 수확한 쌀로 정성스럽게 지은 밥, 농사지을 수조차 없었던 척박한 땅을 개간해 얻은 사과. 소박한, 하지만 무거운 밥상을 손에 잡힐 듯한 금강산 절경 아래 놓는다. 잘 지내는지, 건강한지, 대답 없는 질문을 해본다. 두고 온 고향, 그리운 가족, 눈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 먼멧재봉 907m는 실향민이 쌓은 그리움의 높이다.

삼나물은 강원 영서 북부지역 특산물이다. 강원 산간지방 일대에서는 산에서 자라는 갖가지 나물들을 묵히고 말린 뒤 ‘묵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밥상에 올린다. ⓒ강원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강원도의 밥상엔 그리움이 오른다. 척박한 땅, 전쟁과 가난을 거쳐 알알이 맺힌 그리움이 음식 속에 담긴다.  없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 콩을 삭힌 뒤 간장을 빼지 않고 담근 막장, 젓갈 대신 소금을 써서 절인 ‘짠짠지’, 그리고 큰 일교차를 이용해 만드는 두부가 그 흔적이다. 그뿐일까. 산간지방 일대에서는 산에서 자라는 갖가지 나물을 묵히고 말린 뒤 ‘묵나물’이라는 이름으로 귀한 밥상에 올린다.

하루가 지나면, 한 달이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실향민들은 이제 상당수가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실향민과 그 가족이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에 산다. “이봅세, 날래 오기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분단의 세월을 담은 함경도 사투리가 관광객을 반긴다. 이들이 속초에 자리 잡으며 ‘명물’로 만든 음식이 아바이순대와 함흥냉면이다. 두 음식 모두 본래 함경도 출신 피란민들이 1·4 후퇴 이후 속초에 정착하면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아바이마을에 굳이 가지 않아도 인근 속초 시내에서 아바이순대와 함흥냉면을 맛볼 수 있다.

실향민들이 1·4 후퇴 이후 속초에 정착하면서 명물로 만든 음식 중 하나가 함흥냉면이다. ⓒ박서화 제공

아바이마을이 내려앉은 땅에서 조금 내려가 백두대간 언저리에 올라 앉으면 그곳에는 또 다른 그리움이 있다. “오늘도 무사히” 기도하는 어린이가 그려져 있는 탄광 입구, 국가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탄광이 지역 산업으로 자리 잡은 뒤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 열악한 환경으로 온 광부들에게 밥상은 가족이고, 응원이고, 노동이었다. 민영 탄광 일대에서 거래되던 저품질의 쌀과 달리 밥상에는 특별한 날이면 육류가 비교적 자주 올랐다. ‘막장’이라 불리던 열악한 노동환경을 무마하고 당장 급한 식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광업소마다 돼지고기를 배급했기 때문이다. 1980년 4월 정선 사북 지역의 광부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거해 사북항쟁을 일으킨 뒤에는 정부까지 ‘돼지 보급’에 나서기도 했다.

탄광이 문을 닫은 현재, 그때의 땀과 눈물은 노동자들의 지치고 아픈 몸에만 남았다. 그러나 한때 그리움을 달랬던 밥상의 응원만은 여전하다. 폐광지 곳곳에는 아직도 탄광 일대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자주 찾는 ‘실비식당’이 여러 곳에 있다. 구름 사이로 미소짓는 보름달이  쪼그라들면 곧 시린 추위가 닥친다. 삶은 계속된다. 밥상에 담는 그리움은 삶에 대한 애도일지도 모른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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