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우의 프레임] 오인(誤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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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매력은 작은 단서들이 쌓여 진실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고전적 추리물에서 오인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과 같은 해 개봉한 '올드보이'에서 오인의 테마는 주인공을 한층 더 가혹한 운명으로 몰아넣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빨갱이'로 오인당했고, 그 수단으로 고문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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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매력은 작은 단서들이 쌓여 진실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독자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규칙을 전제로 게임에 함께 참여한다.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란 셜록 홈스의 명대사는 그 규칙을 압축한 문장이다. 고전적 추리물에서 오인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누아르의 세계에서 오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살인의 추억'은 형사가 범인을 잡는 대신 놓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무당 눈깔'을 자신하던 형사 두만은 용의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첫눈에 범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두만의 자신감은 그렇게 무너진다. 고전적 추리물이 진실의 승리를 선언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길 때, 누아르는 자신의 무지 앞에 망연자실한 인간을 응시한다.
'살인의 추억'과 같은 해 개봉한 '올드보이'에서 오인의 테마는 주인공을 한층 더 가혹한 운명으로 몰아넣는다. 오대수는 15년간 이유도 모르고 감금됐다가 풀려난 뒤 자신을 가둔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조차 알지 못한 스스로의 무지였다. 그는 자신을 피해자라 오인한 대가로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린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것처럼 오대수는 스스로 혀를 자른다.
'올드보이'가 오인의 서사를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다뤘다면, '살인의 추억'은 이를 암울한 시대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사건의 배경인 1986년은 국가가 공안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오인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빨갱이'로 오인당했고, 그 수단으로 고문이 동원됐다. 두만과 그의 동료들은 범인을 조작하기 위해 고문을 자행한다. 취조실에서 죄 없는 이를 걷어차던 발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을 짓밟던 발과 다르지 않았다.
국가에 오인이 권력 유지를 위해 의도된 결과라면, 개인의 차원에서 오인은 피해의식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유 모를 불행을 겪는 저마다의 서사 안에서 우리 모두는 피해자가 된다. 인과응보가 성립하려면 마음껏 발길질할 범인이 필요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만악의 흑막인 모리아티 교수도, 그와 맞서는 셜록 홈스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고한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스스로를 홈스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2003년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는 오인의 테마를 도발적인 블랙코미디로 변주한다. 주인공 병구는 자신의 인생이 무너진 이유가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의 음모라고 믿는다. 그는 스스로를 지구의 구원자 자리에 올려놓고, 거만한 자본가 만식을 외계인으로 지목해 납치하고 고문한다. 병구에게 외계인은 삶을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할 하나의 진실인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오인은 피할 수 없는 굴레일지 모른다. 때로는 현실이 너무 가혹해 오인에 기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이나,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해킹해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중국인 같은.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외한 뒤에는 결국 스스로 눈을 찌르고 혀를 잘라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진실이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강민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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