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다, 30년 넘게 스키를 즐긴 류일선 약사 인터뷰

연중무휴 약국을 운영하는 류일선 약사는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이 있다. 겨울이 되면 그 하루는 온전히 스키를 즐기기 위한 시간이 된다.
ⓒ 류일선

스키를 즐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체력이 약했다. 신체를 단련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합기도, 축구, 수영, 헬스 등 여러 운동을 배웠다. 스키를 처음 접한 건 약국을 막 오픈한 1990년 무렵이다. 지인들과 함께 스키장을 방문했는데, 하얀 눈이 덮인 광활함에 매료됐다. 약국 특성상 넓지 않은 공간에 하루 종일 머물게 된다. 바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스키장 환경에 가슴이 트이는 듯했다. 환경 자체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하얀 눈 위를 빠르게 달린다는 것에서 자유를 느꼈다. 큰 감동을 느낀 그때 이후로 매년 스키를 즐기고 있다.

취미를 넘어 스키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처음엔 시즌 때마다 지인들과 함께 스키장에 가는, 관광 스키 정도로 스키를 즐겼다. 10년 정도 무주리조트에서 관광 스키를 타다 서울 서초로 약국을 이전한 이후에는 용평리조트(현재 ‘모나 용평’)를 가기 시작했다.

주로 용평리조트 근처 렌털 숍에서 스키를 대여했는데, 친분을 쌓은 숍 직원이 스키 레슨을 받아보는 게 어떻냐고 권했다. 스스로도 무언가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도전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때부터 스키 레슨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상급자 스키에 도전했다. 해당 시즌에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 대한스키지도자연맹 레벨1 자격증을 취득했다. 레벨2에도 도전하려 했으나, 업무 시간을 고려하면 다소 무리일 것 같아 레벨1에 만족했다.

ⓒ 류일선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스키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키를 타며 체감하는 스피드가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자연경관을 즐기는 것도 너무나 좋다. 그럼에도 가장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스피드다. 스키는 일반인이 타면 대략 시속 70km 전후, 선수나 상급자가 타면 100km까지 속도가 난다. 엄청난 스피드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설원을 질주하는 거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웃음)

특히 우리나라는 보통 정설 작업을 마친 사면에서 스키를 타지만, 일본 등 해외에서는 산에 쌓인 자연 눈 위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 가루처럼 고운 눈 위에서 스키를 탄다는 의미로 ‘파우더 스키’라고 한다. 파우더 스키는 우리나라에서 타는 스키와 또 다른 세상이다. 이렇듯 스키로 즐길 수 있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약사라는 본업과 스키를 어떻게 병행하나? 스키 시즌 루틴이 궁금하다

약국에서 근무하다 보면 보통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쉰다. 당직 약사와 스케줄을 조율해 하루 시간을 내 스키를 타러 간다. 한창 스키를 타던 때는 용평리조트행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다.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가 하루 종일 스키를 탄 뒤 저녁에 다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장비는 스키장 시즌 라커에 보관해 두고 몸만 오갔다. 지금은 가까운 곤지암리조트를 자차로 다녀오곤 한다.

접근성이 좋은 스키장을 택한 셈이다. 아쉬운 점은 없나?

때때로 그렇다. 아무래도 용평리조트가 국내 스키의 메카로 꼽히지 않나. 물론 곤지암리조트도 좋지만, 용평리조트에 비하면 경사도나 슬로프 길이, 즉 난도 면에서 아쉬울 때도 있다. 다만, 이젠 예전처럼 무리하지는 않는다. 용평리조트는 시즌 중 한두 번만 가고, 가까운 곤지암리조트에서 가족, 지인들과 함께 스키를 즐긴다.

스키 실력 향상을 위해 별도의 운동을 하기도 하나?

주로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한다. 하체 근력 운동은 스키 실력뿐 아니라 무릎 관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오랫동안 스키를 탄 사람은 무릎 관절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스쿼트, 데드리프트, 레그 익스텐션 등의 하체 운동을 추천한다. 이러한 운동은 하체 근력을 강화하고, 관절염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스키를 타느냐, 보드를 타느냐. 입문자의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스키 마니아로서 스키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기술과 안정성 측면에서 스키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키는 입문을 위한 허들은 낮지만, 숙련될수록 복잡한 테크닉이 요구된다. 상급자로 올라갈수록 점프, 트릭 스킬이 주가 되는 보드에 비해 스키는 기술과 속도에 더욱 집중한다. 속도 측면에서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가 더 높다는 점이 스키의 매력이다.

안정성 측면에서도 스키가 낫다고 생각한다. 스키는 넘어질 경우 무릎이나 하체 부상이 주로 발생하지만 위급 상황에서 바인딩이 해제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을 줄일 수 있다. 반면, 보드는 발이 고정되어 있어 넘어질 때 상체, 특히 머리와 가슴 부상의 위험이 크다. 테크닉의 다양성과 안전성을 중시한다면 스키를 추천한다.

ⓒ 류일선

장비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처음 장만할 때 제대로 된 걸 선택해야 한다. 처음에 어설픈 장비를 마련하면 결국 이중으로 돈이 든다. 다만, 무조건 선수가 착용하는, 비싸고 수준 높은 장비가 최선은 아니다. 어떤 장비를 구매하든 많이 찾아보고 공부해 제대로 된 걸 구매하는 게 좋다.

부츠는 족형에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장비발’을 세운다고 하지 않나.(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장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몇몇 사람은 처음부터 전문가 수준의 선수용 부츠를 신는데, 실력이 못 미치는 상태에서 너무 수준 높은 부츠를 신으면 무릎에 부담이 간다. 비싸고 수준 높은 부츠보다는 자신의 족형에 맞는 편안한 부츠를 선택해야 한다. 나 역시 부츠를 구매한 후 튜닝업체에 맡겨 디테일하게 부츠를 교정했다. 스키도 전문가 수준의 강하고 무거운 장비보다는 가볍고 부드러운 스키가 적합하다. 본인의 신체와 실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부상 없이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스키를 위한 모임이나 동호회가 취미 생활에 도움이 되나?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처음 스키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정보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과거에는 나 역시 동호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자세와 기술을 가르쳐줬고, 스키 장비를 구매할 때도 도와줬다. 스키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기술을 분석하고 토론하기도 했다. 동호인들과 함께하면서 취미에 몰입할 동기를 얻은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동호회나 주변 사람과의 교류로 스키를 더 즐길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동호회 활동을 따로 하지 않고, 지인이나 후배들과 함께 스키장에 간다. 최근에는 스키 입문자인 약사 후배와 함께 스키 숍을 찾아 장비 선택을 도왔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일본 앗피고겐 스키장에서 조난당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스키장이 아닌 숲속에서 스키를 타는, 아웃바운드 파우더 스키를 타기 위해 일본에 갔다. 첫날은 현지 마운틴 가이드를 고용해 스키를 탔는데, 이튿날은 가이드와 일정이 맞지 않아 동행할 수 없었다. 통역사를 통해 첫날 간 코스로 우리끼리 가도 되는지 물었는데, 가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면 안 된다는 말을 통역사가 잘못 번역한 거다.

어쨌든 우리 일행끼리 출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었다. 일본어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다행히 핸드폰이 터져 한국에 있는 여행사와 연락이 닿았고, 위치를 전송해 구조 요청을 했다. 1시간 반 정도 눈밭에서 추위에 떨다 구조대를 만났다.

이 경험으로 아웃바운드 스키에선 반드시 마운틴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유럽 알프스는 경로를 잘못 선택하면 여권 없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도 있다.

ⓒ 류일선

스키에 나이 제한은 없다. 스키에 입문하려는 중년 남성도 있을 텐데, 그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꼭 도전해 보길 권한다. 스키는 역동적인 스포츠라 젊은 세대의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주변 지인 중에는 40대에 처음 나에게 스키를 배워 60대가 된 지금도 꾸준히 즐기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챙기고 싶거나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스키를 즐긴 지 어언 30년이 넘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스키장을 다녀봤지만, 알프스엔 아직 가지 못했다. 언젠가 유럽 알프스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


입문자를 위한 장비 체크 포인트

취미 스키어가 아닌 이상 대부분 장비를 렌털할 것. 장비 렌털 숍에 방문하기 전 알아두면 좋은 기초 상식을 정리했다.

➀ 장비 손상 정도를 체크하라

입문자라면 대부분 장비를 렌털한다. 렌털 숍 장비는 타인과 함께 쓰기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때때로 장비 손상으로 인한 부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➁ 가성비보다 장비 상태에 집중하라

몇몇 렌털 숍에선 장비 상태를 기준으로 일반 렌털과 고급 렌털로 구분한다. 부상 방지를 위해서라도 장비 상태가 좋은 것을 선택한다.

➂ 바인딩 강도를 정확히 설정하라

바인딩 강도는 스키에 부츠를 묶는 강도를 말한다. 이것이 적절해야 넘어질 때 스키가 잘 분리되면서 큰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바인딩 강도를 잘 모르겠으면 체중에서 10을 뺀 숫자의 앞자리와 동일하게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70kg이면 바인딩 강도를 6으로 정하면 된다.

➃ 안전 장비는 필수

헬멧 쓰는 걸 민망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키를 처음 배우는 과정에선 아무리 조심해도 다치고 넘어진다. 헬멧과 고글, 손목 보호대 등 안전 장비는 반드시 챙기자.

➄ 스키 양말을 챙기자

스키 양말이 따로 있다. 스키 부츠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만큼 스키를 탈 때 신는 양말은 그보다 위까지 올라와야 한다. 일반 양말을 신으면 부츠가 딱 맞게 조여지지 않거나, 피부가 조여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양말은 렌털이 안 되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1월호
에디터 정지환(stop@mcircle.biz)
사진 류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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