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석가모니가 공통으로 말한 성인이 되는 최후 과정
(2024.10.25)
[유전] [오전 10:02] 이제 내가 이번 대비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올립니다.
[유전] [오전 10:03] (대비경) 아난아, 마음이 자애롭고 착함에 머물면 이와 같이 열한 가지 공덕의 이익을 얻는다. 그러므로 아난아, 현재와 내가 멸도한 뒤에 스스로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등불을 구하지 말고 다른 귀의(歸依)를 구하지 말라.
아난아, 무엇을 비구가 스스로의 법등을 밝히고 스스로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등불을 구하거나 다른 것에 귀의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아난아, 만약 어떤 비구가 내신(內身)을 관찰하는데, 몸을 따라 관찰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심(一心)에만 생각을 두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면 만일 이처럼 내신을 관찰하는데 몸을 따라 관찰하고 내수(內受)와 내심(內心)과 내법(內法)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 마음에만 생각을 두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면 아난아, 이것이 바로 비구가 스스로의 법등을 밝히고 스스로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등불을 구하지 않고 다른 귀의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유전] [오전 10:04] 경전은 모두 다 중요하지만 특히 대비경에서 법등명, 자등명, 법귀의, 자귀의에 해당되는 답이 설법되어 있는지는 오늘 처음 봤습니다.
[유전] [오전 10:13] 특히 "내신(內身)을 관찰하는데, 몸을 따라 관찰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심(一心)에만 생각을 두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면 만일 이처럼 내신을 관찰하는데 몸을 따라 관찰하고 내수(內受)와 내심(內心)과 내법(內法)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며, 한 마음에만 생각을 두어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면" 이 대목은 내가 중아함경에서 염신경(몸을 생각한다는 경전)이 구경각(정각)을 깨닫기 위한 최후의 과정이라고 말해 왔던 것과 누가복음과 도마복음에서 예수의 어록과 같다고 한 것이 이번 대비경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전] [오전 10:14] (누가복음) "사람이 등불을 켜서 땅광이나 말 아래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둡니다. 그것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몸의 등불은 당신의 눈입니다. 당신의 눈이 단순하면 당신의 온몸도 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하면 당신의 몸도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의 온몸이 밝아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다면, 등불이 그 광선으로 당신을 비출 때처럼 온통 밝을 것입니다."
[유전] [오전 10:17] (도마복음 29장)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육신이 영혼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이로다. 2 그러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들 중의 기적이로다.[58] 3 진실로 나는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부유함이 이토록 빈곤함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 정말 놀랍기만 하구나 "
https://blog.naver.com/mindbank/memo/222639294845
[유전] [오전 10:22] 제목: 구경각(정각, 묘각)이라는 이름의 뜻 - 새 옷을 입은 몸에 대한 깨달음
위 링크 제목의 내용 글과 함께 다시 "염신경" 내용이 들어있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심연] [오전 10:35] <대보적경>
난타야, 어떻게 비구가 스스로 섬이 되고 스스로 돌아갈 곳이 되며, 법이 섬이 되고 법이 돌아갈 곳이 되며 따로 섬이 없고 따로 돌아갈 곳이 없는가 하면, 그렇다. 난타야,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의 안 몸(內身)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무르되 부지런하고 용감하게 생각을 내어 바른 이해(正解)를 얻어 마치고는 모든 세간에 있는 성내는 괴로움을 항상 조복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이 안의 몸은 곧 괴로운 것이라고 따라 관찰하는 것이니, 바깥 몸(外身)과 안팎의 몸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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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대비경의 다른 주요 대목. 시간상으로는 아래 대목이 먼저임)
[유전] [오전 9:52] (대비경)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저 악마 파순(波旬)과 함께 매우 큰 싸움을 벌였다. 두 종류의 사람이란 어떤 자들인가? 하나는 지극한 마음으로 말해 주는 자이고, 나머지는 마음을 오로지 하여 열심히 듣는 자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이 청정한 행을 가득히 채운 이는 선지식(善知識)과 선등려(善等侶 착한 승려)가 착한 마음을 유입시켰다고 한다.
어째서인가? 아난아, 만약 어떤 중생이 선지식을 만난다면, 이처럼 선지식을 만나 생(生)으로부터 해탈을 얻으며,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법으로부터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유전] [오전 9:52] 아난아, 이 일은 내가 전에 여러 성문에게 말한 것으로 두 가지의 인연이 있어야 바른 견해[正見]가 생길 수 있으니, 첫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법을 듣는 것이고, 둘째는 안으로부터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는다고 함은 마땅히 부처님에게서 듣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안으로부터 바르게 생각함도 역시 부처님에게서 아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가령 모든 범부들은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에 안으로부터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이 없었지만,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와서 모든 범부들을 가르쳐서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안으로부터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은 또한 부처님에게서 생긴 것이다.”
[유전] [오전 9:53]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묘한 장부(丈夫)여,
모든 지혜를 얻어서 늘리는구나.
의심을 끊은 자가 만일 있다면
범부(凡夫)에게 밝은 지혜를 얻게 하리.
성인(聖人)을 본 자는 즐거움을 얻나니
함께 살면 또한 즐겁네.
보지 못한 여러 어리석은 자들은
항상 즐거움이 있는 자와 같네.
[유전] [오전 9:54]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선근의 힘을 얻으며, 선근을 얻어서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선등려(善等侶)를 얻고, 선등려를 얻어서 선류주(善流注)를 얻고, 선류주를 얻어서 최승선(最勝善)을 얻고, 최승선을 얻어서 선심(善心)을 얻고, 선심을 얻어서 드디어 법답게 법을 따르고 마음을 내어 구경전(究竟轉)ㆍ구경 무구(無垢)ㆍ구경 범행(梵行)ㆍ구경 최후(最後)를 수행하는 것이다.
[유전] [오전 9:57] 그러므로 아난아, 이러한 성스러운 지혜로 마땅히 모든 업을 닦아야 하니, 이처럼 성스러운 지혜로 모든 업을 닦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업이라 한다.이와 같이 아난아, 나는 본래 또한 일찍이 이와 같은 성스러운 지혜로써 모든 착한 업을 닦았었다.
아난아, 나는 또한 모든 나머지 착한 행들을 다시 설하였거니와, 만일 어떤 중생이 열반하기 위해서 마음을 내어 적은 선근이라도 지어서 여러 종자를 심으며, 불ㆍ여래가 말씀하신 묘한 법을 듣고 그 뜻[義趣]을 깊이 이해하며, 여래를 떠올려 생각해서 마음에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눈물을 흘리고, 깊이 탄식하고, 머리털이 곤두서고 하는 자가 있는데 만일 이 사람이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이치는 세상에 없으며, 만약 보리의 구경(究竟)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면 역시 그런 이치는 세상에 없다.
[유전] [오전 10:00] 유전: "부처가 나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나오면 조사를 죽여라(살불살조)" 라고 한 화두는 화두 타파 하나의 방편으로 하는 것이며 원래는 이러한 말 자체를 하는 것이 큰 죄입니다. 위 대비경에서의 법문에서 공사상을 극복하고 여래를 생각하고 사랑하며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