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경량화로 차원이 다른 경쾌함을 선사, 두카티 몬스터

자동차에 비해 역사가 짧은 모터사이클 산업에서는 장수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나의 이름, 하나의 콘셉트를 출시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이어오는 모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0년 넘은 혼다의 슈퍼커브 뿐이니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도 그런 와중에 3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는 모델들도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 브랜드인 두카티의 몬스터다. 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몬스터는 이름에서 느껴지던 것처럼 출시 초기에는 괴물같은 파워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네이키드 스타일이었지만, 최근에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이전과는 적잖이 달라진 모습으로 색다른 매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 두카티 몬스터를 트랙에서 시승하는 기회를 얻어 지난 20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으로 향했다.

세대를 거듭하며 몬스터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뤄졌다. 초기에는 레플리카 모델에서 카울을 걷어내 엔진을 그대로 보이게 하는 ‘네이키드’라는 본래의 개념에 충실한 모델들이 만들어졌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출시되는 모델들은 이보다는 좀 더 다양한 변화들을 통해 ‘레플리카의 네이키드 버전’이 아닌, 몬스터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일단 주요 레플리카 모델에서 여러 기능 추가 등을 이유로 두카티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트렐리스 프레임을 모노코크 프레임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며 몬스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에 긴 유지보수 간격 등 사용자 편의를 위해 수랭 방식을 채택하고 레플리카와는 다른 엔진을 채택하는 등 차별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진 몬스터가 지난 2020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했고, 2022년에는 SP 사양까지 더해지며 과거와는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과거의 몬스터들은 둥글둥글한 느낌이 살아있는 디자인들이 많았지만, 서서히 근육질을 강조하기 시작하며 과거의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근육질은 마치 보디빌더의 우람하고 큰 덩치가 아닌, 마치 무술가의 것처럼 슬림하면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스타일이어서 몬스터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단순히 파워 중심에만 있지 않음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준다. 프레임 전면부에서 시작된 라인은 시트를 거쳐 날카롭게 치켜든 후미에서 마무리되며 대단히 스포티함을 지녔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계기판이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라는 점이 이젠 더 이상 놀라운 시대는 아니고, 이것이 몬스터에 적용된 점도 그렇다. 단순히 정보를 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차량에 다양한 전자기능들이 대거 탑재되면서 이를 설정하기에 기존 LCD 방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 단순히 ABS를 켜고 끄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ABS나 DTC, 출력 모드, 윌리 컨트롤 등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여러 단계로 개입도를 조절해야 해 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설정하기 위해선 이젠 TFT 스크린은 필수라 할 수 있다.

시트고는 820mm로 그리 높은 편도 아니고 차체 중앙부와 시트 앞부분을 날씬하게 디자인해 발이 땅에 잘 닿도록 설계했다. 물론 그래도 부담을 느낄 사용자들이 있을텐데, 그러면 액세서리로 판매하는 로우 시트로 20mm를, 로우 서스펜션 키트까지 더하면 25mm를 낮출 수 있어 최대 775mm까지도 가능하니 키가 작다고 아쉬워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보는 걸 추천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행을 위해 나가야 하는데, 피트 어느 곳에서도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날 하루종일 내리던 비로 젖은 노면은 잠깐의 아침 해로 다 마르지 않았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노면 온도도 낮은 편이라 다들 안전을 선택하기로 한 모양이다. 트랙 상황도 살피고 워밍업도 할 겸 조심히 트랙으로 들어섰다. 해가 점차 떠오르고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아직 노면 곳곳에 젖은 자국들이 남아있다. 여기에 습기만 맺혀있어도 위험한 차선 위로는 명확하게 물방울까지 보인다. 두어 바퀴를 돌며 대강 파악을 마친 후 조금 속도를 높여봤다. 몬스터에 탑재된 테스타스트레타 11° 엔진이 레플리카 모델에 사용하진 않아도 데스모드로믹 밸브가 탑재된 만큼 강력한 파워는 언제든지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스로틀 레버를 당겨주니 두카티 특유의 2기통 L-트윈 엔진이 만들어내는 리듬감과 함께 경쾌하게 속도가 치솟는다. 아직은 젖은 구간이 많아 직선 정도에서나 가속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젠 미들급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937cc의 배기량은 강력하기만 하다. 주행모드를 풀 파워인 스포츠가 아니라 투어링으로 낮춰놓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레코드 라인이 아닌, 최대한 트랙 가장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중앙으로만 달려야 하는 상황이 조금 어색하긴 한데, 그럼에도 원하는 대로 라인을 그릴 수 있는 건 경량화된 차체 덕분이다. 1~2kg 정도만 덜어내도 운동성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신형 몬스터는 이전 세대에 비해 무려 18kg이나 덜어냈다. ‘최고의 튜닝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을 만큼 무게가 운동성에 주는 영향은 상당한데, 차량에서 18kg이나 덜어내니 리터급과 미들급의 차이로 느껴질 만큼 상당하다. 166kg의 건조중량이면 600cc급보다도 가볍고 300~400cc 쿼터 클래스와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준이다. 시선 처리에 따라 원하는 대로 돌아가주니 조금씩 욕심을 내 코너 안쪽으로 라인이 점점 붙기 시작한다. 위험하겠다 싶던 찰나에 다행히 첫 세션이 끝났다.

본격적으로 해가 오르기 시작한 다음 세션부턴 트랙 전체에 엔진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걸 듣고 있으니 이젠 조금 더 속도를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행 모드를 몬스터의 풀 파워가 발휘되는 스포츠로 바꾸고 다음 세션 시작과 함께 서킷으로 진입했다. 첫 바퀴의 워밍업 주행을 마치고 마지막 코너를 탈출하자마자 엔진을 레드존 근처까지 회전시키며 흐름을 최대한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퀵시프트(DQS)를 이용해 박자에 맞춰 기어를 변속하니 어느새 속도가 200km/h를 넘어선다. 더 확인하고 싶지만 1번 코너가 불과 100m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 레이스는 아니니 최대한 부드럽게 레버를 당기자 앞바퀴에 거대하게 달려있던 브렘보 브레이크 캘리퍼가 속도를 줄여나가는데, 제동력이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일정하게 솟아 속도를 원하는 만큼 줄이는 것이 수월하다. 여기에 마스터 캘리퍼까지도 브렘보가 적용돼있으니 제동에 큰 힘이 들어가지 않아 오늘같은 시승 정도라면 레버에 걸었던 2개의 손가락을 하나로 줄여도 부담이 없다.

코너 진입 직전 퀵 시프트를 이용해 몇 초만에 5단에서 2단까지 내렸음에도 차량 거동에 불안함은 찾을 수 없다. 안심하고 코너 탈출구로 시선을 보내면 원하는 그대로 라인을 그리며 코너를 돌아나간다. 서스펜션은 앞 43mm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프리로드 조절식 모노 쇼크 업소버 구성으로, 그렇게 특출난 제품이 장착된 것은 아니지만, 트랙 데이를 즐기는 데는 부족함 없는 수준이다. 물론 여기서 더 빠른 랩 타임을 원하거나 아마추어 레이스에 참가하길 희망한다면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는 서스펜션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에겐 앞뒤 모두 올린즈 제품이 장착된 SP 사양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SP에 적용된 올린즈 제품들은 모두 압축, 신장, 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풀 어저스터블 방식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상세한 세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형 역시도 차체가 기울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들이 가볍고 자연스럽지만 날카로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면도날 같다’고 평가받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움직이는 과정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볍고 다루기 쉽다는 점만으로 몬스터를 마냥 초심자용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숙련자의 손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 특히 트랙 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활용까지 고려한다면 다른 어떤 모델보다 몬스터가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는 생각이다.

일상 영역보다는 취미 쪽의 영역이 더 강한 모델이 이렇게 오랜 시간 장수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델이 주는 본연의 재미, 잘 달리는 것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긴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뤄져 왔지만, 그것이 오롯이 잘 달리기 위한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본연의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두카티 몬스터는 강산이 3번이나 바뀔 긴 시간 동안이나 명맥을 이어왔고, 형태적인 면이나 구성적인 면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이뤄졌음에도 달리는 즐거움을 계속 추구해왔기에 꾸준하게 사랑받아온 것이다. 앞으로도 몬스터는 계속 변화하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달리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모터사이클로 두카티의 핵심 라인업의 자리를 계속 지켜나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