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옆 출판사 막내 5년 차 여직원의 극락·지옥 오가는 일상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 (주)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알려줌] <더 납작 엎드릴게요> (Will you please stop, please, 2024)

법당 옆 출판사의 막내 5년 차 '혜인'(김연교)은 직함은 따로 없이 보살로 불린다.

부처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성불하려고 하지만, '혜인'은 직장에서 만나는 빌런들 때문에 하루에도 수없이 극락과 지옥을 오간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 49회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되었던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헤이송 에세이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다.

작품을 연출한 김은영 감독은 원작을 출판한 고나리북스의 공동대표이기도 한데, 김 감독은 "평범한 저녁 식사 자리에 모여서 자신이 하는 일과 생활에 대해 잡담을 주고받는 중에 헤이송 작가의 직장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작가가 경험한 사실을 배경으로, 필요에 따라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가공해 적재적소에 만들어 넣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감독은 "책으로 내고 나니 영상화했을 때의 매력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라면서, "우리는 에세이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추린 뒤 그걸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불교출판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이들을 만들어 넣기로 했다"라고 제작 계기를 전했다.

오피스물의 화려함, 성공담과는 확실히 다른 지점을 찾기로 했던 김은영 감독은 "아주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귀엽게 포장해 보는 방법을 선택했다"라면서, "영화적 재미는 이미 배경이 되는 출판사가 호기심을 일으켰고, 그 안에서 납작 엎드리는 직장인의 모습이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라고 소개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 막내만 5년 차인 '혜인'이 주인공이다.

나이도 경력도, 사회 초년생이 아닌 사회 중년생이지만, 어쩔 수 없는 막내의 길을 걷고 있는 '혜인'은 나름대로 슬기롭게 직장 생활을 보내고 있다.

불교 서적 출판사라고 해서 고객들이 모두 보살 같지는 않는데, 이를테면 본인이 써낸 글의 오탈자를 교정해 주어도 자존심이 상해 버럭 화를 내는 '연화수' 보살(김금순) 같은 진상 앞에서 '혜인'은 늘 자세를 낮춰야 했다.

무엇보다 '혜인'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돈'이었고, 이를 위해서 의견을 굽히고 더 납작 엎드려야만 하는 '혜인'에게 직장을 다녀본 관객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는 납작 엎드려야 하는 상황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 흔히 발생하는 '메뉴 고르기', '상사의 말 바꾸기', '퇴근 후 일상' 등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법당 옆 출판사라는 설정에 생소함을 느낌과 동시에 익숙함을 느끼게 하며 관객들을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김은영 감독은 "'혜인'이 납작한 인물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라면서, "납작 엎드린다고 해서 정말 우울하고 줏대 없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서 현실과 부드럽게 타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움 속에 자기 연민과 번뇌가 들어가고, 인물의 깊이가 생겨야 정말 법당 옆 출판사에서 5년은 일한 막내 '혜인'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혜인'의 직장 상사들도 흥미로운데, 출판사 팀장 '진희'(장리우)는 누구든지 절차는 꼭 지켜야 한다고 한 건 잊어버리고 지금은 융통성 있게 진행하라고 한다.

일하면서 반야심경을 외며 성불하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선을 넘는다면 누구든 들이받아 버린다.

출판사 대리 '태미'(손예원)는 본인의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이유로 '혜인'을 뒤에서 챙겨주는 사수다.

신도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항상 '혜인'의 편을 들어주고 굽히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퇴근하고 나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섭렵한다.

그리고 종무소 꼰대 '안 과장'(임호준)은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출판사 직원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사소하게는 밥을 먹을 때 쩝쩝거리는 것부터 인쇄하는 날 무리하게 원고를 주는 것까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일삼는다.

김은영 감독은 "'태미'와 '진희'는 어떻게 보면 '혜인'을 괴롭게 하는 상사들이지만, 또 어떤 장면에서는 그를 위하고 구하기까지 한다"라면서,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특성은 가지고 가되, 인물들의 내면에는 층을 두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빌런이라고 낙인찍힌 '연화수 보살'이 있긴 하지만, '연화수' 또한 '주지 스님' 앞에서는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인다. 5년 동안 회사의 막내로 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굽실하게 되어 막내로의 포지션을 지켜내면서도, 회사 일에 대한 강단과 노하우를 가진 '혜인' 처럼. 그리고 영화 전체의 내용 안에는 없지만 '혜인'에게도 언젠가 후배가 들어온다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했다. '혜인' 또한 누군가에게 시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인물의 미세한 변화의 지점을 상상하면서 연출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고즈넉하고 평온할 것만 같은 절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다층적이며 귀여운 고락을 담은, 조금 더 다양한 사례를 다른 형태(웹드라마 등)의 이야기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든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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