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돌의 반란, 걸그룹 리센느는 어떻게 2년 만에 '대세'가 됐나

김태현 기자 2026. 7. 15.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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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으로 평가받던 중소돌이 2년 만에 멜론 차트 정상에 섰다. 배우와 스포츠 스타, BTS까지 이들의 손동작을 따라 하고, 멤버들의 고향 지자체가 앞다퉈 홍보대사로 모셔갔다. 대형 기획사 수준의 자본과 홍보망 없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판을 뒤집은 걸그룹 리센느, 그 2년의 기록을 들여다봤다.

[우먼센스] 2024년 3월 데뷔해 3년 차를 맞은 5인조 리센느(RESCENE)는 코어 팬덤과 업계에서는 음악성을 인정받았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은 팀이었다. 상황을 바꾼 것은 신곡도 대규모 광고도 아닌, 리더 원이를 중심으로 한 유튜브 예능 채널이었다. 이미 발표된 음악의 경쟁력 위에 멤버들의 캐릭터와 중소 기획사의 성장 서사가 결합하면서, 2년 전 노래까지 다시 차트로 소환됐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시작은 초라했지만, 반전은 유튜브에서 나왔다

리센느를 키운 더뮤즈엔터테인먼트(THE MUZE ENTERTAINMENT)는 소속 아티스트가 이 팀 하나뿐인 작은 회사다. 대표 이주헌은 1990년생으로, 과거 보컬 그룹 '하이브로우' 멤버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다. 경영진 상당수도 미국 버클리 음대 선후배 사이로 꾸려졌다. 회사 설립 초기 자본금은 천만 원 수준이었고, 비가 새고 냉방 시설조차 없는 지하 연습실에서 멤버들이 훈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일화를 전해 들은 현재 팬들은 "중소기업도 아닌 자영업 수준 아니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원이, 리브, 미나미, 메이, 제나로 구성된 리센느는 한국인 네 명과 일본인 한 명이 섞인 다국적 팀으로, 데뷔 당시 평균 나이가 채 열일곱이 되지 않았다. 다만 완전히 무명이었던 팀은 아니다. 2024년 3월 데뷔 음반은 초동 판매량 3만 4000여 장으로 역대 K팝 걸그룹 데뷔 음반 초동 순위 10위에 올랐고, 2025년 11월 나온 미니 3집은 초동 10만 장을 넘기며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이 성과가 코어 팬덤 바깥으로 확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음반은 팔리는데 음원 차트와 방송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이른바 4~5세대 아이돌 경쟁에서 1·2군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3군'으로 분류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대형 기획사의 티저 프로모션이나 대형 방송 무대를 기대할 수 없던 리센느가 선택한 건 유튜브였다. 다만 접근 방식이 여느 아이돌과 달랐다. 음악 홍보 대신 B급 감성과 친근함을 앞세운 것이다. 원이가 개설한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안원잘부)는 2026년 2월 문을 연 뒤 이번 달 기준 구독자 137만 명, 누적 조회수 2억 4000만 회를 넘겼는데, 정작 이 채널엔 리센느 노래 영상이 하나도 없다. 멤버들의 일상과 예능 콘텐츠, 다른 가수 커버 영상이 전부다. 채널명을 굳이 길고 어색하게 지은 것도 이런 노선의 연장인데, 오히려 그 어색함 때문에 대중의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계산이었다고 한다.

이 채널은 원래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기획됐다. 제작을 맡은 솔파스튜디오의 윤성원 PD도 처음에는 원이나 리센느를 잘 알지 못했다. 팀원의 추천으로 원이가 출연한 외부 콘텐츠를 본 뒤, 한 기업 홍보 프로젝트의 진행자로 그를 섭외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원이의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기획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솔파스튜디오는 방향을 바꿔 원이를 주인공으로 한 자체 채널을 만들었다. 거절당한 외주 기획이 '안원잘부'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사진=안원잘부 유튜브 채널

전환점이 된 건 2026년 3월 말 올라온 영상이었다.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갸루 콘셉트로 분장하고 등장하자, 거제 토박이인 원이가 "이 모습으로 거제에 가면 시민들에게 혼난다"는 취지로 농담을 던졌고, 미나미가 손으로 뒤집힌 V자를 만들며 특유의 텐션으로 "거제, 야호~"라고 되받아친 짧은 반응이 순식간에 퍼졌다. 이후로도 멤버 각자가 저마다의 유행어와 웃음 포인트를 앞세운 캐릭터로 하나둘 등장하며 채널 전체의 화제성을 끌어올렸다.

이후 원이와 미나미가 실제로 거제를 돌아다니며 소개하는 영상이 이어졌고, 영상에 등장한 통닭집에 실제 관광객이 몰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흐름을 타고 리센느 전원이 거제시 홍보대사로 위촉됐으며, 이후로도 리브의 고향 수원시, 제나의 고향 경주시, 메이의 고향 고양시까지 순차적으로 홍보대사 자리를 맡으며 한국인 멤버 전원이 자신의 출신 지역 홍보대사가 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익명을 요구한 K팝 업계 관계자 A 씨는 이번 역주행을 몇 가지 조건이 겹친 결과로 분석했다. 그는 우선 "중소 기획사 걸그룹이지만 비주얼이 좋고 열심히 하는 멤버들이 모였다"고 평가하며, 소속사 경영진이 로드매니저처럼 직접 발로 뛰며 홍보한 것을 두 번째 배경으로 짚었다. 

또한 A 씨는 "최근 몇 년간 강하고 도도한 이미지의 걸그룹이 주류를 이루면서 일부 남성 팬층 사이에서 피로감이 쌓인 측면이 있다. 지방 출신 특유의 소탈함과 꾸밈없는 모습, 거기에 밑바닥부터 올라온 헝그리 정신까지 갖춘 리센느가 그 반작용으로 20·30대 남성 정서에 제대로 파고든 것"이라며 "2년 전 나온 노래 자체가 원래 나쁘지 않았던 데다 멤버 원이 유튜브 채널이 뜨면서 그 곡이 자연스럽게 재조명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흙바닥에서 춤추고, 적은 팬 앞에서 대여섯 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하는, 요즘 보기 드문 헝그리 정신이 쌓여서 나온 결과"라고 정리했다.

차트를 넘어 번진 흥행, 논란도 꺾지 못한 호감

콘텐츠 화제성은 곧바로 음원 성적으로 옮겨붙었다. 2024년 8월 발매한 '러브 어택'은 올해 상반기 멜론 일간 차트에 재진입한 뒤 빠르게 순위를 끌어올렸고, 7월 8일 밤 톱100 차트 1위에 올랐다. 발매 후 약 2년 만의 정상 등극이었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같은 날인 7월 8일 발매한 카라(KARA)의 동명 곡 리메이크 '프리티 걸'도 발매 하루 만에 상위권에 안착했다. 7월 14일 현재 멜론 톱100에는 '러브 어택'(1위), '프리티 걸'(6위), '데자뷰'(23위), '런어웨이'(40위)까지 총 4곡이 올라 있다. 한 곡만 반짝 흥행한 것이 아니라 신곡과 과거 곡이 동시에 차트 상위권에 오른 셈이다. '프리티 걸' 선곡을 두고는 카라의 인지도에 기댄 무난한 카드라는 평과 함께, 원곡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곡인 만큼 향후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둔 선곡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흥행은 차트 밖으로도 번졌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7월 초 발표한 신인 아이돌그룹 브랜드평판 조사에서 리센느는 대기업 소속 그룹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개인 브랜드평판에서도 원이와 미나미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도미노피자는 리센느를 신규 모델로 발탁하며 '젠지 아이콘'이라는 표현을 앞세웠다. '거제 야호'와 함께 탄생한 뒤집힌 V자 손동작은 새로운 촬영 포즈로 자리 잡아, 배우 조승우와 소지섭이 각각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이 포즈를 선보였고, 프로축구·프로야구 선수들도 세리머니로 따라 했다. 

사진=BTS 진 인스타그램

밈의 확산은 K팝 최정상까지 닿았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 뷔, 진이 공연과 SNS를 통해 잇달아 '야호'를 외치며 리센느 밈에 동참했고, 11년 차 BTS 팬을 자처해 온 일본인 멤버 미나미는 '성덕'이 된 소감을 전해 화제가 됐다.

예능가의 반응도 뜨거웠다. JTBC '아는 형님'에 원이와 미나미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데 이어,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는 멤버 전원이 출연해 화장실 하나를 다섯 명이 함께 쓰던 예전 숙소 사연과 새 숙소 입성기를 공개했고, 해당 회차는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 산업적 평가도 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월 중소 기획사 아이돌 해외 진출 지원 사업 대상으로 리센느를 선정했고, 같은 달 벤처캐피털로부터 2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도 유치했다.

가파른 상승세 이면에는 논란도 있었다. 원이가 콘텐츠에서 쓴 사투리 표현이 특정 정치 성향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돼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해당 표현을 경상도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로 보는 반론이 우세했고, 거제시가 공식 입장문으로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제기했던 측 일부도 유감이나 사과의 뜻을 표했다. 논란은 인기에 타격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리센느를 옹호하는 반응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대세를 넘어 1군으로, 남은 조건들

대중이 이 팀을 응원하고 논란 앞에서도 감싸는 배경에는 좀 더 근본적인 정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B 씨는 "AI 콘텐츠와 정교하게 기획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발로 뛰며 만들어진 예측 불가능한 성장기 자체가 희소한 콘텐츠가 됐다"며 "시청자들은 이 그룹을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2000년대 아이돌들에 빗대며, 대형 기획사 그룹들의 화려한 데뷔나 잦은 분쟁 소식과 대비되는 모습에 호감과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B 씨는 이 서사의 주인공이 멤버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대표와 직원들이 손편지와 프로필을 들고 방송가를 직접 돌고, 무명 시절 무대를 보며 대표가 눈물을 보였다는 일화까지 알려지면서 대중이 회사 전체를 하나의 성장 서사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리센느가 얻은 호감은 절박함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가 아니라, 그 절박함이 오랜 시간 콘텐츠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만 향후 성장 가능성에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앞서 A 씨는 지금의 리센느를 '3군'에서 벗어나 1.5군 정도로 올라선 단계로 평가했다. 그는 "1군은 보통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아일릿 정도를 꼽고 여기에 엔믹스를 추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리센느가 화제성은 압도적이지만 거기까지 갔다고 보긴 아직 이르다"며 "최근 브랜드평판 1위 같은 지표도 실력이나 팬덤 규모보다 순간적인 화제성이 많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그가 꼽는 관건은 두 가지다. 후속 히트곡과 해외 팬덤이다. A 씨는 "1군 평가 기준인 콘서트 규모를 키우려면 결국 히트곡이 몇 곡 더 나와야 하고 해외 팬덤이 받쳐줘야 한다"며 "'안원잘부'나 리센느 공식 채널 댓글창만 봐도 외국어가 거의 안 보이고 가끔 일본어가 보이는 정도"라고 짚었다. 팬덤 상당 비중이 해외 팬으로 채워진 다른 인기 그룹들과 비교하면 아직 국내 팬 중심의 초기 단계라는 진단이다. 소속사 경영진이 음악을 보는 눈을 갖춘 데다 자금까지 유입되기 시작한 만큼 좋은 곡과 제작진을 확보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게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의 근거다.

리센느의 역주행이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결국 후속곡과 해외 팬덤이 결정할 것이다. 다만 노래 한 곡보다 멤버와 팀의 성장 서사에 대한 애정이 먼저 형성됐다는 점은 기존의 밈 중심 역주행과 다른 출발점이다. '거제, 야호~'가 만들어낸 관심을 지속 가능한 팬덤으로 바꿀 수 있을지, 다음 활동이 리센느의 진짜 위치를 가르게 된다.

2026년 연말 일본 본가를 방문한 미나미는 새해 목표를 다짐하기 위해 5시간 동안 붓을 잡고 한자 네 글자를 써 내려갔다. 백화요란(百花繚乱),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 한꺼번에 만발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뜻이었다. 미나미는 그 자리에서 "리센느가 백화요란의 시대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멜론 차트 1위 소식이 터졌다. 서예 경력 30년이라는 한 팬이 그 영상 댓글에 남긴 말이 화제가 됐다. "그대의 마음에서 시작했던 하나의 진심으로 인해 그대의 백화들은 이제 온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라기보다 즐겨도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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