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미국에 겨울이 오고 있다

2024. 10. 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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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위험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예고 없이 다가와 목을 겨눈다. 대선 한복판에 있는 미국을 향해 조용히 위험이 다가서고 있다.

미 대선 과정을 보면 세계적으로 히트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 떠오른다. 가상의 중세대륙 웨스테로스의 패권을 잡기 위한 7개 가문의 무한투쟁과 이념대립, 복잡한 동맹과 배신,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를 보면 미 대선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웨스테로스 가문들이 내부 적과의 투쟁에 골몰할 때 조용히 북쪽의 거대한 빙벽 너머에서는 ‘화이트 워커(white walker)’라고 불리는 거대한 세력이 침공하기 위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가문들이 이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스타크 가문의 존 스노우는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고 외치며, 자신들끼리 싸울 게 아니라 화이트 워커의 침입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의 경고처럼 미 대선에도 조용히 겨울이 오고 있다.

「 푸틴, 시진핑 트럼프 당선 원할 것
미 고립주의로 각자 세력권 확보
북한도 해리스보다 트럼프 선호
핵협상 위한 정상회담 재개 기대

미국을 위협하는 국제정치의 화이트 워커는 누구인가?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가질 사람을 뽑는 미 왕좌의 게임에서 화이트 워커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과 북한의 김정은이다. 이들이 투표할 수 있다면 모두 트럼프에 표를 던질 것이다. 왜 이들은 트럼프를 원할까.

우선 트럼프는 카리스마를 가진 ‘강한 지도자’를 좋아한다. 그는 대통령 재직 시 푸틴 대통령과 밀월관계였다. “나는 시진핑을 사랑한다”고도 했다. 김정은과는 ‘러브 레터’를 주고받았다. 화이트 워커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요약되는 트럼프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은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고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면 이들이 원하는 국제질서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몇 개의 세력권으로 나뉘고 각자 자신의 세력권을 통제하는 질서다.

트럼프의 승리를 가장 반길 나라는 러시아다.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의 책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를 보면 2016년 러시아는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 러시아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다수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 힐러리 클린턴의 명예를 훼손하고 트럼프를 측면 지원했다. 만일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협상에 나오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 중인 땅을 내주고 협상을 타결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러시아가 주장해온 평화공식이자 종전방식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시진핑도 트럼프를 원한다고 본다. 미·중 패권다툼이라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달성에 트럼프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공조하여 강경한 외교정책을 통해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해온 바이든 행정부보다는 무역전쟁에만 초점을 두어온 트럼프가 낫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겉으로는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반중정서를 이용한 대선 득표 전략의 성격이 더 강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항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국, 일본 등을 묶어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했지만,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과 통상문제로 동맹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대만 문제에서도 바이든과 달리 확고한 방어공약을 하지 않는 트럼프가 낫다.

김정은도 트럼프를 원할 것이다. 해리스는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다”고 하는 강경한 원칙론자이다. 반면 트럼프는 “핵무기를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김정은과 정상회담 추진의사를 여러 번 밝혔다. 북한에게는 원칙을 견지하는 해리스보다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선호하는 트럼프가 낫다. 트럼프는 방위비 문제로 한미동맹을 훼손하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도 있으니, 이런 귀인이 어디 있겠는가.

적에게 좋은 것이 미국에게 좋을 리 없다. 화이트 워커들이 모두 트럼프의 승리를 원하는 것은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국익우선”을 외치고 있으나, 그것은 편협하고 거래적인 이익일 가능성이 높다. 화이트 워커들은 미국과의 장기적인 국력대결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트럼프의 승리를 원한다. Winter is coming! 다가오는 겨울은 미국에게 위기가 될 것이다. 태평양 너머 우리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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