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평선 넘어, 수평선 향해"…윤하, 20년의 성장사
[Dispatch=김다은기자] '태양물고기' 뮤직비디오 한 장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바닷가. 한 소녀가 절벽 끝에 서 있다. 이내 바다를 향해 힘차게 온몸을 던진다.
폭풍우에 배가 난파될 위기도 무릅쓴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있어도 1%의 주저함과 망설임이 없다. 그저 당차게 모험할 뿐이다.
가수 윤하는 10년 전 '바다 아이'를 발매했다. 숨을 참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깊은 바다로 가겠다고 노래했다. 그러나 이번엔 숨을 쉬고 눈을 뜨고 귀를 연채 탐험에 나섰다.
어느 팬의 리뷰가 정곡을 뚫었다.
"(10년전) '바다 아이'는 끝없이 추락하는 절망과 비명같은 노래였다. 지금 '태양물고기'는 시련에도 언제나 태양처럼 빛나겠다는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난다. 단단해진 윤하를 보는 게 행복하다."
윤아만의 지평선, 그 끝은 어디일까. 윤하는 "가장 어두운 심해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산하는 개복치처럼, 우리도 삶을 잘 유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든 앨범이다"고 말했다.
◆ 성장하는 서사
윤하는 '띠어리' 시리즈로 소녀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시리즈의 시작인 정규 6집은 지구를 사랑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이번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은 바다를 유영하는 소녀의 서사다.
총 3가지 소재가 등장한다. 소녀와 개복치, 그리고 작고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바다 여정이다. 또 그 과정에서 소녀가 다양한 주체들과 교감하며 깨닫는 성장에 관한 작품이다.
스토리 기획, 앨범 작업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 윤하는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지난 앨범부터 세계관을 작업하고 있다"며 "(곧 나올) 리패키지에 풀 스토리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윤하는 이번 세계관의 시작부터 고민됐다. 그러다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첫 번째 트랙 '맹그로브'를 탄생시켰고, 신보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상할 수 있었다.
"앨범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호주 여행을 갔죠. 그곳에서 '맹그로브'라는 나무를 만났고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그 곡을 쓰면서 바다를 여행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계획이 시작됐죠."
앨범 주제는 그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윤하는 "'원피스'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세계를 누비는 이야기는 어떨까 싶었다. 일단 바다와 관련된 책과 영화는 다 봤다"고 말했다.
그러다 제시카 왓슨을 발견했다. 16살에 무동력 요트로 전 세계를 일주한 최연소 항해사다. 윤하는 "그 소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탐험한다면, 어디에 좌표를 찍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마음으로 트랙을 쌓아갔다"고 했다.
◆ 세상의 모든 '개복치'를 위해
윤하만의 좌표에 정점을 찍은 타이틀곡은 '태양물고기'다. 개복치의 영문명 'Sunfish'를 직역한 표현. 윤하가 '개복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또 그와 닮은 '우리'를 위해 만든 노래다.
"우연히 생물 채널을 보다가 개복치 영문명을 알게 됐어요. 나약한 생물로 생각했는데, 수명도 20년이고 수면에서부터 800m 해저까지 내려가는 생물체더라고요. 발광할 때는 바다에 태양이 떠 있는다는 느낌까지 들죠."
윤하가 다시 만난 개복치는 '바다의 태양'이었다. 그는 "어둡고 깊은 바다에서도 빛을 내는 개복치처럼, 우리도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담았다"고 이야기했다.
윤하의 깊어진 음악 역량 또한 신보의 하이라이트. 10곡 모두 자작곡이다. 그는 "너무 무거운 작업이었다. 요령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단 입학했으니 졸업하자는 마음으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었다. "자칫 평범해질 수 있던 곡이었는데 주변 음악인들에 많이 도움받았다"며 "인트로 리프 하나까지 함께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나눠주신 덕분이다"고 겸손했다.
앨범을 총괄하는 스토리에도 '함께함'의 의미를 더했다. 윤하는 "성장은 혼자 이륙할 수 없다. 끊임없이 교류하고 부딪히며 서로 깎이며 형태가 된다"며 "함께 서로 우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작품이다"고 바랐다.
◆ 20년 동력은, 님들이었다
윤하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베테랑이다. 그간의 동력은 팬들을 향한 부채였다. "항상 팬들이 돌려주시는 게 더 많았다. 늘 (사랑을) 다시 갚아야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0년의 항해 속 늘 잔잔한 파도만 만났던 건 아니었다.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4집 '슈퍼소닉'과 미니앨범 9장을 내고, 직접 만든 레이블이 와해됐고 팬들까지 잃었다.
윤하는 "그렇게까지 혼자였던 적은 처음이었다"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사실은 모두가 만들어주고 구현만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오랜 슬럼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정규 앨범도 5년 동안 미룰 만큼 고독했다. 하지만 윤하를 다시 동굴에서 꺼내 일으켜 세워준 건 또 다른 부채였다. 윤하는 그 또한 팬들이 이끈 일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때 당시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 문고리, 마루 타일 하나도 팬들이 다 사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불편했죠. 덕분에 좀 빨리 슬럼프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음악으로 보답하고 싶었죠."
팬들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윤하는 "잘 키우셨으니 고생 많으셨고 그만큼 효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며 "님들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다"며 애정을 표현했다.
◆ 소녀의 꿈은 데뷔 50주년까지
157cm의 가녀린 몸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성량과 호소력 짙은 울림통까지. 윤하는 목소리 하나로 시시각각 변하는 음악 시장에서 자신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왔다. 현재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보컬이다.
윤하는 처음의 윤하를 다시 찾았다. "데뷔 초반에는 일도 많이 하고 휘둘리기도 하면서 배웠다. 짠하고 불안하고 대견하다"며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친구다"고 말했다.
음악을 향한 열정은 처음과 같다. 현재 음악 이론을 다시 공부하려고 계획 중이다. 그는 "지도자 과정 다시 들으며 (음악으로) 채득한 것들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다"고 전했다.
하고 싶은 장르와 소재도 아직 무궁무진하다. 그는 "더 원숙해지면 재즈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서 "제가 우주와 바다를 오가니 '선 넘었다'는 반응도 있더라. 또 다른 것에 재미를 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음악으로는 정점을 찍은 윤하. 하지만 그 자신에게 음악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윤하는 "조용필 선배님처럼 50년까지 하고 싶다"며 "팬들과 2060년 공연을 열까지 잘 살아있자고 이야기했다"며 기대했다.
윤하는 오늘도 다시 작업실로 발걸음을 향한다. 음악을 하고 "직장인처럼 지내려고 한다. 출근할 곳이 있는 게 감사하다"며 털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진제공=C9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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