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위한 ‘포용의 리더십’… ‘마초 문화’ 변화를 이끌다 [Leadership]
59.4%
역대 최고 지지율로 취임
에너지박사
중남미 최고 명문 UNAM 학위
포니테일 헤어
전문성·친서민 이미지 강조
친시장 행보
아마존 등 총 200억달러 투자유치
남녀차별철폐
임금격차 없애고 女상대 폭력근절
2대 과제
마약범죄·재정적자 해결이 관건
남성 중심의 ‘마초 문화’가 지배적인 멕시코에서 200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멕시코 내에서 ‘최초 여성’이란 타이틀을 도맡아온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여성 최초일 뿐만 아니라 역대 최고 지지율(59.4%)로 지난 1일(현지시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뿌리 깊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 약자에 대한 ‘포용 리더십’으로 여성은 물론 남성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여성·빈자 돌볼 것” = 셰인바움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남성 중심 문화에 소외돼 온 여성과 높은 빈부 격차에 내몰린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제 변화의 시대이자, 여성을 위한 시간”이라며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가난한 사람을 먼저 돌본다는 우리 인본주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취임식 후 인근 소칼로 광장으로 이동한 셰인바움 대통령은 시민들 앞에서 여성과 저소득층을 위한 100가지 공약도 발표했다.
첫 정책은 취임 이틀 만에 나왔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3일 여성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남녀 임금 차별을 없애는 내용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가부장적 ‘마초 문화권’의 그림자로 꼽히는 여성 상대 폭력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정책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장기간 육아와 근로를 병행한 중장년 여성 복지에 중점을 두는 ‘조국의 보호자들’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가 첫발을 떼도록 하기 위해 기존 65세 이상이었던 연금 수령자를 60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셰인바움 대통령이 여성 중심 정책을 내놓았음에도 국민 전체적인 지지가 큰 이유는 그만큼 멕시코 내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쌓였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멕시코에서는 같은 직종이어도 여성이 남성보다 최대 30∼40% 적게 받는 임금 격차가 사회문제로 인식돼 왔다. 그의 정책이 여성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 비중이 높다는 점도 높은 지지율의 또 다른 배경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서민 가계 지원을 위해 최저임금을 전 정부에 이어 매년 두 자릿수 인상하기로 했다. 또 급등한 식품 가격의 상한제 도입, 여성·어린이를 위한 현금 지원 프로그램 확대, 기업 투자 및 주택·철도 건설 지원, 공공 의료서비스 확충 등에도 나서기로 했다.
◇좌파지만…‘포니테일’ 헤어스타일로 전문성 강조하고 기업 유치에 사활 = 셰인바움 대통령은 중남미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멕시코 국립자치대(UNAM·우남)에서 에너지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멤버이기도 하다. 정치권에는 2000년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발을 들이게 됐다. 이후 최초로 멕시코시티 시장(2018∼2023년)에 당선되며 정계에서 승승장구했다.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쌓아온 것과 달리 그의 스타일은 중성적이다. 전문가들은 검은색 머리를 질끈 묶은 그의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주목하며 지지층 결집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행보라고 해석했다. 그가 속한 사회주의 집권정당의 약자인 모레나(MORENA)가 스페인어로 ‘검은 머리’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화려하지 않은 머리 스타일로 전문성과 친(親)서민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로 착용하는 의상 색상도 보랏빛이 도는 적갈색인데, 통상 적갈색 의상은 통합과 포용의 상징으로 꼽힌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극단을 아우르는 색상의 의상을 통해 ‘통합’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취임 보름 만인 15일엔 해외 기업 기자간담회에 나서며 친시장 행보도 보였다. 이날 셰인바움 대통령은 세라 베어스토 멕시코퍼시픽 대표와 수잰 클라크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등장해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 글로벌 크루즈 선사인 로열캐러비언, 에너지 업체 멕시코퍼시픽 등 투자 유치 기업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러면서 “멕시코로의 투자가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인지에 대한 방증”이라며 해당 기업들에 감사를 표했다. 이후 투자자들에게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기 위해 장관급 신설 기관인 디지털변혁청을 통한 제반 금융 관련 절차 간소화·투명화도 약속했다. 좌파 대통령 집권에 따른 반시장 정책 강화를 우려한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나선 것이다.
◇치안 강화·경제 회복 등 과제 산적 = 첫 출발은 긍정적이지만, 셰인바움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치안을 회복하는 것이다. 멕시코는 마약 카르텔로 인한 범죄가 끊이질 않아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상태다. 당장 마약 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의 내분으로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달 초엔 취임한 지 6일밖에 되지 않은 멕시코 남부 게레로주 칠판싱고시의 알레한드로 아르코스 시장이 살해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셰인바움 대통령은 9일 갱단을 향한 군·경찰 공동 대응과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하는 등의 전략을 발표했지만 “마약 카르텔과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제난 해결도 쉽지 않은 과제다. 전임 정부가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인프라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올해 멕시코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셰인바움 대통령이 공약한 최저임금 인상, 공공 프로젝트와 대규모 복지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셰인바움 대통령이 불가피하게 세금 인상에 나서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전임 오브라도르 정권의 사법 개편으로 법조계의 강한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을 불러온 판사 직선제 시행 갈등을 어떻게 타개할지도 주목되고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 역시 판사 직선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3일 멕시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멕시코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판사 직선제에 대해 “사법부가 합헌성 여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려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2026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유지할지, 수정할지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이민자 문제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갈등 요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승리 시 취임 첫날 멕시코와의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고 천명한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경제는 물론 외교적인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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