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스토브리그 첫 번째 대형 계약이 터졌다.
조시 네일러(28)가 5년 9250만 달러 계약으로 시애틀에 잔류했다. 네일러는 연평균 1850만 달러를 보장받았고, 자신의 동의 없이 팀을 옮길 수 없는 '전 구단 트레이브 거부권'을 확보했다.
당초 네일러는 연평균 2000만 달러 계약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타자에게 까다로운 시애틀 홈구장에서 26경기 타율 .360 5홈런, OPS 1.015를 기록할만큼 공격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네일러는 금액을 줄이는 대신, 기간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 그 정도로 시애틀에서 뛰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시애틀도 빠르게 계약을 안겨주면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네일러의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FA 시장도 기지개를 켰다. FA 주요 선수들을 '기록'을 통해 소개해본다.

카일 터커(28세, 외야수)
명실상부 이번 FA 최대어다. 2022년부터 4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고, 그 사이 실버슬러거(2회)와 골드글러브(1회)를 수상했다. 공수에서 모두 두각을 보였다.
승리기여도는 가장 대중화된 세이버 지표다. 대체 선수 대비 얼마나 승리에 기여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공격 수비 주루를 총망라한 부분도 승리기여도의 강점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 평가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외야수 승리기여도
42.8 - 애런 저지
30.7 - 후안 소토
25.2 - 무키 베츠
23.4 - 카일 터커
터커는 승리기여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21년 이후 외야수 4위다. 2024년에는 78경기만 뛰고도 승리기여도 4.2를 올렸다. 승리기여도에 특화된 유형이다.
승리기여도를 돈으로 환산하면 1.0당 800달러 정도다. <팬그래프>에 의하면 터커는 2021년 이후 매년 3000만 달러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다. 현재 기량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지금이라면 원하는 4억 달러 이상 계약은 충분히 따낼 수 있다.
보 비셋(27세, 유격수)
타격 능력만 보면 메이저리그 최상급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294로 3할에 가깝다. 2021-22년에는 연속 리그 최다안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지난 시즌에 타율이 .225로 떨어졌는데, 올해 .311로 반등한 모습도 고무적이다.
올해 비셋은 저지에 이어 타율 전체 2위였다. 그런데 최근 메이저리그는 표면적인 성적을 넘어 타구의 질도 따진다. 타구의 질을 바탕으로 결과에 운이 따랐는지를 추측한다.
2025 기대 타율 순위
.306 -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304 - 애런 저지
.299 - 보 비셋
기대 타율은 타구의 질로 계산된다. 타구속도와 발사각도를 기반으로 해당 타구가 나왔을 때 그 이전 결과들이 취합된 값이다. 올해 비셋은 기대 타율도 세 번째로 좋았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성적이 개선된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타구들을 양산했다.

실제로 비셋은 지난해 타구속도가 평균 89.2마일로 내려갔는데, 올해 91마일로 빨라졌다. 특유의 강한 콘택트가 이뤄지면서 그 이전 타격감을 완전히 되찾았다.
비셋 평균 타구속도 변화
2021 : 91.4마일
2022 : 91.9마일
2023 : 90.2마일
2024 : 89.2마일
2025 : 91.0마일
정확성과 파워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약점이 노출된다. 그러나 비셋은 단순히 공을 맞히는 것을 넘어 어느 정도 힘을 실어서 때려낸다. 20홈런도 가능한 유형이다.
다만, 비셋은 유격수 수비가 수명을 다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비 지표인 DRS(디펜시브런세이브)와 OAA(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 모두 유격수 최하위다(DRS -12 & OAA -13). 유격수로서 이러한 타격을 펼친다면 몸값이 더 높아지겠지만, 비셋을 눈여겨보는 팀들은 포지션 이동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이 계약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딜런 시즈(29세, 투수)
시즈의 매력은 내구성이다. 이닝 소화는 모든 팀들의 공통 과제다. 시즈는 5년 연속 규정이닝을 넘기고 있는 셋 중 한 명이다(케빈 가즈먼, 호세 베리오스).

시즈의 가장 큰 매력은 구위다. 타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 기복이 심한 탓에 제구가 들쑥날쑥하지만, 긁히는 날은 누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5년 연속 규정이닝은 시즈 외에 두 명이 더 있었지만, 5년 연속 200삼진은 현재 시즈만 이어가고 있는 기록이다.
많은 삼진을 잡으려면 결정구가 필요하다. 시즈는 폭발적인 포심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다. 다른 구종도 던지지만, 포심 슬라이더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5년 연속 200삼진 고지를 밟은 유일한 투수이기 때문에 슬라이더 탈삼진 순위를 알아보는 건 무의미하다. 같은 기간 슬라이더 탈삼진 수 599개로, 이 부문 2위 카를로스 로돈(415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2021-25 슬라이더 헛스윙률
52.5% - 스펜서 스트라이더
47.5% - 제이콥 디그롬
45.7% - 헤수스 러사르도
44.5% - 딜런 시즈
구종의 강력함은 헛스윙률에서 드러난다. 시즈는 같은 기간 슬라이더 헛스윙률이 전체 4번째로 높았다. 많이 던졌지만, 타자들이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결정구를 갖춘 파워피처는 늘 귀하다. 시즈는 커리어 내내 심각한 부상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더 대우를 받을 것이다. 원 포인트 레슨이 통할 경우엔 더 발전할 여지도 있다.
프램버 발데스(32세, 투수)
휴스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기는 법을 아는 투수다.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이어가면서, 도합 68승을 올렸다. 같은 기간 최다승 1위다(맥스 프리드 66승).
2021-25 통산 땅볼 비중
61.6% - 프램버 발데스
57.8% - 로건 웹
57.5% - 크리스토퍼 산체스
싱커와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발데스는 땅볼 유도에 자신이 있다. 장타를 억제하면서 출혈을 최소화한다. 같은 기간 9이닝 당 피홈런도 0.70개로 대단히 적었다. 내야 수비가 견고한 팀이라면 발데스와 더 좋은 궁합을 자랑할 것이다.
큰 경기 경험도 풍부하다. 포스트시즌 통산 17경기 7승6패 평균자책점 4.34다(85이닝). 2022년 월드시리즈에서는 6.1이닝 1실점, 6이닝 1실점으로 휴스턴의 우승을 견인했다. 포스트시즌에서 계산이 서는 투수는 가치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걸림돌은 나이다. 시즈하고 달리 또 다른 고점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올해 땅볼 유도 능력은 여전했지만, 허용한 평균 타구속도가 90.8마일로 안정적이진 않았다. 빗맞은 타구보다 잘맞은 타구가 많았다. 아무리 땅볼이라고 해도 빠른 타구는 내야를 뚫고 지나간다.
올해 포수 살라자르에게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감점 요소다. 팀 분위기를 흐리는 선수는 어느 곳도 환영하지 않는다. 휴스턴이 발데스 잔류에 미온적인 건 이유가 있다.
카일 슈와버(32세, 지명타자)
올해 FA를 앞두고 최고 시즌을 보냈다. 56홈런 132타점은 리그 1위였다. 덕분에 MVP 투표에서 오타니 다음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슈와버는 통산 두 번째 홈런왕이다. 2022년에도 홈런왕에 오른 바 있다(46홈런). 올해 개인 최다 홈런을 때려냈지만, 그 이전부터 홈런에 있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017년 이후 최다홈런
364 - 애런 저지
324 - 카일 슈와버
288 - 맷 올슨
287 - 에유헤니오 수아레스
2017년 이후 300홈런을 넘긴 타자는 단 두 명. 그 중 한 명이 바로 슈와버다. 슈와버의 홈런은 구장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믿을만하다. 흥행보증수표로 불리는 홈런은,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에서도 승패를 좌우한다.
무작정 홈런만 많이 치는 타자는 인기가 없다. 만약 슈와버도 2년 전처럼 1할대 타자로 남았다면 평가가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좌완 상대 약점을 개선하면서 타율도 2할대 중반까지 끌어올렸다. 좌완 상대 성적도 지난해 타율 .300, OPS 0.898에 이어 올해도 타율 .252, OPS 0.964였다.
이 변화에 대해선 이전에 이미 다룬 적이 있다.
'슈와버는 달라진 비결로 '마음가짐'을 꼽았다. 좌완을 마주쳐도 주눅들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필사(必死)의 심정으로 타석에 들어선다고 말한 바 있다(You have to be prepared to die). 그 일환으로 C-플랩(flap)으로 불리는 일명 '검투사 헬멧'을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좌완을 상대하는 타석에선 오른손과 왼 손목에 보호대를 더 준비하고 나갔다.'
이전이었다면 큰 계약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메이저리그는 나이에 의한 노쇠화, 에이징 커브(aging curve)에 민감하다. 내년 3월에 33세가 되는, 그리고 수비와 주루는 평균 이하인 선수는 수요가 제한적이다. 선택지가 많진 않을 것이다.
피트 알론소(30세, 1루수)
슈와버와 비슷한 유형. 타석에서 언제든지 한 방을 날릴 수 있다. 지난해 FA 시장에 나왔지만, 원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1년 재수'를 택했다. 그러면서 올해 38홈런 126타점을 기록, 타율도 .272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데뷔 첫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2025 타석 당 배럴 타구 비율
14.1% - 애런 저지
13.8% - 오타니 쇼헤이
12.6% - 피트 알론소
배럴(barrels)은 타자가 생산하는 가장 이상적인 타구다. 타구속도와 발사각도가 최상의 조화를 이뤄 최고의 결과를 기대한다. 올해 알론소는 이 배럴 타구 생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8.3%에서 올해 12.6%로 상승해 저지, 오타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1루 수비의 완성도는 아쉽지만, 슈와버 달리 수비를 볼 수는 있다. 또 절치부심했을 때 어떤 타자로 거듭나는지를 보여줬다. 이미 보스턴이 관심을 드러내는 가운데, 보스턴처럼 돈을 쓰는 팀이 나서면 몸값은 더 뛰기 마련이다. 지난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디 벨린저(30세, 외야/1루수)
카일 터커의 하위 호환. 터커와 마찬가지로 공격과 수비 주루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MVP를 거머쥔 2019시즌처럼 돌아갈 순 없지만, 커리어 동안 빅마켓 팀(다저스 컵스 양키스)을 거치면서 하락세를 극복한 멘탈은 높이 사야한다.
2023-25 좌완 상대 좌타자 타율
.329 - 코디 벨린저
.291 - 프레디 프리먼
.287 - 브라이스 하퍼
.282 - 루이스 아라에스
.281 - 카일 터커
이전보다 정확성을 추구하는 벨린저는 더 이상 좌완 상대로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좌완을 만났을 때 진가를 보여준다. 내로라하는 좌타자들보다 더 좌완에게 강했다. 올해도 좌완 상대 타율이 .353, OPS는 1.016에 달했다.
3년 전 27.3%로 높았던 삼진율도 지난 2년간 15.6%로 낮추더니, 올해는 13.7%까지 떨어뜨렸다. 타석에서 무리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물러나는 타석도 줄었다. 이는 세월에 직면해도 최대한의 방어력을 가진다. 터커가 너무 비쌀 경우, 훌륭한 차선책이 될 것이다.
알렉스 브레그먼(31세, 내야수)
이번 FA 시장은 재수생들이 넘친다. 알론소, 벨린저처럼 브레그먼도 더 좋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일보후퇴를 했었다. 휴스턴 시절 리더십을 올해 보스턴에서도 보여주면서 성적도 준수했다(114경기 타율 .273 18홈런, OPS 0.821).
2023-25 통산 볼삼비 (2000타석)
1.13 - 루이스 아라에스
1.09 - 후안 소토
0.98 - 스티븐 콴
0.86 - 알렉스 브레그먼
브레그먼의 최대 장점은 선구안이다. 좋은 공과 나쁜 공을 선별할 줄 안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으면서, 볼넷은 잘 골라낸다. '출루'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타자다.
많은 팀들의 이목을 끄는 선수다. 그런데 2년 8000만 달러 잔여 계약을 포기하고 나왔다는 건, 그만큼 장기 계약을 바란다는 것이다. 눈높이에 맞는 계약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