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잃은 위성, 태양 재채기 '태양폭풍'이 주범

김소연 기자 2024. 9. 28.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ㅇ1 2024년 5월 10일 강한 태양폭풍이 지구에 도달하면서 오로라를 쉽게 관측할 수 없었던 일본, 체코, 스페인 등 중위도 지역의 국가에서 오로라가 관측됐다. 사진은 이날 체코 프라하에서 관측된 오로라

2024년 5월 전 지구에 폭풍이 닥쳤다. 극대기를 맞아 활발히 활동하던 태양이 5월 8일 지구를 향해 플라즈마로 된 '재채기'를 한 것이다. 

대규모 태양 폭풍에 지구에는 초속 500km 이상의 거대한 플라즈마가 도달했다. 세계 각국이 플라즈마에 의한 통신장애를 막기 위해 비상 대비에 들어간 가운데 5월 10일부터 12일 사이 밤하늘엔 아름다운 오로라가 펼쳐졌다. 이처럼 태양 활동에 따라 벌어지는 이채로운 현상들을 '우주날씨'라 부른다. 극대기를 맞이한 태양은 앞으로 지구에게 또 어떤 날씨를 보여줄까.

● 강력한 태양폭풍, 한반도에 드리워진 오로라 커튼

박정하 용인어린이천문대 팀장은 5월 11일을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들떴던 날로 기억한다. 원래도 별을 보는 건 좋아했다. 직업으로 선택할 만큼. 그런데 10일 밤 세계 곳곳에서 오로라가 관측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아침 뉴스를 뒤덮었다. 

심지어 한국과 위도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됐다고 했다. '혹시 우리나라도?' 기대감이 슬며시 올라왔다. 출근을 하자 동료인 심형섭 팀장이 "한번 오로라를 찾아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비가 올 거라고 했지만 혹시나 해서 카메라를 챙겨 강원 화천으로 향했다. 

그나마 날씨가 맑을 것 같은 지역이었다. 일을 마치고 화천에 도착하니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시간은 새벽 한 시. 오로라의 기척이 맨눈에는 보이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카메라의 모드를 '연사'로 바꾸고 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은 사진을 보는데 사진 속 하늘에 빨간기운이 보였다. '어라 설마?' 그러고 보니 맨눈으로 봐도 먼 하늘에 빨간 구름이 어린 것 같다. 카메라의 설정을 조정해보니 두 시에서 세 시반 사이 촬영된 사진에서 붉은 오로라가 선명했다. 막연한 버킷 리스트로만 생각하던 오로라 관측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박정하 용인어린이천문대 팀장이 5월 10일 강원 화천에서 촬영한 오로라. 박정하 제공

"(오로라를) 찍으면 역사에 남긴 하겠다는 생각으로 화천에 갔어요. 반신반의했는데 찍혀서 다행이었죠."

심 팀장은 8월 2일 과학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하며 "천문대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처음엔 저희가 오로라를 촬영했다는 사실을 거짓말이라며 안 믿더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촬영한 오로라 사진은 SNS와 기사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이어 강원 철원과 경북 영천 등에서도 오로라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위도 60~80도의 고위도 지역에서나 볼 수 있던 오로라를 한국에서도 관측했다는 소식은 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5월 8일 태양폭풍이 발생한 태양의 모습을 극자외선으로 촬영한 이미지(위). 4시 방향에 플레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밝은 흔적이 있다. 5월 10일 가시광선으로 촬영한 태양 광구 이미지(아래)에선 같은 위치에 흑점이 여러 개 발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NASA 제공

● 태양폭풍을 좌우하는 3요소 빛, 물질, 그리고 자기장

한국에서 오로라 소식이 들려오는 동안 전기나 통신과 관련된 각국의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뉴질랜드에서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국영기업 '트랜스파워(Transpower)'는 5월 11일(현지시각)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일부 전선망을 끊어뒀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드론 커뮤니티인 '매빅파일럿츠(MavicPilots)'에는 5월 10일부터 12일 사이 드론이 갑자기 멈추거나 GPS 신호가 꺼졌다는 등 오작동 사례도 속속 보고됐다. 아름다운 오로라와 전기·통신 업계의 비상사태를 동시에 불러온 원인은 태양에 있었다. 

태양은 평소에 매초 약 100만 톤(t)의 플라스마와 전자파, 자기장파 등을 주변으로 내뿜는다. 이를 태양풍이라고 한다. 그런데 태양 활동이 활발해 플레어 등이 발생할 경우엔 평소보다 훨씬 큰 규모의 태양풍이 발생하는 등 이변이 생긴다. 이렇게 태양 활동이 활발해질 때 벌어지는 현상을 통틀어 태양폭풍이라고 한다.

5월 발생한 태양폭풍은 많은 이들에게 2003년 10월의 태양폭풍을 떠올리게 했다. 이른바 '핼러윈의 괴물 폭풍'이다. 당시 각국 인공위성은 절반 가까이 통신에 영향을 받았고 스웨덴 일부 지역에선 정전 사고가 발생하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변압기 폭발 사고도 있었다. 태양폭풍이 뭐길래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8월 1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만난 곽영실 우주과학본부 태양우주환경그룹장은 태양폭풍이 벌어질 때 태양이 내뿜는 것들을 크게 빛(전파 두절·Radio Blackout), 물질(태양 입자폭풍·Solar Radiation Storm), 그리고 자기장(지자기폭풍·Geomagnetic storm)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구분법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도 태양폭풍의 규모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 태양폭풍이 발생해 빛과 물질, 자기장이 태양에서 방출될 경우 이 세 가지 구성요소는 서로 다른 속도로 지구로 향한다. 우선 가장 빠른 빛이 태양에서 출발한 지 8분 만에 지구에 도달한다. 

그다음엔 물질, 고에너지 입자가 20분에서 수 시간 안으로 도달한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건 자기장이다. 태양에서 플레어가 발생한지 2~3일 뒤에 지구에 닿는다. 곽 그룹장은 "태양에서 오는 빛은 대부분 강한 X선인데 이것이 지구 대기권의 전리층을 교란시켜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전리층이란 지구 대기권의 가장 바깥 영역에서 대기가 태양 복사선에 의해 이온화(전리)돼 전하를 띠는 공간을 말한다. 중간권 일부와 열권 대부분을 포함하는 범위다. 지상에서 쏜 전파는 전리층에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되는 성질을 가진다. 

이를 잘 조절하면 서로 멀리 떨어진 구역끼리 전파통신을 할 수 있다. 태양폭풍이 불어닥쳐 지구로 강한 X선이 도달하게 되면 X선은 지구 고층 대기를 더 많이 이온화시킨다. 그래서 전리권이 평소보다 두꺼워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전파통신 시 전파를 반사시킬 정도로 적당한 두께였던 전리층이 이제 전파를 흡수해 통신을 방해하는 것이다.               

전파를 이용해 통신할 때 전파는 전리층에서 반사되거나 투과하며 전달된다.전리층이 교란되면 전리층에서 전파가 흡수돼 정보가 소실되는 등 오류가 발생한다 /과학동아, 게티이미지뱅크, 에듀넷 제공

"전파를 이용하는 모든 분야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군도, 위성도, 통신도 모두요. 그래도 빛에 의한 영향은 최대 한 시간 동안 지속되므로 잠시 기다리면 괜찮아집니다."

다음은 물질이다. 태양이 쏟아붓는 고에너지 입자는 지구 자기장에 의해 대부분 가로막힌다. 

하지만 근지구의 우주공간에 있는 위성,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지구 자기장이 채 막아주지 못하는 극지방을 거치는 비행기에 영향을 준다. 높은 에너지의 입자들이 마치 탄환처럼 전기부품을 손상시킨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기장,  지자기폭풍의 영향이다. 곽 그룹장은 "지자기폭풍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길다"면서 "앞선 두 요인은 지구에서도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한편 지자기폭풍의 영향은 전 지구적"이라고 말했다.

지자기폭풍이 발생하면 태양에서 나온 자기력선이 플라즈마를 마치 진주 목걸이에 진주를 꿴 모양처럼 매달고 전달돼 지구 자기장에 부딪힌다. 이때 플라즈마의 속도는 일반적인 태양풍의 2배다. 태양에서 나온 자기력선과 지구의 자기장이 교란하면 오로라가 발생하거나 자기력의 변동에 의해 전류가 유도돼 지구상의 전자제품에 과전류가 흐르게 된다. 앞서 트랜스파워가 태양폭풍에 앞서 미리 전선망을 끊어 둔 이유도 지자기폭풍에 의한 과전류를 막기 위해서다.

오로라가 발생하는 과정. 과학동아, GIB, NASA 제공

NOAA는 2024년 5월 발생한 태양폭풍에 'R3, S1, G5'라는 등급을 매겼다. R, S, G는 각각 빛의 영향, 물질의 영향, 그리고 자기장의 영향을 말한다. 등급은 가장 약할 경우 1 가장 셀 경우 5로 매겨진다. 그러니까 X선의 영향은 강하지 않았으나 지자기폭풍이 특히나 강했던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곽 그룹장은 "빛과 고에너지 입자(물질)의 영향과 달리 자기장의 영향은 전 지구적이기 때문에 흔히 태양폭풍의 세기를 말할 때는 G를 위주로 말해준다"고 말했다.

한국의 아리랑 3A호가 지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주에 쏘아 올린 위성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자산이 되는 뉴스페이스 시대 우주날씨를 예측해 위성을 보호할 필요성이 커진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우주날씨 몰라 새 위성 40개 잃은 스타링크를 타산지석으로

5월 태양폭풍을 무사히 잘 보낸 건 우주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예보 체계 덕분이었다. 곽 그룹장은 "태양의 코로나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폭발인 '코로나 질량 방출(CME)'의 여파는 지구에 도달하는 데 3일 정도 걸리므로 미리 예보를 살펴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우주날씨를 예측하는 데 실시간 태양 관측뿐 아니라 기존의 관측 데이터를 인공지능(AI)로 분석해 태양폭풍의 메커니즘을 예측하는 수치모델도 사용한다. 일기예보처럼 우주 일기예보도 점차 발전하는 것이다.

우주 일기예보가 진화를 거듭하는 이유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태양폭풍에게서 지켜낼 자산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곽 그룹장은 "2022년 미국 스타링크가 태양폭풍에 의해 자사의 통신위성 49개 중 40개를 잃은 사건은 유명하다"면서 "당시 새로 쏘아 올린 통신위성이 자리를 잡는 와중에 태양폭풍이 불었고 이에 따라 위성이 비행해야 하는 고도의 대기 조성이 변하면서 오작동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도 위성을 많이 운용하고 있어요. 그냥 띄우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이 위성이 안전하게 잘 작동하도록 지켜야 하죠. 그걸 위해서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우주환경을 연구하고 우주항공청과 기상청, 군에서는 실질적인 우주날씨예보를 합니다.

앞으로 우주날씨 연구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갈 거예요. 국가적 차원에서 태양을 연구해 정확한 우주날씨를 예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9월호, 올 하반기에 닥친 태양 극대기…우리는 아직 그 별을 모른다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