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뉴욕 마라톤 그리고 첫 서브3

안녕하세요 뉴욕 거주 중인 런붕이입니다.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뉴욕 마라톤을 뛰게 되었고, 저에게는 세번째 풀코스이자 첫 서브3 완주 마라톤이 되었습니다.

준비과정과 대회후기를 간략히라도 남기고자 글을 작성해봅니다. 혹시나 작년 후기가 궁금하신 분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unning&no=205626)

1. 준비 과정

사실 딱 언제부터 본격적인 올해 마라톤 준비를 시작했다고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작년 마라톤이 끝나고도 올해 초 3월까지는 취미 삼아 주에 5-6번씩은 조깅을 하고 한 달에 1-2번정도 주말에 LSD 장거리주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매주 한번정도는 빌드업으로 10k 페이스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리기도 했고 러닝에 재미는 붙였는데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 기록은 딱히 변화가 없던 3개월이었습니다. 그렇게 4월에 있던 뉴저지 마라톤 (두번째 풀코스)에서 하프지점부터 사점이 오고 퍼져서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

첫 풀코스보다 2분 30초 가량 기록을 단축해서 3시간 15분대로 완주를 했지만 고통은 몇 배가 더 심했고 완주 이후에 오른 발목 염좌로 한달 가량 고생을 합니다. 기억상으로는 2주간 완전휴식 이후 천천히 조깅부터 시작해서 다시 대회 페이스로 러닝을 완전히 소화하는데 까지는 6주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에 그렇게 4-5월을 보내고 가을마라톤을 어떻게 준비를 하다가 결국에는 체계적인 마라톤 트레이닝 프로그램들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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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내고 있는 뉴욕에서는 주로 마라톤 16주전인 7월부터 시작하는 마라톤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주요 브랜드와 협업하여 유료 혹은 무료 (선발과정을 통해서) 로 진행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ON running, Asics & Bandit, NYRR (뉴욕마라톤 주최기관), Lululemon 등이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신청을 하려다 보니 대부분 주 2회 참석을 해야하는데 직업 특성상 주중에 퇴근이 늦거나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도 잦고, 8월달에 첫째가 출산 예정이라 시간을 마음대로 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 결정합니다. 그러다가 미국 러닝 동호회 친구들의 추천으로 마라톤 훈련 계획을 짜주는 Runna라는 앱을 다운받습니다. 처음에 추천인 코드로 2주정도 사용을 하다가 마음에 들어서 110불정도의 구독료를 내고 1년 결제를 합니다. 대부분의 유료 러닝 트레이닝 플랜이나 코칭들에 비하면 그리 비싼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 현재 마라톤 기록에 맞추어서 마일리지를 점차 늘려가고 주당 2회 다양한 스피드 트레이닝 (다양한 거리의 인터벌, 변속주, 템포런)을 제공하는데 딱 제가 힘들게 성공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로 설정해줘서 성취감과 동기부여가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러닝 트레이닝과 별개로 웨이트와 요가 등의 보강운동도 동영상으로제공되는데, 부상예방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만족하며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7월 중순경 예상보다 첫째의 출산이 빨라진 관계로 출산휴가를 6주간 쓰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육아도 하면서 다시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고 결국 8월에 최고 마일리지를 갱신하게 됩니다 (대략 380km). 더위가 한 풀 꺾이고 9-10 월이 되면서 스피드가 다시 붙고 예전에는 힘들었던 4분 페이스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서브3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모의고사 격으로 달린 10월초 하프마라톤에서 1시간 24분을 뛰고 자신감을 얻습니다.

2. 착용 장비 및 레디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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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말에 발매된 소어 그래핀을 주문했고 특유의 바삭거리는 촉감에 맛들려 대회 날 착용하기로 결심합니다. 평소에는 알파3 볼트를 착용하는데, 특별한 날인 만큼 사놓고 몇 달 간 장롱에서 보관하던 알파3 블루프린트를 꺼내어 착용합니다. 대회 당일 최저기온 4도 최고기온 13도로 예상되어 낮은 온도에 맞춰 장갑과 팔토시도 준비합니다. 전날 찍은 레디샷에는 안 잡혔지만, 대회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일기예보를 보니 구름 없이 해가 밝을 것 같다는 것으로 보고 썬글라스도 챙겼습니다.

3. 출발 전

출발지까지 가는 일정은 작년 포스팅과 동일했습니다. 5시 30분에 맨하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스타팅 지점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저는 Wave 1 9시10분 출발일정이라 적당히 화장실을 다녀오고 몸을 푸니 준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일행 중 일부는 10시반이나 11시 넘어서 출발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 스타트 빌리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추후에 뉴욕ㅠ마라톤으로 오시는 분들은 이 점 참고하셔서 날씨에 맞춰서 출발 전까지 입고 있을 따뜻한 복장과 (출발지에서 bag check가 안 되니 버릴 옷으로) 출발 전까지 허기를 채울 음식을 준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출발 지에서 물론 베이글과 물, 던킨 커피 등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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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마라톤은 3개의 색깔 별로 첫 5마일 코스가 살짝 다르며 각 색깔 별로 5개의 Wave와 A-F의 알파벳 corral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같은 wave내에서는 Blue-Orange-Pink 순서로 corral이 배정이 되며 기록순으로 Blue A - Orange A - Pink A - Blue B - Orange B - Pink B - Blue C .... 등의 순서로 배정이 됩니다. Blue와 Orange는 출발지의 Verazzano bridge의 다리 윗쪽을 달리는 코스이며 좋은 뷰와 함께 맨하탄과 뉴욕 전경을 보며 달릴수 있지만 누적고도가 Pink wave에 비해서 10m 정도 더 추가된다고 합니다.

Pink wave 의 경우에는 다리의 하단부를 달리기 때문에 그늘지고 뷰가 잘 안보이고 GPS가 잘 안터져 거리 오류가 있지만 누적고도가 조금이나마 낮은게 특징입니다. 만약 본인이 다른 색깔의 corral로 뛰고 싶다면 본인보다 뒷 순서의 corral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가령 Blue A는 Pink A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Pink A는 Blue 나 Orange보다 후순위이기 때문에 색깔을 변경하려면 Blue B나 Orange B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저는 작년에 이어서 2년 연속 핑크로 배정이 되었고 (Pink B) 올해에는 조금 나은 뷰를 보면서 달리고 싶어 corral을 옮길까 고민을 하지만 결국 서브3 페이서가 있는 Pink B에 맞춰서 달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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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에 사람들끼리 인사도 나누고 다른 나라에서 달리러 온 러너들과 친구를 먹습니다. 한국말로 대화할 때는 파워 E지만 영어만 쓰면 I로 바뀌는 성격 때문에 저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립니다. 왼팔에 태극기 판박이를 한 저를 보고 한 한국인 러너분께서 "화이팅 하세요!"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4. 로드에서

출발이전부터 작년에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리를 건널때는 GPS를 신뢰하지 말고 그냥 무작정 페이서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1마일 지점까지 쭉 오르막이 이어져 있는데 역시나 대회뽕과 더불어 초반부에는 힘이 넘쳐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페이서를 따라가면서 수동랩으로 찍으니 1마일이 7:20이 찍힙니다 (서브3 페이스는 마일당 6:50). 페이서가 완벽히 계획된 대로 되고있다고 말해주고 오르막을 감안해야하지만 왠지 30초라도 밀린게 괜히 찝찝합니다. 후반에 퍼지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던 것 같습니다. 5km 지점까지 페이서를 계속 따라갔는데 5k 지점 기준 21분 50초정도가 찍힙니다. 결국 조급한 마음에 5k 이후 바로 페이서를 제끼고 스스로의 페이스에 운명을 맡기기로 합니다. 바로앞에 4:10 페이스에 가깝게 달리는 한 두분을 보고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건넌 3k 지점부터 20k 지점까지는 쭉 브루클린 시내를 따라 달리게 됩니다. 브루클린 특유의 응원에 응원뽕도 생기고 주요 거리와 건물들을 따라서 달리게 되는데 페이스가 늦춰지면 어떡할까라는 초조한 마음에 거의 바로 앞에서 달리는 러너의 등만 보고 달린 느낌이 듭니다.

20km가 넘으면 브루클린에서 퀸즈 롱아일랜드시티 (LIC)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모든 다리는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페이스가 낮춰질수 밖에 없습니다. LIC로 넘어가는 다리에 하프지점 (21.1k)이 있는데 1시간 29분대가 찍힌걸 확인하였습니다. 피로도는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허기지는게 느껴져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지 않을 걸 이 때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18km정도에 달하는 브루클린에 비하면 LIC (퀸즈)는 약 4k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잘한 턴이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고 여기서 저를 응원해주는 친구 두 명을 만납니다. 이 지점부터 빨간 코스튬을 입은 한 러너가 4:10 페이스로 잘 달리기에 뒤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고, 옆에는 함께 달리고 있는 러닝 유튜버 Matt Choi를 만났습니다. 자전거를 탄 사람 두명이 함께 달리며 영상을 찍던데 허가를 받지 않았는지 그걸로 좀 욕을 먹는 것 같습니다. 저랑은 23k 지점부터 거의 35k 지점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함께 달렸었는데 실제로는 크게 방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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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km 지점에서 Queensboro bridge를 건너면서 맨하탄을 진입하는데, 거리 응원이 사라지고 고요한 다리에서 러너들의 숨소리만이 가득한 구간입니다. 역시나 긴 오르막이 있는 구간이라 작년에는 여기서 퍼지기 시작했고 올해에도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아직은 힘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비를 넘겼습니다. 다리의 3/4쯤 건너면 맨하탄을 진입하기도 전에 거리 응원단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이 구간에서는 매번 소름이 돋습니다.

26km에서 31km 지점까지는 맨하탄 1st ave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며 완만한 오르막이 잔잔히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인 러닝크루 친구가 응원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살펴보며 달리고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소리지는 함성이 많아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30k 지점에서 SIS 젤을 제공하는데 너무 허기가 져서 결국 양해를 구하고 2개를 받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브롱스를 살짝 지나서 다시 맨하탄으로 내려오는 구간이 35km 후반부입니다. 익숙한 코스가 찾아왔고 정강이가 살짝 경직된 느낌이 있지만 아직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같은 리듬으로 계속 밀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Matt Choi는 저를 추월해서 지나갔고 많은 러너들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출발지에서 화이팅을 해주신 한국 분을 여기서 다시 마주쳐서 Fist bump를 하고 계속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5th ave를 따라서 맨하탄을 내려오게 되는데 106번가부터 90번가까지의 대략 1마일 정도가 마지막 고비중 하나입니다. 역시나 완만한 오르막 경사이지만 35k를 뛰고난 이후의 다리에게는 큰 무리가 되는것 같습니다. 페이스가 순간적으로 430까지 밀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밀린 페이스는 내리막에서 복구가 가능하니 이 시점에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센트럴파크를 진입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오고 러닝 크루 분들과 미국직장 동료들의 응원과 더불어 페이스를 다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쯤 돼서 3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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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1km를 남기고 응원 나온 와이프와 4개월이 되지 않은 아들, 그리고 가장 친한 한국 친구들과 인사를 하니 남은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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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기록과 랩타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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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무리

신생아를 돌보면서 트레이닝을 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제가 트레이닝도 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주고 이해해준 와이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뉴욕은 여러 다리와 잔 언덕이 많아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만, 그에 맞춰서 몇 달간 준비한 언덕 훈련과 언덕을 포함한 장거리주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마라톤은 내년 런던이 될 것 같은데, 하반기에 또 다시 뉴욕을 뛸 예정이니 한국에서 오시는 분이 있으면 주로에서 인사 나누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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