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양절에 즐겼던 국화주, 송이산적…신선이 따로 없네
풍류가 있는 제철 음식
그렇다면 잔치를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상차림으로 잔치를 벌였을까. 조선시대 ‘숙수’라 불렸던 전문요리사들이 정성으로 차려낸 음식의 향연은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운 가을날,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차려진 잔치 모습을 엿보자.
수확의 계절인 가을, 양의 수인 9가 둘이나 겹쳐서 ‘중양절’이라 불린 음력 9월 9일에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조선시대 숙수들이 동원되어 차려낸 가을날 연회를 잘 보여 주는 조선시대 풍속화가 전해진다. 바로 조선 후기 화원 김홍도(1745~1806?)의 ‘기로세연계도(耆老世聯契圖)’로 노인들의 계모임 잔치인 연회를 그린 것이다,
여기서도 술이 빠지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상 주점이 차려져 있고 벌써 술에 취한 사람도 눈에 띈다. 음력 9월은 ‘국추(菊秋)’라 할 만큼 국화가 만발한 계절이라 이때 계절주로 국화주가 대유행이었다. 고려 시대 주신(酒神)이라 불렸던 이규보는 “젊었을 때는 중양절 만나면 부지런히 황국을 찾았었네, 좋은 술 나쁜 술 따지지도 않고 이것 띄우니 향내 풍기더라…”라고 읊었다.
중양절 개성 만월대서 벌어진 잔치에는 어떤 음식들이 등장했을까? 아마도 솜씨 좋은 전문요리사들이 총 동원돼 유서 깊은 개성 음식 향연을 펼치지 않았을까. 실제 그림 한가운데엔 고임상이 아름다운 채화(꽃)와 함께 잘 차려져 있다. 그림 속 64명의 노인이 받은 독상에도 그릇 수가 8~10개에 이르는 꽤 많은 음식이 나열돼 있다. 고려 수도였던 개성은 조선시대에도 개성 인삼 상인의 명성에 걸맞게 부자가 많았고 화려한 음식문화를 자랑하던 곳이다. 그러니 이날의 상차림은 범상치 않았을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해 연회상에 올랐을 음식을 차려보자.
다음으로 개성이 자랑하는 ‘개성무찜’이 떠오른다. 가을에는 무가 특히 맛있다. 화려함 속 부드러움을 자랑한다는 개성무찜은 무에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버섯·대추·밤·호두·은행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졸인 음식이다. ‘개성종갈비찜’이라고도 불리는데 개성 종가에서 경사스러운 날이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화려한 음식이다.
새우젓국에 찍어 먹는 ‘제육편육’과 개성 절창이라고 불린 ‘순대’도 개성 잔치 단골 음식이다. 개성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 신령에게 제물로 바칠 정도로 귀하고 특별해서 잔칫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돼지고기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개성 사람들은 대개 집에서 직접 돼지를 키우거나 시골집에 부탁해 키워서 냄새도 나지 않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연회상의 꽃 ‘전유화(煎油花)’가 빠질쏘냐. 명절상이나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바로 전이다. 전은 전유어, 저냐, 전야 등으로도 불렸으며 궁중에서는 전유화라고도 했다. 전은 종류가 다양하다. 녹두와 고기를 넣은 빈대떡을 비롯해 두부를 부친 두부전, 호박을 부친 호박전, 쇠고기 살로 부친 육전, 돼지고기를 저며 지진 저육전, 민어 같은 흰살 생선으로 부치는 생선전 등이 있다. 특히 ‘홍해삼’은 홍삼과 해삼이 주인공인 음식으로 개성의 혼인 의례뿐만 아니라 연회상에도 빠지지 않았다.
개성을 상징하는 ‘보김치’도 등장했을 것이다. 배춧잎을 2~4겹 펴놓고 전복·낙지·굴·고기 등 귀한 식재료를 썰어 넣고 보자기같이 꼭 봉했다가 먹는 김치다. ‘개성채나물’도 있는데 무·미나리·숙주나물에 곶감을 넣어 버무린 개성만의 독특한 나물 음식이다.
개성은 디저트로 한과가 특히 발달했다. 지금도 인기인 ‘개성약과’는 밀가루·꿀·기름을 넣어 만든 유밀과의 일종으로 네모나게 켜를 잘 살려 만들어 잔치나 제사상에 반드시 올렸다. 우메기라고도 하는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후 반죽하여 튀겨낸다. 개성에서는 “우메기 빠진 잔치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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