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과 권력은 이렇게 쓰는 거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인으로서뿐
아니라, 체육계의 큰 은인이기도 했다.
그의 스포츠 사랑은 단순한 후원을 넘어,
올림픽 역사에 남을 판정 번복을
이끌어낸 일화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건희 회장은 사실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고교 시절 레슬링 선수로 전국 대회에
출전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일본에서 역도산을 보고
레슬링에 매료됐다고.
매일 도시락 두 개를 들고 다니며
연습에 몰두했지만,
얼굴에 난 상처를 본 부친
故 이병철 회장의 반대로 결국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체육계 지원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으로
부임해 심권호 선수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을 뒤에서 든든히 지원했다.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
국가 상금만큼의 보너스를 개인적으로
지급했고, 16년간 300억 원
이상을 체육계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등에서 대한민국 레슬링이 금메달
40개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이건희 회장의 체육계 공로는
단순한 후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 등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팀을 창단·운영하며
선수 육성에 힘썼다.
이 공로로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무려
1년 6개월 동안 11번 비행,
170일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 100여 명을 만나 설득했다.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이 회장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수영 400m 예선전이었다.
당시 박태환은 정상적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출발 전 어깨를 미세하게
움직였다는 이유로 심판 재량으로
실격 처리됐다. 현장엔 야유가 쏟아졌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납득하지 못했다.
코치가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으나
“번복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경기를 관람하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 IOC와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에 항의했다.
결국 심판진은 올림픽 수영
역사상 25년 만에 최초로 판정을 번복,
박태환은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오심으로
실격된 박태환이 아닌 다른
선수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싶지 않다”며
시상식 참가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2017년 IOC
위원직을 내려놓았지만,
IOC는 여전히 그의 공로를 인정해
명예위원으로 추대했다.
누리꾼들은 이에 “돈과 권력은
이렇게 써야 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건희 회장님
너무 멋지다”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투데이 셀럽패션 무단전재, 복사, 타사이트 이동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