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로 무너졌는데…서승재–김원호, 결국 세계 1위가 왜 다른지 보여줬다

이번 말레이시아 오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버티고, 읽고, 뒤집는 힘이다. 그 중심에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 서승재–김원호가 있다. 숫자만 보면 또 한 번의 결승 진출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위상이 왜 ‘황금 콤비’라 불리는지 분명해진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시아타 아레나에서 열린 준결승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상대는 잉글랜드의 벤 레인–숀 벤디 조. 세계랭킹 16위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해볼 만한 승부였지만, 1게임부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서승재–김원호는 초반부터 주도권을 내주며 3-10까지 끌려갔고, 결국 8-21이라는 큰 점수 차로 첫 게임을 내줬다. 세계랭킹 1위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다음에 있었다.

1게임 패배는 흔들림이 아니라 탐색이었다. 2게임에 들어서자 두 선수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김원호는 네트 앞에서 리듬을 끊어냈고, 서승재는 후위에서 각을 좁힌 스매시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6-5에서 연속 득점으로 흐름을 가져온 장면은 전술 전환의 상징이었다. 이후 21-11. 점수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상대가 더 이상 마음껏 공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공 하나하나에 ‘다음 수’를 강요당하기 시작했다.

승부는 마지막 3게임에서 완성됐다. 1-5로 다시 끌려가던 상황에서도 서승재–김원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랠리를 길게 가져가며 체력 싸움으로 끌고 갔고, 상대의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갔다. 14-15에서 터진 3연속 득점은 이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공격 성공보다 값진 것은 실수 유도였다. 결국 21-18. 짜릿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역전이었다.

이 승리는 단순히 결승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서승재–김원호는 지난해 한 시즌 동안 11승을 합작하며 여자단식의 안세영과 함께 단일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그 기록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해 첫 대회부터 다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경기 운영 능력은 세계 최정상급 복식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빠른 판단, 역할 분담,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명확하다.

여자복식에서도 한국 배드민턴의 기세는 이어졌다. 세계랭킹 6위 백하나–이소희는 일본의 강호 후쿠시마 유키–마쓰모토 마유 조를 2-0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올랐다. 이 승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불과 3주 전 월드투어 파이널 결승에서 같은 상대를 꺾은 데 이어 다시 한 번 완승을 거뒀다는 점에서, 두 선수의 상승세가 일시적이 아님을 보여준다.

백하나–이소희 조의 강점은 안정감이다. 큰 기복 없이 랠리를 이어가고, 상대가 무리수를 두게 만드는 구조를 만든다. 이번 준결승에서도 초반부터 흐름을 내주지 않았고, 점수 차가 벌어질수록 상대의 공격 선택은 단조로워졌다. 결승에서 맞붙을 중국의 류성수–탄닝 조는 세계랭킹 1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최근 흐름만 놓고 보면 승부는 충분히 열려 있다.

여기에 여자단식에서는 안세영이 천위페이의 기권으로 결승에 직행했다. 이로써 한국은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여자단식, 남자복식, 여자복식 ‘3관왕’에 도전하는 그림을 완성했다. 단순히 메달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배드민턴이 단일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종목 전반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증거다.

서승재–김원호의 역전승은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압도하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초반에 흔들려도, 끝에서는 자신들의 리듬으로 경기를 가져온다. 세계 1위의 진짜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회복력이라는 사실을, 이 한 경기로 충분히 보여줬다. 결승 무대는 또 다른 시험이겠지만, 지금의 흐름이라면 결과보다 과정이 더 기대되는 팀이다. 한국 배드민턴이 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경기들이 쌓여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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