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Futures] KIA 타이거즈 곽도규

매직넘버 ‘곽도규’를 향해

이번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는 미국의 데이터 기반 야구 육성 아카데미인 드라이브 라인 베이스볼 센터(이하 드라이브 라인)에 곽도규를 포함해 투수 5명을 파견할 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응답하듯 입단 2년 차 곽도규는 기대를 훨씬 웃도는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에 일조했다. 그렇게 새 얼굴이 등장하고, 베테랑들이 끌어주며 신구조화를 이뤄낸 2024 정규 시즌의 주인공 KIA. 이제 이들에게는 7년 만의 통합 우승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릴 일만 남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열아홉 곽도규는 이런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공과 함께 연필을 꺼내든 소년의 혼란한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기에 타이거즈의 우승 옆에 곽도규의 이름을 새겨넣은 오늘이 있다고 전해본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김서현 Location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더그아웃 매거진> 첫 출연이죠. 인사하고 인터뷰 시작할게요. (9월 25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KIA 타이거즈 곽도규입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은 초등학생 때부터 자주 봤어요. 당시에 엄마가 도서관에서 강사로 일해서 저도 도서관에 있을 시간이 많았거든요. 매달 잡지를 사서 볼 만큼의 용돈은 없어서 자주 읽으러 갔죠. 월간지는 신간이 나오면 과월호를 무료로 나눠줬는데, 그럴 때마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뛰어가서 받아왔어요. 가져와서는 동생하고 가위바위보로 갖고 싶은 화보를 나누고, 사진을 잘라서 방 벽에 붙이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모으던 잡지였는데 이제는 제가 나온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인상 깊게 봤던 화보는 어떤 선수였어요?
여러 선수의 화보를 잘라서 벽에 붙여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금 스승이신 손승락 코치님이요. 되게 특이한 사진이었는데, 코치님이 서 있고 양쪽에서 배트를 갖다 댄 사진이 있거든요. (31호 ‘더그아웃 피플’)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동생에게 아쉽게 양보했던 선수도 있어요?) 동생이랑 저랑 선호하는 선수 스타일이 달라서요. 저는 장비에 욕심이 있어서 글러브 사진을 붙여뒀고, 동생은 나성범 선배님이랑 에릭 테임즈(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응원해서 당시 NC 다이노스 선수 위주로 꾸몄던 기억이 있어요.

#팀이 우승할 때 있는 투수

정규 시즌 우승을 축하해요! 아직 한국시리즈가 남았지만, 우승 소감이 궁금해요.
시즌 144경기 중에 한 경기만 이겨도 짜릿함이 느껴지는데, 확실히 정규 시즌 자체를 우승한다는 건 차원이 다른 감정이더라고요. 더 큰 차원의 기쁨이었어요.

첫 풀타임을 치른 해였는데 지금 몸 상태는 어때요?
오히려 후반기 들어서 더 괜찮아졌어요. 더운 시기에는 컨디션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때 코치님이랑 여러 부분을 수정하면서 오히려 시즌 초보다 나아졌어요. (앞으로 남은 한 달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어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는 경기가 없으니까, 투구할 때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려고 하고요. 선배님들이나 트레이닝 파트에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조하시더라고요. 긴장하지 않는 편이라고 해도 큰 무대에 서면 확실히 심리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그렇게 마운드 위 모습을 상상하면서 휴식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첫 풀타임 시즌에 이어 첫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됐죠. 상상해 본 상황도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아웃카운트를 잡고 싶다든가 하는 건 없고요. 그냥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던진 경기가 팀이 승리한 네 경기였으면 해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친구 윤영철도 돌아왔는데 어땠어요?
든든하죠. 돌아온 첫 경기에서 영철이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친구로서도 기쁘고요. 앞으로는 저희 둘 다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둘이 따로 나눈 얘기는 있어요?) 영철이가 돌아오자마자 제가 어리광을 좀 피웠죠. “너 없어서 아이스박스를 내가 다 끌고 다녔다”라고요. 그동안 생긴 세세한 썰을 풀었어요.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의 경우에는 버스 주차장이랑 원정 더그아웃이 꽤 멀어요. 그래서 버스에서 더그아웃까지 도구랑 아이스박스를 들고 네 번 왕복하고, 또 불펜까지 네 번씩 왔다 갔다 했거든요. 무거운 도구가 많아서 둘이 같이 옮겨야 하는데, 혼자 하다 보니까 오래 걸렸죠.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럼, 오늘은 네가 인사반장 해”라고 하면서, 작년에는 1년 내내 자기가 혼자 했다고 반박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영철이도 있고 (최)지민이 형도 도와줘서 꽤 편해졌어요.

#도규야 갚았다

8월 13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이 1.64예요. 월간으로 보면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도 가장 성적이 괜찮았는데, 그 전보다 향상된 게 있다면 뭐였을까요?
시즌 초부터 연습했던 체인지업이 그 시기쯤 감이 잡혀서 잘 썼던 것도 있고요. 가장 큰 건 팔의 가동 범위의 변화예요. 올해가 첫 풀타임 시즌이기도 하고, 날씨가 더워지는 6~7월에는 왼팔이 움직이는 가동 범위가 좀 줄어들었어요. 구속이 잘 안 나오고 맞아 나가는 타구들이 다 강타가 되다 보니 더 강하게 던지고 싶은 조급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팔로만 세게 던지는 느낌이 강했는데, 코치님들과 상의하면서 좀 더 여유롭게 투구하려 했어요. 제가 몸 전체 힘을 이용해서 공을 강하게 던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힘을 줘야 할 때만 정확히 전달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가동 범위도 늘어나고 결과도 향상됐죠. 근력 운동도 충분히 하면서 쉴 때는 확실히 쉬었고요.

9월 16일(수원 KT 위즈전)에는 한 점 차 우위 상황에서 올라왔는데 강백호의 타구가 멀리 날아갔고, 최원준이 점프 캐치로 잡고 나니 마운드에 주저앉더라고요. 맞는 순간 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이건 에피소드가 긴데, 사실 그 전 경기(9월 14일 광주 키움전)하고 이어져요. 그날 투심 패스트볼이 괜찮았는데 계속해서 커브로 승부를 걸었어요. 8회에 최주환 선배님을 상대하면서 풀카운트가 됐고, 그다음 타자부터는 하위 타선이었거든요. 우리 투수진이 나쁘지 않으니까 거기서 차라리 볼넷을 내주는 게 팀으로 봐서는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았어요. 근데 제가 잘 던지다가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커브를 실투해서 역전 적시타를 맞았고, 그렇게 패전투수가 될 뻔했거든요. 그래서 KT전에서도 속구가 방망이에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몸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커브 사인이 났어요. 이전 경기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커브를 잘못 던져서 적시타를 맞았으니까, 이번에는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타이밍을 뒤로 잡아둔 상태였으니 괜찮겠다 싶었죠. 사실 맞을 때도 정타는 아닌 느낌이라서 안심했거든요? 근데 이 타구가 날아가면서 원준이 형이 멀리 뛰어가는 게 보이니까 큰일이다 싶었어요. 다행히 점프 캐치로 잡히니까 ‘됐다!’ 했죠. 짧은 순간에 마음이 세 번 정도 바뀌었어요. 그런 상황이 재밌어서 저도 모르게 큰 액션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최원준에게 감사 인사는 어떻게 했어요?
원준이 형이 먼저 말해줬어요. 그 전에 원준이 형이 발목이 안 좋아서 뜬공 처리가 안 된 타구가 있었는데요. 저는 당연히 그냥 안타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원준이 형이 먼저 와서 그 타구를 못 잡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다음에 꼭 호수비로 갚아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강백호 선배님 타구를 잡고 뛰어 들어오면서 형이 “도규야, 갚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더 크게 갚아주셔서 고맙다고 했죠.

잘 던진 경기는 다시 돌려보기도 하나요?
아뇨. 제가 던진 건 거의 안 돌려보는 편이에요. 좋았을 때나 안 좋았을 때 영상을 보면 제가 안 됐던 부분이 정말 미세한 건데도 자꾸 보여요. 예를 들어 팔이 늦게 나왔다든지, 엉덩이 움직임이 빨랐다든지 하는 세세한 동작이요. 그래서 영상을 돌려보면 제 투구폼에 얽매이게 돼서 차라리 데이터를 보죠. 투심 패스트볼이 어느 정도 휘었는지 수치로 나오는 거요. 사실 잘 던진 날은 돌려보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쉬는 날만 가끔 보거나, 아니면 최대한 안 보려고 해요.

성장은 한 단계씩 할 수 있는 거지, 한 번에 확 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어요. 올 시즌 본인의 성장을 칭찬하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작년과 다르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마운드 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됐다는 거예요. 작년에는 볼이 하나 들어가면, 마운드 위에서도 온갖 잡념이 들었거든요. 아마 퓨처스리그에 오가는 선수라면 다들 비슷할 거예요. 마운드에서 내려가면 감독님이랑 코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기차표를 예매해서 그 기차를 타고 함평까지 들어가는 제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 떠올라요. 근데 올해는 마운드 위에서 변화구를 던지는 타이밍이나, 볼을 던져도 되는 때를 생각하게 됐어요. 아직은 멀었지만, 눈앞의 투구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거시적으로 경기를 보는 투수가 됐다는 점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껴요.

#마운드 위 악동

야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제대로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였어요. 이모부가 언젠가 말해달라고 했던 일화가 있는데, 제가 왼손잡이잖아요. 엄마가 전 왼손잡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테이블 바깥쪽에 앉으라고 늘 강조하셨어요. 하루는 가족 식사 자리에 갔는데, 제가 바깥쪽 자리에 앉겠다고 하니까 이모부가 본인도 왼손잡이라고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서로 왼손잡이인 걸 알았어요. 이모부는 야구를 전문적으로 하신 건 아니고 퇴근하고 캐치볼을 즐기는 정도였는데, 제가 왼손잡이인 걸 보고 “야구해 볼래?”라고 하면서 좌투수용 글러브를 사주셨어요. 그전까지는 오른손으로 공을 몇 번 던져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거든요. 근데 그 글러브를 받고서 왼손으로 공을 던져 보니까 공이 가는 게 보여서 재밌는 거예요. 그 글러브가 KIA 타이거즈까지 오게 했네요. 마침 이모부도 광주 출신이어서 KIA 팬이에요. 사실 무뚝뚝한 분이라 지명받고 기쁜 내색은 안 했는데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자취방은 어디 쪽으로 구했냐?”부터 시작해서 시내 맛집도 알려주시고, 저는 몰랐던 예전 KIA에 대한 재밌는 얘기들도 자주 해주셨어요.

고등학생 때는 살길을 찾아 부모님 몰래 영어 공부를 했다고 봤어요. 집에서는 어떤 아들이에요?
사실 속마음을 잘 말하는 편은 아니에요. 중, 고등학생 때 야구가 힘들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식의 얘기는 부모님께 안 했어요.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매일 관두고 싶었죠. 그때는 야구가 잘 안 되고, 자주 다치기도 했고요. 지금 보면 되게 가벼운 마음인데, 야구를 하니까 포기해야 했던 것도 있고, 단체생활이 힘들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결국 프로 선수까지 됐다는 건, 관두고 싶은 마음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여기까지 온 거겠죠. 지금은 확실히 야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흔치 않은 좌완 사이드암 투수예요.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오버핸드에서 스리쿼터로 팔을 내렸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오버핸드일 때도 프로 입단의 가능성은 있는 선수였어요. 다만 주변 사람이나 코치님도 정말 턱걸이로 하위 라운드에 지명되지 않을까 예상하던 정도였고요. 근데 주말리그 후반기부터 슬럼프가 크게 왔어요. 구속도 아예 안 나오고, 제구도 안 됐고요. 심리 상태도 무너지니 큰일 났다 싶었어요. 정말 사람같이 던지지 못할 때 공주고 길태곤 코치님이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는데요. 딱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도규야, 우리 도박 한번 해볼까?” 라고요. 무너진 상태로는 도저히 프로에 갈 수 없는 실력이어서, 도박이라 하면 다른 패도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팔을 내렸어요. 근데, 그렇게 조정하고 나서 갑자기 제 야구가 이렇게 잘 돼도 되나 하고 놀랄 정도로 바뀌었어요. 몇 달 만에 공을 던지는 게 재밌었고요. 오버핸드 때는 컨디션이 아주 괜찮아야 최고 구속이 142km/h 딱 하나 나오는 정도였다면, 팔을 내리고서는 그냥 피칭 연습을 하는데도 145km/h가 나오더라고요. 허리를 돌리는 회전도 ‘이거구나’ 싶었고요.

투구폼을 바꾼 게 지금까지의 야구 인생에서도 신의 한 수가 됐네요.
투구폼을 바꾸기 전에 학교에서 신체를 측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가 허리를 옆으로 돌리는 회전력이 남들보다 두 배 정도 강하다는 결과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스리쿼터로 던질 운명이었나 봐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죠.

좌타자 상대 평균자책점은 1.99인데, 우타자를 상대로는 좀 높아요. 상대에 따른 기복을 줄이기 위해 내년까지 보완하고 싶은 점도 있어요?
최근 성적은 우타자 상대로도 괜찮아요. 지금은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이길 자신 있어요. 제 투구폼만 보면 당연히 제구가 나쁠 거고 우타자를 상대로는 약할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꼭 그걸 깨부수고 싶어요. 비시즌에 드라이브 라인에서 체인지업을 연습한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어떻게 보면 평생 제게 달릴 꼬리표니까요. 내년부터는 지금 크게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볼 배합을 신경 쓰면서 그 차이를 줄여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공주고 시절 주장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선배였어요?
모범적인 주장은 아니었어요. 제가 주장이 되고 처음으로 생각한 게 딱 세 가지만 지켜보자는 거였어요. 프로구단과 고등학교 팀 주장의 역할이 다른 게, 야구적인 면보다는 이 친구들이 사고를 치지 않게끔 관리해야 하는 게 더 컸거든요. 그래서 가장 신경 쓴 건 야구장에서 전체적인 팀 분위기를 콩가루가 아니라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이었고요. 두 번째는 위생이었어요. 당시에 코로나19도 상황이 나빴고 숙소 생활을 하니까 청소가 중요했죠. 마지막으로는 흡연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다행히 담배를 피우는 친구는 없었는데, 위생에 신경 쓰는 게 가장 힘들었죠. 매일 밤에 청소하고 검사하면 새벽 한두 시쯤 잘 수 있었거든요. 제가 좀 꼼꼼하게 보기도 했고요.

두 살 아래인 양수호가 이번에 KIA에 입단했는데, 행사에서 “그렇게 파이팅 외치라고 해도 안 하더니…”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수호한테는 농담이었죠. 수호는 좀 내성적인 친구였어요. 파이팅을 외치라고 해도 잘 안 하는 친구 중 하나였는데, 이번 입단 행사 때 그렇게 큰 목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 그래서 장난치려고 삐진 티를 낸 거였거든요. 수호는 정말 재능이 큰 친구여서요. 이젠 고등학교를 벗어났으니, 재능만 믿지 않고 노력이 더해진다면 좋은 선수가 될 거예요.

먼 미래에 팀의 주장을 맡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주장도 함께 졸업했어요. 돌이켜보면 주장으로서 한 행동을 후회하기도 해요. 그때는 최선이었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도 있고요. 후배들을 잘 구슬리는 화법을 쓸 수도 있는데 더 유하게 대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몇 가지 이어온 악습은 제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끊겼어요. 일례로 후배들이 돈을 모아서 졸업생에게 금반지를 선물하던 전통이 있었는데, 저희 기수가 졸업할 때 끊겼어요. 돈 모으지 말라고 가리켜 말한 건 아니고 돌려 말했죠.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요. 솔직히 금반지 못 받는 게 아쉽긴 했는데. (농담) 그래도 금반지 하려면 인당 5만 원씩은 해야 하는데 미성년자에게는 큰돈이니까요. (받은 계약금으로 금반지를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데 그게 아쉬워요!) 그 돈은 엄마한테 있어서요. (웃음) 월급은 제가 다 관리하는데 계약금은 부모님께 드렸거든요.

#매직넘버 곽도규(0)

등번호를 작년에는 9번, 올해는 0번을 쓰고 있어요. 등번호에 담긴 특별한 의미도 있나요?
한 자릿수 번호를 달고 싶은 욕심이 계속 있었어요. 근데 올 시즌을 앞두고는 번호를 바꿔야 했고, 그 당시에는 0번을 포함해서 한 자릿수 번호가 없었거든요. 근데 (박)정우 형이 15번으로 바꾸게 되면서 0번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근데 쓰다 보니까 제가 느끼기에도 훨씬 잘 어울리기도 히고요. 또 0번은 특이한 숫자다 보니까 ‘마운드 위의 악동’이라고 하는 이미지에도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어요. (우승을 확정 지은 9월 17일에 팬들이 ‘매직넘버 곽도규’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어땠어요?) 좋았죠. 다들 ‘매직넘버 곽도규’ 빨리하자고 농담하는데, 그 농담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더 기뻤어요. 앞으로도 계속 0번을 쓰고 싶어요.

그날 눈물을 흘렸다고요. 원래 눈물이 많아요?
되게 오랜만에 울었어요. 눈물이 처음 났던 건 9회 초부터였는데, 삼성 라이온즈하고 두산 베어스 경기가 9회 초 2아웃에서 경기가 끝나기까지 되게 길었어요.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5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그아웃에서 떨면서 저희 경기를 보고 있었죠. 그러던 중에 뒤에서 형들이 환호하며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울컥하더라고요. 옆에서는 (전)상현이 형이랑 (김)대유 선배님이랑 껴안고 고생했다고 하는데 이런 끈끈한 팀 분위기 안에 제가 껴있다는 게 감격스러웠고요. 멋있는 선배님, 형들이랑 고생한 시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그래도 눈물은 잘 참고 있었는데, (제임스) 네일한테 빨리 돌아오라고, 우승해서 같이 놀자고 얘기하면서 눈물도 자연스럽게 터졌어요.

오른손으로 필사하는 취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왼손에 수전증이 있어요. 그래서 수술까지 했는데, 지금도 직선을 잘 못 긋거든요. 그래서 팬분들께 사인해 드릴 때도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게, 성의 없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수전증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무튼 수전증이 있어서 글씨를 잘 못 쓰니까 필사하면서 연습하기 시작했죠. 고등학생 때부터 왼손으로 영어 필기체를 쓰면서 연습했는데 공 던지는 손으로 취미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 오른손으로 바꿔서 필사하게 됐어요.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확실히 생각도 정리되더라고요. (필사용 글귀는 어디서 찾아요?) 제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진짜 재밌게 봤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대사도 종종 쓰고,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캡처해 두고 써요. 요즘은 핀터레스트에서도 글귀를 자주 저장하고 있어요.

반대 손으로 무척 정갈하게 쓰던데, 그냥 양손잡이인 걸 늦게 발견했을 가능성은 없어요?
그건 아니에요. 사실 오른손으로는 직선을 아예 못 그었어요. 그건 수전증이 아니라 그냥 반대 손이라서 못 썼는데, 초등학생들이 글씨체 교정용으로 쓰는 고무 연필 교정기 있잖아요. 그것부터 사서 연습하니까 점점 늘더라고요. 요즘도 필사는 가끔 해요. (이따 쓰는 거 보여줄 수 있어요?) 아~ 줄 없는 노트에는 잘 못하는데. (곽도규의 오른손 필사 영상은 <더그아웃 매거진>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세요!)

갸티비에서 하프갤런 한 통을 혼자서 다 먹을 만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곽도규 픽 6가지를 소개하자면요?
매번 다르긴 한데, 최애는 블랙 소르베요. ‘레인보우 샤베트’나, ‘아빠는 딸바봉’도 시즌 메뉴이긴 한데 즐겨 먹고요. 그거 말고 나머지는 때마다 끌리는 걸로 먹어요. 근데 사실 올해부터 아이스크림을 끊었어요. 제가 아이스크림을 정말 자주 먹거든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한 번에 20개도 먹었어요. 그래서 올 시즌 시작하기 전에 아이스크림 끊는 걸 목표로 세웠어요. 작년에 등록번호 받기, 1군 올라가기, 적금 얼마 하기 등등 개인 목표를 세운 걸 모두 이뤘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어떤 목표를 정할지 고민하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시즌 중에 술을 아예 안 마시는데, 아이스크림을 술보다 더 건강에 나쁠 만큼 자주 먹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먹는 건 체지방도 늘어나고 염증도 생길 테니 안 되겠다 싶어서 끊었어요. 시즌 전에 드라이브 라인에서 합숙할 때 아이스크림을 큰 통으로 하나 샀거든요. 그래서 그거 마지막으로 딱! 다 먹고 딱! 끊었죠. (뿌듯)

그럼, 올 시즌 들어와서는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안 먹었어요?
선배님들이 사주신 때 빼고는 없어요. 한 서너 번 먹었나? 제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지금까지 없어요.

#종신기아

인스타그램에 올린 ‘종신기아가되’ 선언, 어쩌다 하게 됐어요?
광주 출신은 아니지만, KIA라는 팀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사실 저는 하위 라운드에서 뽑혔는데도 첫 시즌 시작하기 전에 구속이 예상보다 잘 나왔고, 그래서 개막 엔트리에 들기도 했잖아요. 2군에 있을 때 몇몇 형들이 “너는 다른 팀에 가면 필승조가 될 거야”라고 얘기했거든요. 근데 그때마다 “저는 KIA여서 잘 된 거지 다른 팀이었으면 절대 이렇게 못 해요”라고 반박했어요. 올해도 이 팀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잘 됐다고 봐요. 최형우 선배님의 홈런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고요. 양현종 선배님의 조언이 아니었으면 끝내지 못했을 이닝, 제가 ‘이의리의 동생’이 아니었으면 잡지 못했을 삼진도 많았거든요. 이런 게 쌓이다 보니 KIA를 더 사랑하게 됐죠. 만약 제가 트레이드돼서 다른 팀에 가서 지금처럼 할 수 있을지 곱씹어 보면,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봐요.

이의리가 스프레드시트에 계획을 적어두는 걸 보고 배웠다고 들었어요.
의리 형이 뭔가 계속해서 적는 건 보이는데 지금도 스프레드시트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아이패드에 있는 필기 앱인 굿노트를 쓰거든요. 중학교 다닐 때부터 5년간 종이에 야구일지를 썼는데, 저희는 버스로 자주 움직이니까 들고 다니기 편한 굿노트로 바꿨어요. 근데 저는 의리 형처럼 앞으로의 계획을 적어두기보다는 지나간 걸 돌이켜보려고 써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루틴을 어떻게 했는지 다 적어두거든요. 그래서 좋았을 때 했던 운동이나 훈련법은 어떤 거였는지, 그때 마음은 어땠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일지를 쓰고 있어요.

앞으로 더 큰 꿈을 세울 것 같아요. 선수 곽도규로, 사람 곽도규로 어떻게 성장하고 싶나요?
선수 곽도규로서는 논란 일으키지 않고, KIA 타이거즈에서 길게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요. 사람 곽도규로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2만 명이 날 지켜보던 곳에 있다가 원룸으로 퇴근하면 정말 쓸쓸하거든요. 적어도 바깥 풍경이 보이는 통창이 있는 곳이나, 꿈을 조금 더 크게 꿔보자면 한옥 주택처럼 감성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또 걸어 다니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그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돈을 많이 벌고 싶나 봐요. (상상 속 곽도규가 탄 자동차는 KIA 차죠?) 당연하죠!

마지막으로 큰 함성을 보내주시는 팬들에게 인사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올 한 해도 야구장에 찾아와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정규 시즌 우승을 지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도 늘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3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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