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평화 소중함 되새기는 역사·휴식의 길을 걷다

최훈 2024. 10.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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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휴게소 출발 16㎞ 코스 ‘38선 숨길’
6·25 전쟁 애환 역사적 콘텐츠 담겨
디모테오 순례길 연결 총 거리 38㎞
송이밸리 자연휴양림 출발 임도 추천
군 설치 사유임도 안내판 곳곳 위치
왕복 1시간 구탄봉 등산로 주민 인기

■양양 38선 숨길

유난히 기승을 부리며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한여름 더위의 기세도 속절없이 꺾이고, 어느덧 선선하다 못해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이 스친다.

이른 봄부터 초록색으로 반짝이던 들녘도 추수가 끝나 텅 빈 벌판으로 바뀌어가고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부터 시작된 가을단풍이 내려앉기 시작했다.소청 밑으로 내려온 가을단풍은 희운각, 공룡능선, 한계령, 천불동계곡을 거쳐 이젠 우리 주변 들판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야말로 온 천지가 불타듯 ‘만산홍엽(滿山紅葉)’, 가을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느해 보다 무더위가 극성스러웠던 지난 여름도 계절의 시간 앞에선 힘없이 물러섰듯, 단풍으로 붉게 물든 이 가을도 ‘깊어진다’ 싶으면 어느 순간 또다시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마다 산행하는 맛이 다르듯, 낮은 산은 낮은 대로, 높은 산은 높은 대로 저마다 느낌도 다르고 산행의 재미 또한 다르다.

깊어가는 가을, 명산을 찾아 절경과 어우러진 단풍을 감상하는 산행도 좋지만 어느덧 산기슭을 따라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걷는 한나절 산행 또한 이 가을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양 ‘38선 숨길’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38선 숨길’은 북위 38도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38선 숨길’이 위치한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38선은 6·25전쟁 당시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10월 1일 최초로 38선을 돌파했으며 현재의 10월 1일 ‘국군의 날’은 바로 이 날을 기념해 제정됐다.

‘38선 숨길’은 양양군이 그 역사의 현장을 테마로 조성한 길이다.

‘38선 숨길’은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38휴게소에서 출발하는 16㎞ 코스다. 하지만 ‘38선 숨길’은 한국전쟁 당시 천주교 신부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디모테오 순례길’과 연결돼 있어 총 거리는 38㎞에 이른다.

‘디모테오 순례길’은 양양성당 주임으로 있던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가 피난민들이 안전하게 38선 이남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다가 순교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매년 단풍철이면 많은 천주교인들이 양양성당을 출발해 디모테오 성지순례길을 걷는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있다.

지금은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지만 ‘38선 숨길’은 남과 북의 감시망을 피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주민들의 애환과 ‘38선 돌파’라는 역사적 콘텐츠까지 담고 있다.

트래킹의 시작은 서퍼들에게는 ‘스폿’으로 알려진 기사문항 인근, 국도 7호선 변에 위치한 ‘38휴게소’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휴게소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진 지하보도를 지나면 ‘38선 숨길’이 시작되는 ‘38평화마을’ 현북면 잔교리가 나온다.

‘디모테오 순례길’과 연결돼 있어 총 거리가 38㎞에 이르는 전체 코스 가운데 1코스도 잔교리를 지나 대치리, 명지리, 남천학생체험학습장, 서면 내현리까지 해변에서 내륙으로 이어지는 거리가 28㎞나 된다.

임도로 이어지는 ‘38선 숨길’은 중간중간 마을을 통해 국도 변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이 곳곳에 연결돼 있다. 굳이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면 자신의 체력과 시간에 맞게 임도길을 걷다 중간에 내려올 수도 있다.

‘38선 숨길’은 38휴게소 반대편인 양양읍내와 인접한 송이밸리 자연휴양림 쪽에서 출발해 임도를 따라 걷는 것도 좋다.

송이밸리 자연휴양림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짚라인 출발점 방향으로 개설된 임도를 따라 걸으면 된다.

임도 정상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와 송이밸리 자연휴양림이 어우러진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이 길을 계속 걸으면 결국 ‘38선 숨길’과 만나게 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38선 숨길’은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사계절 언제라도 한적하게 걷기에 좋다.

걷다 보면 양양군에서 설치한 사유임도 안내판이 곳곳에 있어 산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도 별로 없다.

많이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송이밸리 자연휴양림에서 구탄봉까지 간단한 트래킹도 좋다. 지난 2009년 월리 푸르미아파트~임도~구탄봉 정상~안막치기에 이르는 1.5㎞ 구간에 개설된 구탄봉 등산로는 도심과 가까운 왕복 1시간 정도의 코스로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휘어지며 완만한 경사도의 코스를 따라 구탄봉 정상에 오르면 양양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길에 전망 좋은 산등성이마다 쉼터와 정자가 있어서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MTB 동호인들은 송이밸리 자연휴양림을 출발해 산악임도를 따라 어성전을 돌아오는 총 42㎞에 이르는 코스를 즐기기도 한다.

38선 숨길은 역사의 길이자, 휴식의 길이다.

깊어가는 가을, 전쟁통에 목숨을 걸고 38선 경계를 넘나들던 선대의 애환이 담긴 길을 평화롭게 걸으며, 걸음걸음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최훈 choiho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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