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한강 블랙리스트 보도…"개인적 서사로 소비해 아쉬워"

윤수현 기자 2024. 10. 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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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尹, 블랙리스트 관련 인사 기용"
거듭되는 문화계 논란의 인사에 "자기 검열·위축 상태 놓인 문화·예술계"
국회에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법 통과 요구…정부에는 "할 말 없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 ⓒ연합뉴스

소위 '좌파' 문화·예술인들을 타깃으로 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문화·예술인들이 국제적인 성과를 거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강 작가는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세종도서에서 탈락했으며 박근혜 정부 당시 런던·파리 도서전 등에 배제 지시가 내려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가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아직 블랙리스트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블랙리스트 관련 인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문화·예술계를 좌우로 구분하는 인사들이 요직에 기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정윤희 디렉터를 만나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 사진=금준경 기자

- 블랙리스트 피해자이기도 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화·예술 분야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2014년 세종도서 심사에서 탈락했고, 2014년 런던 도서전과 2016년 파리 도서전 참가도 배제 지시를 받았다. 역사적 폭력과 상처를 미학적으로 풀어낸 작가에게 이념적 딱지를 붙이는 것 자체가 사찰이자 검열이다. K-컬처라는 이름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만큼 문화·예술계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 한강 작가의 수상 후 블랙리스트 관련 기사도 많이 나오고 있다.

“언론보도에서 아쉬운 건 블랙리스트가 단편적으로 거론될 뿐, 블랙리스트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문제가 처음은 아니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상을 탔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블랙리스트가 반짝 조명될 뿐, 해결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가 단순히 문화·예술가들의 개인적 서사로 소비되고 있는데, 아쉬운 지점이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 종결됐다고 보는가.

“블랙리스트는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블랙리스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가 얼마나 많이 기용됐는가. 블랙리스트 백서(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2019년 발간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백서)에 104회 이름이 오른 유인촌 문체부 장관,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실무를 맡은 용호성 문체부 차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감봉 징계를 받은 박덕호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등이다. 문화·예술계를 좌와 우로 나누는 발언을 일삼은 이가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 인사 배경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블랙리스트를 경험한 인사인데,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과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을 좌우로 나누고, 이념에 따른 차별적 지원을 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유인촌 장관을 비롯한 인사의 배경에는 소위 우파로 불리는 문화·예술인들을 진흥하고, 좌파로 분류하는 문화·예술인을 위축시키려는 인식이 있다고 본다.”

- 이 같은 인사가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 같다.

“맞다. 윤석열차 사건 등 예술 검열이 반복되고 블랙리스트 책임이 있는 인사가 나오면서 문화·예술계는 자기검열 상태에 놓인 것 같다. 예전에는 블랙리스트 사태, 미투,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창작환경·표현의 자유·예술인 권리를 위해 연대했는데, 이제는 일부 지원사업 예산삭감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 침묵 상태인 것 같다. '뭘 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회의감에 빠진 것일까. 블랙리스트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위축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계는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9473명 목록. 사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결과 종합 발표 자료집

- 윤석열 정부 들어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사면·복권됐다.

“법치국가에서 법적 정의가 실현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국가 범죄로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왔는데, 이제는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이 사면·복권되고 있다. 현 정부가 블랙리스트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유인촌 장관이 임명된 후 문화·예술계에 달라진 점이 있는가.

“문화 관련 예산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도서전, 문화교육 등 시민문화와 관련된 예산은 삭감되거나 축소됐다.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시민들이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을 길러내는 활동 무대가 점차 사라지게 됐다. 청와대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등 이벤트성 문화 예산만 늘었다. 단순히 도파민만 분포되는 행사가 늘어난 것이다.”

- 블랙리스트의 완전한 근절을 위해 정부와 국회, 문화·예술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정부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정부는 이미 블랙리스트가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재발방지 약속도 했고, 이를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국회는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블랙리스트 특별법, 예술인 권리보장법·문화기본법 개정안 통과에 나서주길 바란다. 22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만 됐지 상임위원회 회의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않고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법안 통과를 위해 나서주길 바란다. 문화·예술계는 침묵하지 말았으면 한다. 문화·예술이 자유를 획득하기까지 투쟁이 이어졌다. 이번 국면도 마찬가지다. 침묵한다면 문화·예술인의 권리와 자율성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 우리가 블랙리스트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련 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권력이 일종의 통제 명단을 만든 건데, 한국의 문화·예술계 리스트는 문화와 행정 체계 전반을 작동시켜 정책으로 구현된다. 권력이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근본적인 문제인데, 문화·예술가 개별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요원해질 수 있다.”

블랙리스트 이후는 표현의 자유 운동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 기구다. 정윤희 디렉터는 시각예술 비평가로 현재 비평그룹 시각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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