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㉒LG 구단 첫 우승…1990년 한국시리즈 이야기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빙그레와 해태를 계속 꺾어 기세를 올렸지만 LG에 대한 시즌 7승13패의 열세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LG 트윈스 백인천 감독은 1990년 10월 24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지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는 페넌트레이스 최종일인 9월 29일 이후 무려 25일간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체력을 완벽하게 충전한 상태로 한국시리즈를 맞이했다.
백 감독의 말처럼 LG는 페넌트레이스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13승7패로 압도했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다만 너무 오래 쉬어 경기감각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빙그레, 해태와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면승부를 펼치겠다.”
삼성 정동진 감독은 페넌트레이스에서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여유가 있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빙그레를 2연파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3연파했다. 특히 1980년대 가을야구에서 아픔을 안겼던 해태를, 게다가 천하의 선동열을 무너뜨렸기에 삼성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삼성으로선 플레이오프 3차전을 10월 16일에 끝냈기에 일주일간 정비할 시간도 벌었다. 체력적으로도 회복했고, 오히려 실전감각 측면에서는 LG보다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시리즈의 향방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22번째 주제는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서울팀 최초 우승으로 기록돼 있는 1990년 한국시리즈의 추억이다.

◆전자업계 라이벌의 KS 격돌…그룹 차원의 자존심 싸움
1990년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10월 24일 잠실벌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잠실야구장 일대는 아침부터 인산인해였다. 인터넷 예매 제도가 없었던 시절, 입장권을 구하려는 인파의 줄은 인근 신천역(현 잠실새내역)까지 이어졌다.
삼성은 1980년대에 1985년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무려 4차례나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1982년 원년에는 OB 베어스에 패했고, 1984년에는 최동원의 4승 원맨쇼에 밀려 롯데 자이언츠에 무릎을 꿇었다. 1986년과 1987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에 연이어 패하면서 아픔을 겪었다. 그랬기에 새롭게 시작된 1990년대의 첫 한국시리즈를 벼르고 별렀다.
LG 팬들의 화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안방인 잠실에서 경기가 열리기에 서울의 LG 팬들이 잠실에 집결했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해태에 1무4패로 물러난 뒤 7년 만에 맞이하는 한국시리즈였다. 간판이 LG로 바뀐 뒤로는 첫 한국시리즈 무대였다.
팬들도 팬들이지만 전자업계 라이벌로서 럭키금성과 삼성의 그룹 차원 신경전도 일찌감치 불이 붙었다.
삼성그룹은 KBO에서 미리 구입한 3500장의 입장권 외에 계열사 직원들을 잠실구장에 풀어 표를 구입하도록 하는 등 대형 응원전을 준비했다. 아무래도 원정경기이기에 팬의 수적 열세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경기 전 낮 12시쯤부터 응원장비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LG는 KBO 측에 “삼성이 신사협정을 위반하고 대형북 10개를 몰래 반입했다”며 항의했다.
양 구단은 KBO의 중재 속에 응원전이 과열되지 않도록 치어리더도 6명씩으로 제한하고, 폭죽이나 기구 등을 사용하지 않기로 구두합의를 했던 터였다. 그런데 삼성 측에서 경기 전날 밤 대형북 10개를 몰래 반입하는 등 약속을 위반했다는 얘기였다.
교통정리를 한 삼성은 오후 1시 45분부터 5000여 명의 응원단을 잠실구장에 입장시켜 응원연습을 시작했다. LG도 1000여 명이 모여 이에 응수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그 시절의 풍경이었다.

선발투수 예고제가 없던 시대, 양 팀은 경기 직전 선발 라인업을 교환하면서 상대 투수의 이름을 알게 됐다.
LG는 우완 김용수, 삼성은 좌완 성준이 선발투수로 격돌하게 됐다.
“백인천 감독님이 일찌감치 1차전과 4차전 선발을 통보하셔서 준비를 해왔지만 긴장이 되더라고요. 1990년 선발로 변신했는데 1회와 2회에 좋은 결과가 안 나올 때가 있었거든요. 1회 시작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섰던 김용수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엘팬알백] 21화에서 소개했듯이, 페넌트레이스 1위 확정 후 춘천에서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합숙훈련을 할 당시 백인천 감독은 일찌감치 김용수를 1차전과 4차전 선발투수로 통보하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그날은 10월 19일이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을 5일 앞둔 시점이었다.
그해 LG 에이스는 18승(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51)을 올린 김태원이었다. 더군다나 김태원은 그해 삼성전 5전 전승에 평균자책점 0.97을 기록하며 킬러로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 감독은 경험이 많고 안정적인 제구와 담대한 투구를 하는 김용수(12승5패5세이브, 평균자책점 2.04)가 1차전 선발로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KS 1차전…LG 1차전 13-0 대승! 각종 KS 신기록 파티

황석중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면서 1990년대 첫 한국시리즈 열차가 출발했다.
김용수는 삼성 1번타자 류중일을 3구만에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첫 단추를 잘 뀄다. 긴장감이 다소 이완된 김용수는 장태수와 박승호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았다. 1회초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어진 1회말.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 박흥식이 좌타석에 들어섰다.
“빵식이~ 빵식이~ 안타 칠 거다♪♬”
LG 팬들은 박흥식의 별명을 따 만든 응원가로 힘을 불어넣었다. ‘빵식이’는 신일고 시절 박흥식이 밥 대신 크림빵만 먹던 모습을 보고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박흥식은 볼카운트 1B-2S로 몰린 뒤 4구째 몸쪽 공을 공략했다. 방망이가 밀린 느낌이었지만 타구는 삼성 2루수 강기웅 머리 위를 지나 우익수 이종두 앞에 떨어졌다. 선두타자 안타였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한국시리즈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들 들뜨기도 했고, 긴장을 많이 했어요. 요즘 응원가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응원가가 있었습니다. 그 응원가를 듣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던 것 같아요.”
박흥식은 마치 어제 일인 양 1차전 첫 타석의 기억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실제 박흥식의 안타를 기점으로 LG 선수들의 자신감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어 행운도 따라왔다. 베테랑 김재박의 빗맞은 타구가 투수 성준 앞에서 묘하게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켜 내야안타가 됐다. 무사 1·2루.
여기서 3번타자 김상훈이 좌전 적시타를 날리면서 박흥식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시작하자마자 3연속 안타에 선취점을 뽑는 순간이었다. 계속된 2사 1·2루에서 고참 이광은이 좌전안타를 터뜨려 LG는 2-0으로 달아났다.
그해 LG전 2승무패, 평균자책점 1.96을 자랑하던 삼성 선발투수 성준은 0.2이닝 만에 강판됐고, 우완 유명선이 마운드에 올라 LG 타선의 불길을 막았다.
2회초 삼성 공격. 김용수는 선두타자 김용철에게 안타를 맞는 등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9번타자 김용국을 1루수 땅볼로 유도해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삼성전에서는 항상 김용국 선수가 까다로웠어요. 김용국한테 안타를 맞는 날엔 이상하게 게임이 꼬였죠. 삼성 타자들은 거포가 많아 스윙이 큰데 김용국은 짧게 끊어치거든요. 김용국을 잡는 순간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용수의 말이다.
3회말 LG 타선이 폭발했다. 베테랑 김재박이 선두타자로 나서 중전안타를 쳤다. 곧바로 빠른 발로 도루를 하며 삼성 배터리를 흔들었다.
이어 김상훈이 우전 적시타를 치면서 빅이닝의 물꼬를 텄다. 결국 3회초에만 타자일순하며 7안타 2볼넷, 상대 2루수 강기웅의 실책 등으로 5점을 뽑아 7-0으로 달아나며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5회말 ‘왕년의 철완’ 최동원이 마운드에 올랐다. 롯데 시절이던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리며 삼성을 울린 최동원은 선수생활의 종착역을 향해가고 있었다.
삼성의 푸른 유니폼은 어색했고, 시속 1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속은 더 어색했다. 패전처리처럼 마운드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던지는 모습은 더더욱 어색했다.
하지만 LG는 사정을 봐줄 수 없었다. 선두타자는 삼성에서 이적해 온 김동재. 4회초 대수비로 들어선 뒤 맞이한 첫 타석이었다. 좌전안타를 때렸다.
1사 1루서 박흥식의 우전안타, 그리고 계속된 2사 만루에서 노찬엽의 2루수 쪽 내야안타로 1점을 추가했다.
스코어는 8-0.
최동원은 6회말 선두타자 이광은에게 유격수 쪽 내야안타를 맞았지만 3타자를 잡으며 이닝을 마쳤다. 마지막 타자인 루키 이병훈을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2이닝 4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 이것이 최동원의 야구인생 마지막 투구였다.

LG는 7회말 2점, 8회말 3점을 추가하면서 13-0으로 1차전을 잡았다. 아울러 이날 갖가지 기록과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들었다.
우선 구단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승리라는 값진 발자취를 남겼다. 전신 MBC 청룡은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1무4패로 물러난 바 있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 점수차(13점), 최다 점수차 완봉승, 팀 최다안타(21개) 등의 기록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는 아직도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선발투수 김용수는 7이닝 동안 4안타 5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빛나는 투구를 펼쳤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승리투수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어 마무리 정삼흠은 컨디션 점검차 구원등판해 8회부터 9회까지 6타자를 상대로 퍼펙트 피칭을 하며 199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연속 등판의 시작을 알렸다.
타선에서는 김용수의 동대문상고 동기인 김상훈이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했고, 박흥식(6타수 3안타)과 이광은(5타수 3안타 2타점)도 활발한 타격을 자랑했다. 최고참 김재박과 신인 김동수는 각각 2안타씩으로 거들었다.
LG는 무려 21안타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안타 신기록도 썼다.

◆KS 2차전…연장 11회말 김영직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

1차전에서 대승을 거둔 LG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삼성은 2차전에서도 밀리면 또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에 2차전에 앞서 계열사 직원을 무려 5000명이나 동원해 응원전부터 맞서려 했다.
2차전 선발투수로 LG는 삼성 킬러이자 에이스 김태원을 내세웠다 삼성은 13승을 거둔 재일교포 잠수함투수 김성길 카드를 꺼내들었다.
백인천 감독의 걱정처럼 김태원은 큰 경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1회초 시작하자마자 흔들렸다.
선두타자 류중일을 초구에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지만 이현택에게 볼넷을 허용한 게 화근이었다. 박승호에게 우익선상을 적시 2루타를 맞으면서 선취점을 빼앗겼다.
LG는 1회말 2사 만루 찬스를 무산시켰다.

김태원은 2회초 3연속 볼넷을 내주고 곧바로 안타까지 맞았지만 실점을 하지 않는 행운을 얻었다.
1사 후 이종두와 장태수의 연속 볼넷으로 무사 1·2루. 김용국 타석 때 더블스틸을 시도하다 2루주자 이종두가 3루에서 아웃되고 말았다. 신인 포수 김동수의 송구가 정확했다.
그런데 다시 김용국이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3연속 볼넷이었지만 결국 2사 1·2루가 됐다.
이어 류중일의 우전안타가 터졌다. 이때 2루주자 장태수가 홈까지 파고들었지만 우익수 김영직의 송구에 잡히고 말았다.
삼성으로선 여기에서부터 일이 꼬이고 말았다. 이에 반해 스스로 무너질 것만 같았던 김태원은 3회초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살아났다.
LG는 3회말 동점을 만들었다. 김상훈의 중전안타와 김영직의 볼넷으로 얻은 무사 1·2루 찬스.
삼성은 곧바로 김성길을 내리고 김상엽을 호출했다. ‘만딩고’ 김상엽은 고졸 2년생으로 1990년 12승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81을 기록하며 떠오른 영건 에이스였다.
노찬엽이 유격수 병살타로 물러나 찬스가 무산되는가 했으나, 김동수가 중전 적시타를 치면서 1-1 동점에 성공했다.
호투하던 김태원은 6회초 1사 후 박승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우월 솔로홈런을 맞고 말았다.
스코어는 1-2.

LG는 김상엽의 힘있는 공에 막혀 1-2로 뒤진 채 9회말을 맞이했다.
선두타자 박흥식과 2번타자 윤덕규의 연속 좌전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김상훈의 유격수 병살타가 나오면서 달아오르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2사 3루가 되고 말았다. 경기가 그대로 끝날 분위기였다.
그런데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격언이 실현됐다.
백인천 감독은 무슨 직감이 있었는지 이날 김영직을 4번타자로 선발 기용했다.
하지만 김영직은 앞선 4타석에서 안타 없이 볼넷 1개. 대타를 기용할 수도 있지만, 백 감독은 김영직을 믿고 기다렸다. 여기서 극적인 장면이 터졌다.
초구는 볼. 2구째 김상엽의 트레이드마크인 각도 큰 파워커브가 날아들었다. 김영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날카롭게 방망이를 돌렸고,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실제로 김영직은 경기 후 “초구부터 커브만 노리고 들어갔는데 2구째 커브가 들어와 마음놓고 방망이를 휘둘렀다”고 말했다.)
2-2 동점 적시타!
1루에 도착한 ‘영감’ 김영직은 만세를 불렀고, LG가 패배 일보 직전에서 살아나자 잠실벌을 가득 메운 LG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환호했다.
연장 10회초에 LG는 투수를 교체했다. 9이닝 129구 2실점으로 잘 버틴 김태원을 내리고 특급 소방수 정삼흠을 불러올렸다.
정삼흠이 10회초와 11회초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LG는 운명의 11회말을 맞이했다.
1사 후 8회부터 대수비로 들어간 신인 이병훈이 좌월 2루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윤덕규의 짧은 중전안타로 1사 1·3루.
삼성은 9회말 동점 적시타를 맞은 뒤 등판시켰던 이태일을 내리고 좌투수 정윤수를 마운드에 세웠다. 그리고는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좌타자 김상훈을 고의볼넷으로 걸러 만루를 만들었다.
다시 좌타자 김영직의 타석. 볼카운트가 3B-2S로 꽉 찼다. 8구째 공이 날아드는 순간, ‘영감’은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밀어내기 볼넷이었다.
LG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달려나갔고, 3루주자 이병훈이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연장전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이 나온 순간이었다.

“직구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공은 눈에 띄게 바깥쪽으로 빠져 포볼(볼넷)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김영직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오늘은 뭔가 해낼 것 같았다”며 “현재 우리팀 분위기라면 4연승은 문제없다. 대구에서 축배를 들게 될 것이다”며 기뻐했다.
‘영감’은 김영직의 별명. 휘문고와 영남대를 졸업한 뒤 1987년 1차지명을 받고 입단한 김영직은 그동안 백업요원에 머물러 왔으나 이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2이닝 무실점으로 막은 정삼흠은 생애 첫 한국시리즈 승리투수가 됐다.

◆KS 3차전…2년차 김기범+루키 이병훈 ‘투타 만세’

하루 휴식 후 10월 27일 대구에서 3차전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잠수함 문병권이 LG 선발투수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해 10승 투수로 도약했는데 삼성전에서만 5승을 거둔 ‘삼성 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인천 감독은 좌완 김기범을 선발카드로 뽑아들었다. 상대의 허를 찔렀다.
삼성은 1차전에서 1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한 좌완 성준을 다시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프로 2년생 김기범은 7회말 2사 1루에서 마운드를 정삼흠에게 넘길 때까지 6.2이닝 2안타 2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면서 삼성 타선을 완벽히 봉쇄했다.

타석에는 이만수. 그 이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10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여기서 2구째 바깥쪽 직구를 잡아당겨 좌월 2점홈런을 날렸다.
대구의 삼성 팬들은 8회까지 3안타에 그치는 등 무기력한 삼성 타선에 실망한 나머지 간간이 깡통과 응원도구 등을 그라운드로 집어던지고 있었다. 이때 이만수의 투런홈런이 터지자 삼성 팬들은 일제히 “이만수! 이만수!”를 연호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삼흠은 강기웅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서 3-2 승리를 마무리했다. 정삼흠이 LG 구단 최초 한국시리즈 세이브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LG로서는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반면 삼성은 1986년 해태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3차전부터 한국시리즈에서만 10연패를 기록하게 됐다.
김기범은 3차전 승리투수가 된 뒤 “한마디로 오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면서 “사실 올 시즌 부진했기 때문에 감독님께 죄송스러웠다. 내년엔 최소 10승을 따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신인 이병훈은 수염을 깎지 않고 산적 같은 이미지로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원래 인상이 험악한데 수염까지 기르면 타석에서 상대팀 투수에게 겁을 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취재진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입담에서만큼은 신인왕을 받아도 될 만큼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병훈은 그런 끼를 살려 훗날 해설위원으로 변신했지만 지난해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KS 4차전…4전 전승 완전무결한 우승 신화

“3연패 뒤 4연승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일궈낸 5연승의 기세를 되살리는 데 온힘을 쏟겠다.”
삼성 정동진 감독은 선수단을 독려했지만 이미 시리즈의 분위기는 LG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10월 27일 대구시민야구장. 일요일이었기에 오후 2시에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늘은 화창했고 기온도 19도 가량으로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LG 백인천 감독은 더욱 독하게 밀어붙였다. 주변에서 “5차전부터 잠실에서 열리니 홈에서 헹가레를 치도록 한 게임은 져도 되지 않느냐”는 농담이 나오자 백 감독은 “무슨 소리냐. 상대 기를 살려주면 네 번 연속 질 수 있다. 잔인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LG는 1차전 승리투수가 된 김용수를 4차전 선발로 다시 꺼내들었다. 삼성은 20세 영건 에이스 김상엽을 내세워 기적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LG는 3회초 한번 잡은 찬스를 물고 늘어지며 4점을 몰아쳤다.
선두타자 김재박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윤덕규의 좌전안타로 무사 1·2루. 일반적으로는 희생번트가 예상됐지만 백인천 감독은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영직은 우전 적시타로 화답하며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김상훈의 투수 앞 빗맞은 땅볼이 행운의 내야안타로 변하자, 4번타자 노찬엽의 좌익수 희생플라이와 김동수의 좌중간 적시타, 이광은의 중전 적시타가 연이어 터졌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4-0이 됐다.
LG는 5회초에 김영직의 우전안타와 김상훈의 우익선상 3루타로 추가점을 뽑다. 노찬엽의 볼넷과 도루로 잡은 무사 2·3루 찬스에서 김동수의 유격수 땅볼로 6-0으로 달아났다.
6회말 삼성이 김용국의 중전안타, 류중일의 적시 2루타와 연이은 내야 땅볼로 2점을 뽑아내며 마지막 저항을 했지만 LG 마운드는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선발 김용수가 7이닝 6안타 무4사구 5탈삼진 2실점으로 역투한 뒤 물러나자 8회부터 정삼흠이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베테랑 포수 심재원이 김동수 대신 마스크를 쓰고 안방에 앉았다.
심재원은 국가대표 출신으로 당시 포수 수비의 교본으로 불리던 선수. 페넌트레이스처럼 정삼흠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일종의 ‘마무리 포수’로 투입됐다.
“제가 시력이 약해 야간경기 때는 포수 손가락이 잘 안 보여 사인을 놓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심재원 선배가 포수로 앉으면 ‘노사인’이었어요. 제가 현역 시절엔 요즘 임찬규처럼 포수에게 공 받자마자 투구를 했잖아요. 던지고 싶은 구종, 던지고 싶은 코스로 사인 없이 던지는데 다 받아주셨어요. 송구 동작도 워낙 빨라 심재원 선배가 마스크를 쓰면 다른 팀 주자들이 도루 시도도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고 심재원 포수에 대한 정삼흠의 회상이다.
(그러고 보니 정삼흠과 임찬규는 인터벌이 매우 짧은 공통점이 있다. 등번호도 임찬규가 정삼흠의 1번을 이어받았다.)
정삼흠은 8회말 등판하자마자 김용국, 류중일, 정성용을 간단히 삼자범퇴로 처리한 뒤 9회초에도 박승호를 1루수 플라이, 김용철을 삼진으로 거침없이 잡아냈다.
타석에는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81학번 동기생인 이종두(한양대 출신)가 들어섰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째 파울. 정삼흠답게 숨 돌릴 틈도 없이 2스트라이크를 바로 꽂았다.
이번에는 유인구? 이미 상대팀 선수들의 전의가 상실된 마당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정삼흠은 곧바로 직구를 한가운데로 찔러 넣었다.
“타석에는 이종두 5번타잡니다. 투수는 정삼흠. 제3구 삼진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우승 LG입니다. 우승 LG!”
이종두가 헛스윙 삼진을 당하는 순간, 이날 경기를 중계한 MBC 고창근 캐스터는 특유의 옥구슬처럼 굴러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LG 트윈스의 우승콜을 외쳤다.
정삼흠은 마운드 위에서 오른팔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포수 심재원이 마운드로 달려오자 펄쩍 뛰어오르며 가슴팍에 안겼고,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온 선수단은 마운드로 달려가 배터리를 향해 몸을 던지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서울팀 최초 KS 우승 금자탑
LG 트윈스의 1990년 우승은 여러 가지 의미와 기록을 담아냈다.
우선 4전 전승 우승은 1987년 해태 이후 KBO 한국시리즈 역사상 두 번째 신화였다.
무엇보다 LG 트윈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우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전신 MBC 청룡이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무4패로 패퇴했는데 LG 트윈스로 간판을 바꾸자마자 첫해에 우승을 달성하는 역사를 썼다. ‘신바람 야구’ 황금기로 가는 신호탄이었다.
아울러 1990년 LG 트윈스의 우승은 ‘서울팀 최초의 우승’이라는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잠실 라이벌 OB 베어스가 1982년 원년에 우승했지만 당시엔 대전을 프랜차이즈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LG는 4차전 동안 25득점을 올리면서 6점밖에 내주지 않았다. 4전 전승이라는 전적도 그랬지만, 내용상으로도 압도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총 51안타를 쏟아부었지만 홈런이 한 방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홈런 없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최초의 사건(?)을 만들었다.
또한 한국시리즈 역사상 투수를 단 4명만 쓰고 우승한 것도 최초의 일이었다.
LG는 매 경기 두 명씩의 투수만 활용하면서 이겼다. 선발투수로는 1차전 김용수, 2차전 김태원, 3차전 김기범, 4차전 김용수가 등판했고, 4경기 모두 정삼흠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는 정삼흠, 김태원, 김용수, 김기범을 포함해 문병권, 이국성, 이용철, 차동철, 최일언, 유종겸 등 총 10명이었는데 4경기 동안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김용수, 김태원, 김기범, 정삼흠 단 4명에 불과했다.


1990년 LG의 우승은 당시 ‘한강의 기적’으로 묘사됐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9년 7개 구단 중 꼴찌나 다름없는 6위에 머물렀던 팀. 1990년 LG 트윈스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신인 김동수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한 전력 보강도 없었다. 그렇게 우승을 이룬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무엇보다 1990년 6월 3일까지 꼴찌에 머물다 우승을 차지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KBO 역사상 6월에 꼴찌를 하다 우승한 팀은 1990년의 LG밖에 없다.

◆LG의 황금기를 연 김용수, 서울팀 최초 KS MVP
김용수는 1차전 7이닝 무실점과 4차전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2승무패, 평균자책점 1.29로 MVP에 올랐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41표 중 36표를 얻어 팀 동료인 김영직(3표), 이광은, 김상훈(이상 1표)를 압도했다.
1985년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용수로서는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구단은 물론 서울팀 최초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저는 야구를 시작한 뒤로 우승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학창 시절엔 팀 전력이 약했거든요. 1986년 MBC 청룡 시절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종전에서 롯데 최동원 선수가 OB 김형석 선수에게 동점홈런을 맞고 패하면서 우리 팀(MBC)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무산됐잖아요. 저로서는 그래서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35년 전의 아득한 일이지만 김용수는 아직도 1990년의 첫 우승 감격을 잊지 못한다.
“야구를 하면서 이런 날이 나에게도 찾아올까 했는데 현실이 되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다른 팀들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속으로 ‘저렇게 좋을까’ 했는데 말이죠. 저는 그냥 아주 잠시였습니다. 막상 우승을 하고 나니 이렇게 한 해가 끝났다는 생각에 허무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승이 확정된 다음에 감독님 헹가래 치고 세리머리에 동참하고 그랬으면 또 기분이 달랐을지 모르는데 그땐 경기 끝나자마자 덕아웃 쪽에서 기자들한테 둘러싸여 MVP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승을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1994년 우승 때도 말이죠. 허허.”

‘혼의 야구’로 우승을 이끈 백인천 감독은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모레알 같았던 팀을 맡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카리스마, 마무리 김용수와 선발 정삼흠의 보직 변경을 단행한 결단, 선수들에 대한 동기 부여, 용병술과 용인술 등으로 LG 트윈스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우승 헹가래를 받은 백 감독은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야구생활 중에 꼭 한번은 이런 기회를 갖고 싶었는데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면서 “82년 몸담았던 MBC와 LG의 차이는 프로의식과 프런트의 지원이라고 본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하루 3~4시간밖에 못 잤기 때문에 이제 실컷 잠 좀 자고 싶다”며 웃었다.
한편 삼성은 5번째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불운을 겪었다.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5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LG에 4전 전패로 패하자 정동진 감독을 해임했다.
[엘팬알백] ㉓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