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상황, 카톡에 올려줘”가 94%…먹통 되면 어떻게?

조휴연 2023. 11. 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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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정부 행정 전산망이 먹통이 되면서 전국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산불이나 집중호우 등 1분 1초를 다투는 재난 상황에서의 연락망은 어떨까요?
재난 상황에선 다른 기관과의 실시간 정보공유, 빠른 대응을 위해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지자체가 민간 SNS 서비스인 '카카오톡'에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가 마비되면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각 정부 기관이 ‘카카오톡’에 심각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발생한 강릉 산불은 건물 70여 채와 축구장 530개 면적의 산림을 태웠다.


■산불·집중호우·태풍 재난 상황 공유 모두 "'카톡'에 올려줘"

지난 4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포 일대에서 난 산불. 거센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건물 70여 채와 축구장 530개 면적의 산림이 불에 탔습니다. 당시 각 기관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실시간 소통을 했을까요?

첫 신고 8분 만에 한 카카오톡 대화방에 '1보'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강원도와 산림청, 경찰 등 관계 기관 공무원 90여 명이 들어와 있는 재난상황방이었습니다. 신고 시각과 신고가 들어온 곳의 지번, 사고 개요가 자세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후, 실시간 산불 상황과 도지사 이동 경로, 지시 사항 등 정보가 잇따라 이 대화방을 통해 공유됐습니다. 각 기관의 대응 상황도 이 대화방을 통해 보고됐고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산불과 집중호우 등 재난 상황 전파는 지금도 이 대화방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간편하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뿐이 아닙니다. 대부분 지자체가 대부분 이런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어, 재난이나 위급 상황 시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양원모 강원도 재난안전실장은 "카카오톡은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사용하니까, 업무적인 부분에서 내부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1조 4,000억 원을 들여 만든 재난안전통신망이 있지만, 현장에선 외면당하고 있다.


■1조 4,000억 넘게 들인 재난안전통신망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재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평소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상황실에는 카카오톡을 대체해 쓸 수 있는 소통 수단이 있습니다. 2021년 5월 정부가 개통한 '재난안전통신망'입니다.

당초 지자체나 소방당국, 경찰이 제각각 사용하던 통신망을 통합해, 빠른 공조가 가능하게 하려고 구축됐습니다.

전국에 기지국 1만 7,000개를 신설했고, 서울과 대구, 제주에 재난안전통신망 운영센터도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생긴 단말기도 새로 개발했습니다.

기존의 정부 통신망 단말기는 무전기처럼 단방향으로 음성만 전송할 수 있었지만, 새 단말기는 복수의 인원이 문자, 음성, 영상을 통해 소통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국에 20만 개가 넘는 단말기가 배포됐습니다. 이렇게 통신망과 장비를 구축하는 데 든 사업비만 1조 4천억 원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돼 외면받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사용된 음성은 570만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기관 간 통신'은 전체의 1%가 채 안 되는 5만 1,000여분에 그쳤습니다.나머지는 전부 기기 점검 등을 위한 '기관 내 통신'이었습니다.

특히 '기관 간 통신' 5만 1,000여 분 가운데 절반 이상인 3만 4,000분은 매일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정기교신이었습니다. 재난 상황이 아니라 유지와 점검 과정에 통신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실제 재난 상황에선 얼마나 사용이 됐을까요?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활용 현황을 보면,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이 단말기 1대당 평균 5.8초, 소방이 10.8초, 의료기관이 10.9초씩 사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번거롭고 보급 잘 안 돼"…현장에서 외면당하는 이유

재난안전통신망이 외면받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사용하기 번거롭고, 단말기가 일부 간부에게만 지급돼 재난 현장에선 쓰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화천군의 담당자는 "산불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카카오톡"이라고 말했습니다. "산불이 나면 출동한 의용소방대나 산불전문 진화대로부터 현장 상황을 전달받아야 하는데, 무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받아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카카오톡을 쓰면 진화대 한 명, 한 명에게서 실시간 사진과 동영상을 받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화천군에 지급된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는 21개인데, 대부분 간부급이 가지고 있다 보니 일반 직원이나 현장 대원으로부터 사진을 받아보려면 결국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광역단체 94%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이용해 재난 대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지자체 94%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통해 재난 대응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모바일 상황실 36곳 중 34곳(94.4%)이 카카오톡을 이용해 모바일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두 곳도 '네이버 밴드',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민간 SNS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누구나 접근하기 편한 민간 SNS 서비스를 사용하는 게 왜 문제가 될까요? 촌각을 다투는 재난 상황에서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카카오톡은 올해만 1월과 5월, 10월 세 차례에 걸쳐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는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9분간 이런 문제가 지속 됐습니다.

또 정부나 지자체가 재난대응 과정에서 민간 서비스로 소통하는 것이 '보안' 측면에서도 적절한지 역시 생각해 볼 거리입니다.

■"운용 기준·근거 마련 시급…재난안전통신만 개선도 병행해야"

용혜인 의원은 "재난 시에 통신 확보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민간 모바일 메신저에 의존하면 할수록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통신 불가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재난 시에는 통신 수요가 몰리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불통' 위험성은 더 커집니다. 이번에 겪은 행정망 마비와 같은 상황에서도 차질 없이 재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말 편하게 재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민간 서비스와 협력 방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재난 시 소통과 상황 전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 기준과 매뉴얼을 만드는 일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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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연 기자 (dakgalb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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