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괴물, 신세계.. 잇따라 투자 홈런 날렸던 남자가 지금 하는 일
SBA 서울경제진흥원 김현우 대표이사
SBA 서울경제진흥원(이하 SBA)은 서울시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투자 등의 활동을 하는 창업 기획자)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 김현우(58) 서울경제진흥원 대표이사가 수장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영화 괴물, 해운대, 신세계 등 영화부터 시작해 '셀트리온' 등 바이오·IT 기업에 투자해 대박을 낸 벤처캐피털 보스턴창업투자의 설립자다.
지난해 인플루언서 박람회 ‘2023 서울콘(2023 SeoulCON)’을 기획하고 개최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인플루언서부터 K팝 팬까지 10만명이 방문했다. 새로운 형태의 박람회 행사를 만들어 약 15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그간의 투자 노하우를 담은 저서 '스티브 잡스도 몰랐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출간했다. 김 대표를 만났다.
◇더 이상 기업 지원‘만’ 하는 기관 아니다
SBA는 1998년 3월에 설립한 서울시 산하 공공 정책 실행기관이다. ‘서울’의 이름을 걸고 만든 만큼 서울시 내에서 이뤄지는 경제 산업 활동 활성화 방안을 궁리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SBA는 컨설팅, 창업 공간 제공, 금융 지원, 기업 연계 등의 활동으로 특정 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했다. 서울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이라면 익숙할 ‘청년취업사관학교’의 운영, 스타트업 보육 공간인 서울창업허브·새싹(SeSAC) 캠퍼스의 개관도 SBA가 담당하고 있다.
2022년 서울경제진흥원의 경영성과보고서를 살펴보면 그해 청년취업사관학교 수료생의 취업률은 74%다. 3600건 이상의 일자리 연계 활동으로 서울시 청년 취업을 도왔다. 창업 활동 지원도 활발하다. 2022년 한 해 동안 스타트업 540개사를 발굴하고 540억원 이상의 투자금 유치를 이뤄냈다.
SBA는 김현우 대표가 오고부터 더 바빠졌다. 기관 내에 ‘미래혁신단’을 새로 조직하고, 서울시만의 특화 산업이 무엇일지 연구했다. 울산의 자동차·조선 제조업, 경기도의 반도체 산업처럼 서울도 특화 산업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투자 경력 살려 다각도로 신사업 추진
김현우 대표는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금융·언론·교육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2020년부터 경희대 교수를 하면서 융합인재센터장을 맡았다. 2021년 11월 SBA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SBA 취임 전 어떤 일을 했나요.
“1991년 장기신용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기업설립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었죠. 그러다 IMF 외환 위기가 터져 잠시 외국계 은행인 HSBC에서 근무했어요. 외환 위기가 끝나니 IT 창업 붐이 일더군요. 저도 회사를 나와 벤처기업 투자사 ‘보스턴창업투자’를 설립해 투자 심사역(VC)으로 활동했습니다. 2000년대 초, 한국 VC 최초로 셀트리온에 투자하면서 투자업계에서 주목받았습니다. 다들 셀트리온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던 시기였거든요. 영화 투자도 많이 했습니다. 괴물, 해운대, 신세계 등 200편 이상의 영화에 투자했죠. 2017년에는 ‘아시아경제TV’라는 경제매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 블록체인·비트코인 시황을 경제매체 최초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합류 직후 어떤 일부터 추진했나요.
“미래혁신단을 꾸려 서울의 미래를 견인할 무언가를 찾아 나섰어요. 기업을 육성해 서울시 경제 생태계 전반의 내실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의 경쟁력을 제대로 파악해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거든요. 매일 직원들과 궁리한 끝에 미래 먹거리로 삼은 영역이 콘텐츠·뷰티·패션입니다.”
-서울경제진흥원이 콘텐츠·뷰티·패션 영역을 다룬다니 솔직히 잘 와닿지 않습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수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경제적 파급효과를 헤아리는 근거가 되는 수치가 ‘취업유발계수’입니다. 생산·투자·소비 등의 경제 활동이 10억원 늘어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를 의미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년 자료를 보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4명으로 반도체 산업의 2.1명보다 7배 가까이 높습니다. 무형의 영역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죠. 뷰티·패션·콘텐츠 산업을 단순 관광 활성화 사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데, 경제 활성화 관점으로 본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사업입니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중심지는 DDP가 있는 동대문이고, 세계적인 콘텐츠, 뷰티 기업의 본사도 모두 서울에 있으니 못할 게 없죠.”
◇DDP로 그려보는 미래 서울의 모습
2022년 9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370평 규모의 뷰티·패션 복합문화공간 ‘비더비(B the B)’를 개관했다. 2023년 상반기까지 43만명의 시민이 방문해 젊은 세대 사이에선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비더비는 어떤 공간인가요.
“누구나 뷰티·패션 관련 제품 전시, AI 피부 분석 체험, 공연 등의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이기도 합니다. 국내 중·소형 뷰티·패션기업 250개사를 발굴해 비더비를 유통 창구로 활용했습니다. 개관 후 5개월간 220억원의 매출 성과를 냈죠.”
-공공기관이 문화공간을 조성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고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런 인식을 깨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셨나요.
“젊은 층의 문화 향유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드시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꼭 뭘 사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거리를 제공했죠. AI 기술을 활용한 헤어스타일 체험, 피부 분석 등이요. 젊은 세대의 생활 양식도 녹여냈습니다. 체험 중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계속 물건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끔 QR코드를 통한 온라인 구매를 유도했어요. 가수 헤이즈 씨를 초청해 비더비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공연 영상은 유튜브에서 100만 조회수를 넘겼죠.”
-패션 산업 활성화에 동대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의류업 종사자 30만명, 10만개의 의복 매장부터 제조 시설까지 모두 한곳에 모여 있는 패션산업 집적지는 동대문이 유일합니다. 과거에는 중국, 동남아시아의 저렴한 인건비에 밀렸지만, 이젠 다품종소량생산의 시대잖아요. ‘나한테 딱 맞는 옷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입는 것’이 주류가 될 겁니다. 여기에 한국의 뛰어난 IT기술까지 더하면 동대문이 세계적인 패션 성지가 될 수 있죠. SBA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DDP에 ‘디지털 쇼룸’을 만들어 동대문 제품을 소비자 맞춤형으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옷을 팔지 않더라도 쇼룸 방문객의 패션 선호, 신체 정보 데이터가 쌓이니 우리나라 패션 기업들도 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겠죠.”
◇뉴욕 타임스스퀘어 버금가는 국제 행사 동대문에서
작년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사흘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콘에는 58개국 3161팀의 유명 인플루언서가 참여했다. 행사에선 K팝 공연과 함께 한류 콘텐츠 연계 상품 판매, 뷰티·패션 제품 홍보, 유망 중소기업 제품 박람회, 최신 기술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 대표는 영화 투자 인맥까지 모아 연예인 소속사는 물론 게임, 음악, 영화, 운동 등 모든 분야에 직접 문을 두드리고 섭외했다.
-위 행사를 서울에서 치른 이유가 뭔가요.
“3가지 기준을 토대로 행사 주제를 설정했습니다. 먼저 해당 지역에서 열리는 이유가 설득력 있어야 합니다. 서울은 K-콘텐츠의 중추 같은 도시입니다. 둘째, 아직 다른 도시가 선점하지 않은 주제여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아직 유튜버, 연예인 등 인플루언서를 한 자리에 모아 흥행한 박람회는 없었습니다. 셋째, 선택된 주제는 대중적 확장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플루언서가 한 자리에 모이니 이보다 주제의 확장성이 무궁무진한 행사는 없죠.”
-공공기관에서 해야 하는 일일까 싶은데요.
“박람회를 매년 개최할 만한 기관이 행사를 담당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공공기관인 SBA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라 봤습니다. 서울 나아가 한국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선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 인플루언서가 우리 기업을 광고·마케팅하는 '비즈니스 매칭'도 핵심인데, 이런 시각에서 행사를 운영하려면 SBA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김 대표는 최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다룬 책 '스티브잡스도 몰랐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냈다. 서울콘 기획자이자 SBA 대표로서, 앞으로 한국 경제 성장동력이 될 K크리에이터의 생태계와 미래 방향을 분석했다. 주요 인플루언서들과 크리에이터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일화와 에피소드를 곁들였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요.
“창작물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을 말합니다. 유튜브, 틱톡 등의 발달로 개인도 콘텐츠를 제작해서 수익을 낼 수 있게 됐죠. BTS나 오징어게임의 열풍과 함께 한국의 크리에이터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인구수 대비 수익 창출 유튜브 채널 수가 미국과 인도보다 많은 나라가 한국이에요. 비율로는 사실상 세계 1위인 셈이죠. 이런 콘텐츠는 온라인 확장성 강력해요. 지금 한국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미래 산업에 대한 통찰력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새로워 보이는 계획이 어느 날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게 아니에요. 기저에는 제 노동 시간이 녹아있죠. 요즘 말로 ‘저를 스스로 갈아 넣었다’는 뜻입니다. 저만큼 노동 집약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신문 기사로 ‘00분야가 뜰 것이다’라는 내용을 읽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책을 찾아보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면서 공부하죠. 저라고 성공만 했겠나요. 수십 년의 헛발질을 통해 이제서야 조금 인정받는 겁니다.”
-임기 중 목표가 있다면요.
“서울콘의 30년 초석을 다진다는 마음으로 올해 행사 준비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서울콘을 성공시켜, 장기적으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세계가전박람회)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와 같은 독보적인 국제 행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