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형제였던 사우디와 UAE, "지금은 왜 적이 되었나?"

중동의 두 거대 산유국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한때 이란을 견제하며 끈끈한 동맹을 유지했던 두 나라가 이제는 예멘을 비롯한 중동 전역에서 정면으로 맞붙고 있습니다.

지난달 사우디가 UAE가 지원하는 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직접 폭격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같은 아랍, 같은 수니파, 같은 왕정 국가였던 두 형제국은 왜 이토록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 걸까요?

그 이면에는 지정학적 야망과 이념의 차이, 그리고 중동 패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습니다.

동맹에서 경쟁자로, 관계의 균열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30일 보도를 통해 사우디와 UAE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왔습니다.

2015년 예멘 내전에 개입할 때도, 2017년 카타르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킬 때도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수단,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예멘 등 중동 곳곳에서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며 사실상의 대리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예멘에서의 충돌은 두 나라 관계가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우디군이 UAE가 후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STC) 세력을 공습한 것은 단순한 오폭이 아니라 명확한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한때의 형제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상황까지 온 것이죠.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려면 두 나라의 전략적 차이를 살펴봐야 합니다.

땅의 나라 vs 바다의 나라, 지정학적 전략의 차이


사우디와 UAE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와 그에 따른 전략적 우선순위의 차이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면적 약 215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대륙 국가입니다.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예멘 등 여러 나라와 긴 국경선을 접하고 있죠.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우디에게는 국경 안보와 주변국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우디의 관점에서 예멘은 반드시 통일되고 안정된 국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예멘이 분열되거나 혼란에 빠지면 사우디 남부 국경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우디는 예멘이 하나의 중앙정부 아래 통합된 상태로 안정을 되찾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사우디가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며 분리주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반면 UAE는 완전히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국토 면적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해상 무역 강국인 UAE에게 중요한 것은 땅이 아니라 바닷길입니다.

홍해와 아덴만, 호르무즈 해협을 잇는 해상 교역로를 장악하는 것이 UAE의 핵심 전략 목표죠.

이를 위해 UAE는 예멘 남부의 주요 항구 도시들을 확보하려 합니다.

아덴, 무카, 소코트라섬 등 전략적 요충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예멘이 통일되든 분열되든 크게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슬람주의를 바라보는 정반대의 시각


두 번째 결정적인 차이는 이슬람주의 정치 세력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우디와 UAE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택합니다.

국가의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슬림형제단 같은 이슬람주의 정당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죠.

물론 사우디 왕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과격 세력은 배제하지만, 온건한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때로 용인합니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반면 UAE는 이슬람주의 정치 세력을 체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UAE 지도부는 무슬림형제단류의 이슬람주의가 중동 전역에 확산되면 결국 왕정 체제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UAE는 리비아,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이슬람주의 세력과 대립하는 세속주의 독재자나 군부 세력을 적극 지원해왔습니다.

이집트의 시시 정권, 리비아의 하프타르 장군,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등이 UAE의 후원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리아 아사드

이런 가치관의 차이는 중동 전역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편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수단에서는 사우디가 민간 과도정부와의 협력을 모색할 때 UAE는 군부 세력에 더 큰 지원을 보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사우디가 온건 이슬람주의 성향의 트리폴리 정부와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UAE는 동부의 하프타르 장군에게 무기와 용병까지 제공하며 전면 지원했습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던 두 나라가 이제는 각자의 이념적 신념에 따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죠.

하드라마우트, 갈등이 폭발한 화약고


참아왔던 긴장이 마침내 폭발한 곳은 예멘 동부의 하드라마우트주였습니다.

이 지역은 예멘 최대의 산유 지대로,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사우디 국경과 가깝고 UAE가 관심을 두는 아라비아해 연안과도 연결되어 있어 전략적 중요성이 큽니다.

바로 이곳을 두고 사우디와 UAE가 정면충돌한 것입니다.

UAE가 지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STC)는 예멘 남부의 분리 독립을 목표로 하는 무장 세력입니다.

STC는 그동안 아덴과 남부 해안 지역을 장악해왔고, 최근에는 영향력을 내륙 깊숙이 확장하려 했습니다. 문제는 STC가 하드라마우트주까지 손을 뻗치려 했다는 점입니다.

이 지역은 사우디 국경과 바로 인접해 있어 사우디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곳이었죠.

사우디는 STC의 하드라마우트 진출을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만약 UAE의 영향 아래 있는 분리주의 세력이 사우디 국경 바로 아래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사우디의 남부 국경은 불안정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우디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STC 세력을 직접 공습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폭격과 부인, 그리고 긴장의 고조


사우디의 공습은 중동 전역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같은 연합군으로 함께 예멘 내전에 개입했던 두 나라가 이제는 서로를 향해 무기를 사용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죠.

사우디는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드라마우트는 명확한 금지선이며, 그 선을 넘는 순간 누구든 응징받을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UAE의 반응은 다소 당황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UAE 정부는 폭격당한 시설이 군사 기지가 아니라 민간 물자가 보관된 창고였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변명으로 보입니다.

해당 지역은 STC의 군사적 거점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우디가 정확히 그 지점을 타격했다는 것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의도적인 공습이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죠.

STC는 철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STC 대변인은 X(구 트위터)를 통해 "하드라마우트와 인접한 마흐라주의 개활지 및 사막 지역 전역에 병력을 배치해 최고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우디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였습니다.

이는 배후의 UAE가 여전히 STC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 발 물러선 UAE, 하지만 끝이 아니다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자 UAE는 지난달 30일 예멘 주둔 자국군의 철수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을 완화하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UAE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예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며 군 철수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일단 한 발 물러서며 사우디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움직임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UAE의 진정한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합니다.

UAE는 직접적인 군사 주둔 대신 STC와 같은 대리 세력을 통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군 철수 발표 이후에도 STC는 여전히 하드라마우트와 남부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UAE로부터의 재정 및 군사 지원도 끊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철수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인 것입니다.

중동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UAE의 갈등이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에 접어들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두 나라의 전략적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중동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한 언제든 충돌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멘뿐 아니라 수단, 리비아, 홍해 지역 등에서도 두 나라는 계속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며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때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굳건히 단결했던 사우디와 UAE는 이제 각자의 야망과 전략을 추구하며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땅의 안정을 원하는 사우디와 바다의 길을 원하는 UAE, 실용적 협력을 택한 사우디와 이념적 순수성을 고집하는 UAE. 이 두 거인의 충돌은 중동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형제에서 경쟁자로, 동맹에서 적대자로 변해가는 두 나라의 관계는 중동 정세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