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의 변신은 무죄… 밀라노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성·혁신’ 가죽 산업의 미래
“이게 다 가죽으로 만든 거라고요?”
1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국제 컨벤션 센터 피에라 밀라노(Fiera Milano Rho). 세계 최대 가죽 박람회 ‘리니아펠레(Lineapelle)’ 개막 첫날 찾은 전시장에서 밀라노 소재 패션 연구개발(R&D) 센터 디하우스의 부스는 귀걸이, 타일 등 가죽 제품과는 거리가 먼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장 천장을 둘러싼 폐가죽 조각들만이 가죽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떠올리게 했다. ‘스마트 사이클(SMART CYCLE) - 무두질 부산물에서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라는 프로젝트명만이 이 전시회가 가죽과 관계있음을 알려줬다.
이탈리아어로 ‘가죽 라인’을 뜻하는 리니아펠레는 전 세계 가죽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최신 트렌드와 업계의 동향을 논하는 자리다. 신발이나 의류, 가구, 자동차 등 다양한 가죽 제품에 활용되는 재료인 ‘가죽’과 관련 부품·소재가 중심이다. 1981년 밀라노에서 시작된 리니아펠레는 매년 2월과 9월 두 차례씩 각각 3일간 열린다. 이번 리니아펠레에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3개국 1259개 업체가 참여했다.
이번 리니아펠레의 화두는 ‘가죽 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이다. 가죽 산업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고루하다는 인식을 극복하고, 가죽 생산·가공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달성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디하우스의 ‘스마트 사이클’ 프로젝트는 가죽 ‘기술’ 혁신의 일환으로, 가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생산·가공 중 발생한 부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다. 가죽 생산 후 남은 폐가죽은 재가공을 거쳐 3D 프린팅의 원료인 필라멘트가 돼 귀걸이를 만들었고, 형형색색의 인테리어 타일과 다양한 질감의 자수 카펫으로도 재탄생했다.
표면 마감 중에 발생하는 가죽 가루는 가죽에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무늬를 넣는 재료로 다시 쓰여 독특한 질감의 가방 원단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현지 무두 공장과 협력해 실제 가죽 생산으로 발생한 폐기물 등을 활용했다.
에바 모나치니 디하우스 코디네이터는 “모든 연구는 가죽 생산의 지속 가능성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며 “새로운 미래의 자원으로서 각종 가죽 부산물·폐기물에 주목하고, 개별적인 특성에 맞게 활용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가죽을 필라멘트로 만드는 기술과 타일로 만드는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현지 컨설팅 기업 ‘SPIN360’이 참여한 회의에서는 기후변화가 가죽산업에 미칠 영향 등이 논의됐다. 페데리코 브루놀리 SPIN360 CEO는 개회사에서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와 환경 변화에 패션 산업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많은 환경단체들은 가죽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동물학대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힌 셈이다.
신발업체 ‘뉴발란스’ 등도 이 논의에 참여했다. 자신들의 환경친화 전략과 실제 도입 사례 등을 공유했다.
이탈리아 가죽업계는 국제 패션학교 등과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리니아펠레와 협업한 6개 국제 패션 학교는 차세대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가죽 디자인 혁신을 선보였다. 특히 캄파니아루이지반비텔리대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가죽 디자인을 제안했다. 나뭇잎 질감을 구현하거나 파스텔 색상으로 염색된 원단 등 전통적인 가죽과는 다른 참신한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캄파니아루이지반비텔리대의 로베르토 리베르티 조교수는 “AI는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제품을 신속하게 시각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며, AI 덕분에 디자인부터 제작까지의 전체 과정이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기존 2~3개월 소요되던 가죽 제작 과정이 AI로 인해 약 2주로 줄어든 것이다.
내년 2월 리니아펠레에는 홍익대학교도 참여하기로 했다. 홍익대 이승익 교수 팀은 글로벌 3D 프린팅 솔루션 기업 스트라타시스·이탈리아 가죽 브랜드 다니와 협력해 식물성 가죽 소재에 3D 프린팅을 적용한 패션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강현 교수 팀과 직물 제조업체 코오롱글로텍이 협업한 자율 주행 운송수단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풀비아 바키 리니아펠레 최고경영자(CEO)는 동아일보에 “가죽은 다루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 젊은 디자이너들이 쉽게 접하기 힘들다. 리니아펠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죽을 활용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한국의 패션 관련 학교와 적극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
밀라노=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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