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병수발이 길어지면 형제자매 사이에도 서운함과 원망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 짐을 며느리 혼자 떠안게 되면 그 세월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외로운 싸움이 됩니다.올해 예순두 살인 김순옥 씨는 10년 동안 시어머니의 간병비를 혼자 감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시어머니의 장례식날, 평소 연락도 뜸하던 시누이가 내민 봉투 하나를 받아 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홀로 남은 시어머니
순옥 씨의 시어머니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혼자서는 거동하기 어려운 몸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3남매 중 장남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뒤였습니다.가족회의가 열렸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둘째 시동생은 지방에 산다며 고개를 저었고, 막내 시누이는 아이들이 어리다며 눈치만 보았습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장남인 순옥 씨네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요양병원비와 간병비는 한 달에 2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형제들이 나눠 내기로 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시동생과 시누이의 송금이 끊겼습니다. 그때부터 그 돈은 고스란히 순옥 씨 부부의 몫이 되었습니다.순옥 씨는 그날 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 못 하겠다면 우리가 하는 수밖에 없지요. 어머님을 아무 데나 모실 수는 없잖아요."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순옥 씨는 그때만 해도 그 결정이 10년이라는 긴 세월로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혼자 감당한 10년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순옥 씨는 마트 계산원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 서서 일하고 퇴근길에는 요양병원에 들러 시어머니의 식사를 챙겼습니다.주말이면 시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앞 공원을 산책시켰습니다. 시어머니는 말이 어눌해져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순옥 씨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그사이 순옥 씨의 아이들 학원비는 하나둘 줄어들었습니다. 가족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순옥 씨는 괜찮다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명절에 잠깐 얼굴만 비치고 돌아가는 시누이를 볼 때면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겨울이면 요양병원 난방비가 따로 붙었고, 시어머니가 폐렴으로 입원할 때마다 병원비가 수백만 원씩 나왔습니다. 순옥 씨는 그럴 때마다 적금을 하나씩 깼습니다. 10년이 지나자 순옥 씨 명의로 된 통장에는 잔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순옥 씨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 늘어난 주름을 보며 가끔 혼자 울었습니다.

멀어진 시누이
막내 시누이 은희 씨는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몇 년은 명절마다 요양병원에 들렀지만 점점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전화를 걸어도 바쁘다는 말뿐이었습니다.한번은 순옥 씨가 조심스럽게 간병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시누이는 한숨을 쉬며 "언니, 우리도 가게가 너무 어려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그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순옥 씨는 그때부터 시누이에게 마음을 닫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시누이를 찾을 때마다 순옥 씨는 "바쁘대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말없는 벽이 높아져 갔습니다.남편도 여동생에게 서운한 마음이 컸습니다. "은희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엄마가 그렇게 예뻐하던 막내딸인데." 남편의 한숨을 들을 때마다 순옥 씨는 시누이가 더 미워졌습니다. 시어머니가 정신이 맑을 때마다 은희는 언제 오느냐고 묻는 것도 순옥 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지난달 시어머니가 여든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순간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사람도 순옥 씨였습니다. 시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순옥 씨의 손등을 두 번 두드리고 눈을 감았습니다.장례식장에는 오랜만에 3남매가 모두 모였습니다. 시동생과 시누이는 영정 사진 앞에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순옥 씨는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0년 동안 곁을 지킨 사람은 자신인데 슬픔조차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처지가 서글펐습니다.장례 둘째 날 밤, 조문객이 모두 돌아간 빈소에서 시누이가 순옥 씨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시누이의 손에는 두툼한 흰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시누이는 장례식 내내 순옥 씨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순옥 씨는 그 모습이 미안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엄마를 언니에게 떠넘긴 것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누이가 불렀을 때도 순옥 씨는 무슨 변명을 하려는 건가 싶어 마음이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봉투 속의 통장
"언니, 이거 엄마가 언니한테 꼭 전해 달라고 하신 거예요." 봉투 안에는 통장 한 권과 삐뚤삐뚤한 글씨의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통장의 예금주는 김순옥, 바로 순옥 씨 자신의 이름이었습니다.통장을 펼치자 10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입금된 기록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입금자는 시누이 은희 씨였습니다. 금액은 매달 50만 원, 잔액은 6천만 원이 넘었습니다."엄마가 쓰러지시고 1년쯤 됐을 때 저를 따로 부르셨어요. 언니가 간병비 다 떠안을 거라고, 언니 이름으로 통장 하나 만들어서 몰래 모아 두라고. 언니가 다 늙어서 빈손이 되면 안 된다고요. 언니한테 말하면 언니가 그 돈까지 병원비로 쓸 테니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시누이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가게가 어렵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 50만 원은 한 달도 안 빠뜨렸어요. 이것마저 못 하면 엄마 얼굴을 못 볼 것 같아서요." 순옥 씨는 그제야 10년 동안 시누이가 왜 그렇게 자신을 피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10년 만의 눈물
순옥 씨는 통장을 손에 쥔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바쁘다며 발길을 끊었던 시누이는 사실 시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언니를 피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말을 하면 들킬까 봐, 마주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일부러 멀리했던 것입니다.편지에는 시어머니의 마지막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순옥아. 내 딸보다 더 딸 같은 내 며느리. 너한테 짐만 지우고 간다. 이 돈은 네 것이다. 네 노후에 써라. 고맙다. 미안하다." 순옥 씨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10년 동안 참아 온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 냈습니다.시누이도 순옥 씨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언니, 그동안 미안했어요. 언니한테 나쁜 시누이로 보이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날 밤 두 사람은 시어머니의 영정 앞에 나란히 앉아 새벽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장례가 끝난 뒤 순옥 씨는 그 통장의 돈 일부로 시어머니가 생전에 가 보고 싶어 하던 고향 바닷가 마을에 작은 기념 벤치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남편과 함께 노후를 위해 다시 적금으로 묶었습니다. 벤치 옆에는 시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넣은 작은 액자를 걸어 두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무심함 뒤에 깊은 배려가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몸으로도 며느리의 노후를 걱정했고, 시누이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 약속을 10년 동안 지켜 냈습니다.가족 간의 서운함은 대화가 끊긴 자리에서 더 크게 자랍니다. 오해가 쌓이기 전에 한 번 더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오랜 수고는 반드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Copyright © 나를 돌보는 마음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