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패 삼겹살조차 사치였던 시절
서른다섯, 이성민은 아내와 어린 딸을 대구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무명의 배우였던 그는 주말마다 아내에게 10만 원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했다.


도시가스비조차 낼 수 없어 장인어른의 카드를 빌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처가는 내색 없이 그를 지켜줬다.
“이 서방, 와봐” 같은 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진 것 없는 결혼, 더 깊은 책임감
결혼도 넉넉지 않았다. 사과 한 박스를 들고 인사드렸고, 아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다.
신혼 6년은 떨어져 살았고, 딸 하나만 낳은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쁨보다 미안함이 앞섰고, 딸이 고기를 먹고 싶어 할 때조차 대패 삼겹살 1인분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지금도 그 메뉴는 손이 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미생'이라는 전환점, 그리고 지금
그렇게 버티던 시간 끝에 2014년,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 역을 맡으며 비로소 이름을 알렸다.
작품의 흥행과 함께 이성민이라는 이름은 신뢰의 상징이 되었고, 그는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는 말한다,
“천 원이 없어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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