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여성 직업인들이 걸어간 길

전문직과 돌봄 노동의 이야기
사회적 편견 딛고 ‘꿈’ 이뤄내
100년 전 조선에서 여성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26년 5월 조선일보는 ‘조선 여성이 가진 여러 직업’이란 연재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직업 세계를 소개했다. 오늘날에는 평범한 직업이지만 당시에는 편견과 싸워야 했던 개척자의 길이었다.
첫 번째는 여성 의사 유영준(劉英俊)씨 이야기다. “그가 의사 생활을 시작한 지가 벌써 3년이나 넘었으니 동경 일본 적십자병원에서 1년 동안 실습이 있었고 작년 정월부터는 시내 동대문 부인병원과 태화진찰소 의사로 있었으며 현재는 세부란스병원 소아과와 태화진찰소를 맡아 보는 외에 이화학당 교의(校醫), 근화여학교 생리 선생으로 눈코뜰 사이가 없으면서도 작은 겨를이라도 있으면 빈한한 자들의 특별 진찰을 해주며 유사 이래로 처음되는 작년 수재에 참혹한 환자들을 구하고자 조선일보사와 협력하여 의료반을 조직해 가지고 뚝섬, 마포, 동막, 이촌동으로 두루 난(亂)이 든 민중을 위하는 그의 희생적 정신은 누구나 감탄하는 바이다. (하략)” (5월 9일자)
두 번째는 교사 김순영(金順英)씨 이야기다. “작년 봄에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방금 경성 시내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순영씨를 찾아 그에게 들은 대로 소개하건대, 날마다 토필(土筆·분필) 가루 속에서 같은 생활을 되풀이하므로 별로 신통한 재미는 없을 것이지마는, 천진난만한 어린 여성들이 운동장에서 가로 뛰고 세로 뛰고 웃고 떠들고 자기의 내적 생활을 조금도 숨김없이 그대로 표현시키는 것을 볼 때에 웃음이 저절로 나올 뿐만 아니라 여간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만사가 눈녹아 버리 듯하며 오직 그들의 기쁨 속에 함께 어울리고 만다 한다. (하략)” (5월 10일자)
세 번째는 유치원 보모(保母) 곽성실(郭誠實)씨 이야기다. “유치원 보모의 자격으로는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사범과를 졸업하여야 되며 보모 된 그들의 생활을 듣고자 하여 수송유치원 보모 곽성실 씨를 찾아 가니 그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여 주었다. ‘어린이 세계는 참으로 화평한 천국이라 할지니 (중략) 괴로운 일이나 불평한 일이 있어 얼굴을 찡그리고 유치원에를 가다가도 문안에만 척 들어서서 그들이 웃음 섞인 얼굴로 ’선생님‘하고 부르며 양 떼같이 우르르 불려 나오는 것만 보면 그만 만사가 그 기쁨 속에 녹아버리고 만다. 이것이 보모 생활의 가장 취미있는 점이라 하겠으며 보모된 나는 어린이의 동무거니 하는 생각을 한 즉 항상 젊은 기분 어린이 기분을 가지게 된다’고 말하더라.” (5월 11일자)

네 번째는 여기자 박경식(朴敬植)씨 이야기다. “신여성사 기자 박경식 씨를 찾아 여기자가 된 그의 생활을 듣건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자인 남성의 노예가 되고 성적으로 남편에게 구속을 받고 있는 즉, 이중의 쇠사슬에 얽매어 있는 조선 부인의 현상을 목격할 때에 그는 우리 부녀계의 해방은 단지 남성을 반역하는 운동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남성을 만들어내는 현 사회 조직을 개혁하는 운동이라야만 될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가 기자라는 첫 직함을 띄고 재료를 구하러 이곳 저곳 사람을 방문할 때에 웬일인지 어색한 생각도 나고 서먹서먹하여 발길이 남의 집 대문을 확 들어 놓게도 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더욱이 찾아간 그 일이 맘대로 되지 아니 해서나 혹은 너무나 쌀쌀하고 기자를 주릴 기(飢)자의 기자(飢者)와 같이 대접하는 눈치가 보일 때 그만 그날이라도 기자 생활을 집어 내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하나, 기자 된 사명이 이를 참고 나감에 있지 않느냐는 자문자답(自問自答)에 다시금 기꺼이 일을 하게 되더랍니다. (하락)” (5월 12일자)
다섯 번째는 간호사 백금수(白金守)씨 이야기다. “인사동 영제병원(榮濟病院) 간호부 백금수씨는 간호부의 생활 내면을 듣고자 하는 기자에게 ‘세상은 너무도 간호부에게 대한 이해가 없습디다. 희생적 정신과 노력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간호부들을 노예시(奴隷視)하는 점이 적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입원 환자들은 간호부를 마치 장난감처럼 농락해 보려는 일까지도 있으니 참으로 심한 일이요, (중략) 그러나 간호부 된 내가 밤을 새우고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공급하고 무진한 노력을 한 결과로 입원 환자나 수술 환자의 병이 쾌차할 때의 기쁨은 무엇에 비할 길이 없으며 이런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막대한 위안을 갖는 것은 위생 사상이 결핍한 우리 조선 동포에게 작은 힘으로나마 이것을 보급시키는 동시에 병의 고초로 잃어버리는 생명을 회복시키며 비록 최후를 그대로 마치는 한이 있더라도 극도로 흥분된 신경을 안정시켜 평안한 마음으로 목숨의 줄이 살아지게 되는 사명이 간호부 된 우리에게 한하여 있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제일 잘난 체하고 제일 똑똑한 체하는 남자로서는 만 번 죽었다 깨어도 할 수 없는 일이요, 오직 선택적으로 거기에 적당한 특장을 가진 여자로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올시다.” (5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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