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자 ‘기록적 인플레’에 생활고…일해도 아이들 밥 못 먹인다

정원식 기자 2023. 1.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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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는 오직 파스타뿐”
푸드뱅크 없이 견디기 힘들어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 앞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영국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에이슬린 코리의 저녁 메뉴는 “파스타, 파스타, 파스타”이다. 다른 음식은 재료비가 많이 들어 해먹을 수가 없어서다. 푸드뱅크의 도움 없이는 과일 한 조각도 아이들에게 먹이기 힘든 형편이다.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이 부족해 자신은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크게 밑돌아 노동자 가정의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영국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최대 푸드뱅크 트러셀 트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신규 이용자 30만명 중 5분의 1이 가족 중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있는 가구의 구성원이었다. 런던 해크니 푸드뱅크는 지난해 12월 어린이 647명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 한 해 전의 330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일부 학교에서는 급식 대상이 아닌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아침 시간 정문에서 나눠주는 무료 토스트로 아침을 때우는 부모와 아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푸드뱅크 이용자들 중에는 간호사와 교사 등 공공 부문 정규직들도 포함돼 있다. 런던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얼리셔 마르카노(46)는 최근 처음으로 해크니 푸드뱅크를 찾았다. 그는 요즘 12세 딸에게 핫도그와 버거로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면서 “평소 같으면 아이에게 주지 않을 음식이지만 값이 싸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하는 부모가 있는데도 아이들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나타나는 건 급격한 물가상승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영국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11.1% 올라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에너지와 식료품이 물가상승을 견인하면서 에너지와 식료품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됐으나 여전히 한 해 전보다 10% 이상 높은 수준이다.

반면 임금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영국은 2020년 기준 최저임금 수준이 세계 10위권 이내에 들어가지만 저소득층의 임금 상승이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느리고 저소득층의 노동시간도 짧다고 NYT는 전했다. 또 집권 보수당의 긴축정책으로 저소득층 지원 혜택도 크게 줄었다.

잉글랜드 중부 더비에서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비키 롱본 목사는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건 참담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스트 런던의 한 푸드뱅크에서 일하는 킹슬리 프레드릭은 “구급대원과 교사들이 푸드뱅크에 온다”면서 “제대로 된 공동체와 국가라고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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