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6월 30일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에 대해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설계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원래 지난해 초 시행 예정이었지만, 건설업계의 거센 반발로 1년 6개월간 유예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유예는 없다는 정부 입장에 따라, 결국 현실화된 것이죠. 공공부문에서는 이미 2023년부터 해당 기준이 적용되고 있었지만, 민간 확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건축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자체 에너지 생산으로 자립을 추구하는 ZEB는 이상적인 개념이지만, 지금의 건설 환경에서는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가되는 공사비 부담, 중소건설사에 직격탄
ZEB 기준을 충족하려면 고효율 창호, 고단열 자재, 태양광 설비 등의 고가 자재가 필수적으로 들어갑니다. 정부는 84㎡ 기준으로 세대당 약 13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혔으며, 향후 6년간 에너지비 절감으로 회수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실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고층 아파트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옥상 공간만으로는 태양광 설치가 부족해 벽면 활용이 불가피하며, 이는 외관 훼손과 추가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정부는 다른 부지 설치나 REC 구매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어떤 방식을 택하든 결국 건설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이미 흔들리는 업계, 더 큰 위기 다가오나
건설업계는 이미 수주 감소, 부동산 침체, 공사비 상승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11월 대비 2023년 11월의 건설공사비 지수는 29%나 급등했습니다. 이처럼 공사비가 가파르게 상승한 가운데, 원자재 가격은 여전히 높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도 해소되지 않아 비용 인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제로에너지 설계 의무화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중소 건설사에게 ‘추가 부담’이 아닌 ‘직격탄’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한 지방 건설사들이 도산할 위험이 높아지며 지역 건설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 규제와 산업 생존 사이, 균형 있는 해법 절실
지난해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29곳으로,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이며, 그 중 86% 이상이 지방에 기반을 둔 중소업체였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건산연이 예고한 바와 같이 공사비 상승 여파가 2024년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기업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현재의 위기가 단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정부는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건설업계가 이를 감당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 역시 직시해야 할 시점입니다. 규제 도입과 산업 생존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정책 조율이 필요한 지금, 정부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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