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볼거리며, 밀어내기 4개…이게 무슨 국대 투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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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춘 10년 동안의 패배

9회 말이다. 스코어 6-7, 1점 차이다.

혹시나.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공 3개로 아웃 2개가 지워졌다. 문보경이 2루수 땅볼(2구), 문현빈은 좌익수 플라이(초구)로 잡혔다. (16일 도쿄돔, NAVER K-BASEBALL SERIES 한국-일본)

이제는 절망이다. 남은 아웃은 1개다. 다음 타석에 김주원이 선다. 앞서 3타수에 안타가 없다. 삼진만 2개를 당했다.

‘누구 대타라도 한번 쓰지.’ 그렇게 감독, 코치를 원망하던 찰나다.

카운트 1-1에서 3구째다. 155㎞짜리 패스트볼이 살짝 몸쪽으로 몰린다. 이건 용서할 수 없다. 후련한 응징이 폭발한다. 완벽한 스윙에 걸린 타구가 까마득히 날아간다. 이윽고 도쿄돔 우중간으로 사라진다.

그 순간 중계석에서 비명이 터진다. “아~악! 갔어요.”

반면 관중석은 싸늘하게 식는다. 4만 개의 허탈한 표정으로 채워진다. 7-7 동점.
그야말로 벼랑 끝이었다. 무려 10년 동안이다. 길고 길었던 10연패가 잠시 멈춰 선다.

당하는 쪽은 충격이 크다. 일본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어진다. 순식간에 댓글창이 폭발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웃 1개만 남았는데.” “실망이다. 이런 경기를 하면 내년 WBC는 보나 마나.” “비긴 게 아니다. 내용으로 보면 패배나 마찬가지다.” “사무라이 재팬, 정신 차려라.” “세계 최고라는 일본 투수진인데, 이틀 동안 홈런을 4개나 맞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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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탓, ABS 탓…

“비겼지만 졌다.” 일본은 그런 반응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긴 기분은 아니다. 그냥 “휴, 다행이다” 하는 정도다. 최악은 면했다는 심정이다.

그보다는 답답함이 크다. 경기 내내 한숨만 짓게 만든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마운드 탓이다.

신통한 투수는 달랑 2명이다. 정우주(3이닝)와 박영현(2이닝)뿐이다.

나머지 5명은 심각하다.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을까. 1이닝도 못 막아준다. 아니, 아예 스트라이크를 못 던진다. 빙빙 돌리다가, 볼넷을 주기 일쑤다.

문제의 5명이 4이닝 동안 내준 4사구는 11개나 된다. 특히 오원석(0.1이닝)과 조병현(1이닝), 배찬승(1이닝)은 각각 3개씩을 허용했다.

안 치면 그냥 다 볼이다. 밀어내기로 4점을 줬다. 맞아서 준 3점보다 많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이건 도저히 국가대표 수준이 아니다.

전날(15일) 경기도 비슷하다. 투수 7명이 4사구 11개를 남발했다. 그러니까 이틀 동안 23개의 ‘공짜 1루’를 허용한 셈이다. 아마도 한일전 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일 것이다.

그러니 온갖 핑계가 등장한다. 경험 탓, 심판 탓, ABS 탓….

보다 못한 파이널 보스가 한마디 한다.

“ABS(자동볼판정시스템)의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들에게 더 영향이 있을 것이다. 투수들은 ABS 핑계를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ABS가 있다고 해서 그 존을 보고 던지는 투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오승환 MBC 해설)

판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국제 대회를 하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건 상대 팀도 같은 조건이다. 그런 콜이 나와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국가대표라는 자리다. 그런 심판을 만나는 것도 공부가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오승환 MBC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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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총재가 입에 달고 사는 말

허구연 KBO 총재의 취임 4년째다. 그가 매년 잊지 않는 약속이 있다.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말이다. 취임식, 신년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 2022년 3월 취임식

“어깨가 무겁다. 나는 9회 말 1사 만루, 절체절명의 위기에 마운드에 올라온 구원투수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야구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 우리의 수준을 선수들이 몸으로 느껴야 한다.”

▲ 2023년 1월 신년사

“두 번째 과제는 '국제 경쟁력' 강화다. 올해는 3월 WBC, 9월 아시안게임, 11월 APBC 대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제대회가 예정됐다.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고, 전력분석을 철저히 해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 2024년 1월 신년사

“한국야구 경쟁력 강화를 위한 ‘KBO리그’와 ‘팀 코리아’ 레벨 업 프로젝트가 계속된다. 세부적으로는 전임 감독제 도입과 국제야구 흐름에 부합하는 각종 경기 제도 개선, 유망주 해외 파견과 교류경기 확대, 리그 차원에서 지도자 양성 노력과 더불어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계획을 밝혔다.”

▲ 2025년 1월 신년사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류전을 통해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철저히 대비하겠다.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 향상을 도모하고, KBO 국제 교육리그 운영을 통해 미래 야구 인재 발굴과 글로벌 야구 생태계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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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거리가 되면 안 된다

벌써 10년째다. 기억에 남는 국제대회 승리가 없다. 매번 한ㆍ일전의 고비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다.

미국 본토에 간 일도 가물가물하다. 이제 WBC 본선 진출도 쉽지 않다. 지역 예선 탈락은 일상이 됐다. 어쩌다 열리는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메달권 밖에서 허우적거린다.

아이러니다. 그런데도 국내 리그는 흥행이 잘 된다. 작년에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올해는 1200만 명을 넘어섰다.

덕분에 호재가 끊이질 않는다. 구단마다 매출이 늘고, 재정이 좋아졌다. 선수들도 콧노래가 나온다. 거액 FA 계약이 줄을 잇는다. ‘황금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KBO리그다.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다. 허 총재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야구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 우리의 수준을 선수들이 몸으로 느껴야 한다.” (2022년 취임식)

물론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 재미있고, 신나면 그만이다. 리그 운영은 ‘종합 예술’이다. 경기력이 전부는 아니다. 인기, 흥행은 또 다른 차원이다. 팬들의 만족감은 다양한 요소로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틀렸다.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좋은 플레이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다. 우승, 준우승, 4강…. 그런 경쟁력은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부끄러움은 알아야 한다. 손가락질과 비웃음거리가 돼서는 곤란하다.

볼넷 10개는 창피한 일이다. 밀어내기 4개는 굴욕이다.

그런 투수들은 국가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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