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0% 깨졌다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본사  /사진 제공=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홀딩아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당초 쉰들러는 '백기사'로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주주였지만 지난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 지키기에 나서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앙숙관계이면서도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0% 이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주요주주로서 계속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러나 최근 현대엘리베이터가 보고한 임원 및 주요주주 지분 소유 상황에서 쉰들러의 지분율은 9.94%로 확인됐다. '10% 이상' 룰을 깬 것이다. 3대주주인 오르비스인베스트먼트와는 지분 격차가 3%p 미만이다.

지난해 지분을 소량씩 매각할 때만 해도 재계는 의도적인 흔들기로 봤다. 그러나 2대주주 자리를 위협받을 만큼 주식을 팔면서 현대엘리베이터에서 떠나고 싶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주가 때문에…' 쉰들러 신주인수권 매각

과거에는 쉰들러의 투자금 회수 명분이 있었다. 2014년 취득한 신주인수권 증권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한 신주인수권이 표시된 특정 증권을 쉰들러는 2014~2015년 2년간 모두 팔아 치웠다.

매각 사유는 현대엘리베이터 주가 하락에 따른 재무적 손실이었다. 2014년 7월 쉰들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취약한 주가로 2013년 총 2억1900만스위스프랑(약 3438억원)의 손상차손 외에 4000만스위스프랑(약 627억원)이 추가 감액됐으며, 이는 2014년 연결이익에 부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쉰들러는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무리한 계열사 지원을 지목했다.

당시 재계는 쉰들러의 지분매각에 속내가 따로 있다고 봤다.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려 저가에 매수하기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노린 것으로 해석했다. 쉰들러는 신주인수권 표시가 있는 특수증권을 매각하면서도 보통주는 건드리지 않았다. 또 2013년 파생상품 계약 문제로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주식을 소량씩 매입하기도 했다.

/자료=현대엘리베이터 지분 공시

단순 엑시트냐 적대적 M&A냐

2023년 6월 말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의 공정가치를 1억6900만스위스프랑(약 2652억원)으로 인식했다. 전년 말의 1억3100만스위스프랑(약 2055억원) 보다 30% 오른 액수다. 그러나 쉰들러는 지난해 6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약 9만주를 매각했다. 앞서 '재무적 손실'이라는 배경설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이후 올해 8월까지 총 243만9131주를 처분했다. 매각단가는 4만원대였다.

지분매각 과정에서 손실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쉰들러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주식매각으로 5400만스위스프랑(약 846억원)의 기타금융수익이 발생했다. 올 상반기에도 처분에 따른  400만스위스프랑(약 62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측도 쉰들러의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주요주주지만 주총 때마다 모든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만큼 적대적인 상황으로 지분을 축소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꾀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쉰들러의 지분매각에도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는 큰 움직임이 없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자사주 매입, 대규모 배당 등으로 주가하락을 방어해왔다. 이달에는 현정은 회장 딸인 정지이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임당장학문화재단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745주를 매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이 경영권 분쟁과 대북 관련 테마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배당주로 인정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