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싸게 사려다 더 사고 더 위험해져”···서울 상륙한 ‘창고형 약국’, 안전장치는?
실제 중복 성분·증상 확인은 없어
오남용 위험···신중한 논의 필요

“감기약 사려고 왔다가 비타민, 소화제까지 샀어요. 이렇게 사야 이득이더라고요.”
지난 3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메가팩토리(창고형 약국)’에서 만나 A씨는 약을 한가득 담은 자신의 쇼핑 카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2876㎡(870평) 규모 약국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진열대에는 각종 영양제와 상비약이 쌓였고, 휠체어부터 애완동물 용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고 매장을 오가는 약사들만이 이곳이 대형마트가 아닌 약국임을 알리고 있었다.
지난해 경기도 성남에서 처음 문을 연 ‘메가팩토리’가 지난 2일 서울에 2호점을 냈다. 소비자가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며 약을 골라 담는 방식으로 화제가 된 지 8개월 만이다. 수많은 제품을 눈으로 비교하며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카트에 채워지는 것이 ‘생필품’이 아닌 관리가 필요한 ‘의약품’이라는 점에서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지점도 분명히 확인된다.
타이레놀 500원·우루사 1000원 차이···더 많이 사야 이득
소비자들이 메가팩토리를 찾는 가장 강력한 유인은 ‘가격’이다. 이용 후기에서도 ‘특가’ ‘1+1’ 할인 등을 언급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 할인폭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소비자 구매가 많은 대표 품목 10가지를 골라 시중 약국과 비교했다. 그 결과, 메가팩토리에서 구매 시 가장 이득인 품목은 고함량 비타민 등 영양제였다. 유명 제품인 ‘비맥스 메타비’의 경우 시중 약국보다 약 32% 저렴하게 판매했다. 인사돌이나 센시아 같은 만성질환 보조제 역시 가격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장기 복용을 목적으로 영양제를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메가팩토리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처방전이 필요한 ‘조제약’은 약국이 입점한 건물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으면 접수가 거부된다. 정두선 메가팩토리 대표약사는 “외부 처방전의 경우 비급여 약만 조제한다”고 말했다.
일반의약품(OTC)의 경우 ‘약국 원정’을 떠날 정도의 이득인지 따져봐야 한다. 시중 약국 판매가와 비교한 10개 중 6개 품목 가격 차가 개당 1000원 이하였다. 대표적인 진통제 타이레놀 500mg(10정)은 시중가 대비 500원 저렴했고,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120캡슐)는 1000원 저렴했다. 상처 치료제 비판텐은 가격 차이가 없었다. 메가팩토리는 한번에 ‘대량으로’ ‘다양하게’ 살수록 소비자의 체감 가격 효과가 크다. A씨처럼 감기약 사러 왔다가 비타민도 사고, 소화제도 사는 식이다.

결제까지 10초면 끝···구멍 뚫린 ‘안전망’
문제는 소비자가 의약품을 놓고 ‘경제적 합리성’을 따지게 만드는 구조가 ‘약물 오남용 위험’도 함께 키운다는 점이다. 다양한 약을 대량으로 사는 경우 오남용 방지를 위한 복약 지도가 필요하다. 메가팩토리에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건당국이 1인당 1개 혹은 2개로 판매 수량을 제한한 종합감기약을 구매해 봤다. 해당 약들에는 마약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돼 있어 대량 구매가 엄격히 제한된다. 정 대표약사는 “구매 제한이 있는 약은 계산 단계에서 초과 구매 여부를 확인하고 걸러진다”고 말했다.
먼저 1인 2개 구매로 제한이 걸린 제품들을 각각 1개씩 총 4개 구매했다. 계산대에 약사가 있었지만 증상을 묻거나 중복 성분 확인은 없었다. “목감기약과 종합감기약은 같이 복용해도 된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약국이라기보단 ‘편의점 계산대’에 가까웠다.
20여분 후 다시 매장을 찾아 앞서 구매한 제한 품목을 이번에는 3개(각각 2개, 1개) 더 가져갔다. 역시 제지는 없었다. 이날 구매한 ‘슈도에페드린’ 함유 종합감기약은 총 7개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계산대 앞에 긴 줄이 늘어선 상황에서, 약사가 한명 한명 얼굴을 기억해 중복 구매를 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박현진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회장은 “약사가 복약 지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인터넷에서 약을 파는 것은 대체 왜 막는 것이냐”며 “약국을 안전장치도 없이 공장식으로 운영한다면, 약사 스스로 전문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메가팩토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창고형 약국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에게 ‘가격 파괴’ ‘약 선택권’ 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가 손에 쥐는 ‘이득’과 감수해야 할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신중한 논의가 없다. 박 회장은 “결국 싸다는 이유로 약을 더 사고, 그만큼 위험도 더 커지는 구조”라며 “당장 필요 없는 약을 대량으로 사기 때문에 지출은 오히려 더 늘어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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