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돌 던지는 인종차별에도 울며 영어 외웠다”…정려원이 이겨낸 성장통
걸그룹 샤크라의 멤버에서 지금은 연기력으로 사랑받는 정려원. 단순한 전향이 아니라, 이민자 시절부터 이어진 편견과 고통, 실패의 연속 속에서 꿋꿋하게 걸어온 여정이었다. 지금은 품격 있는 연기파 배우로 불리지만, 그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생존의 본능과 정신적 강인함이 숨어 있다. 한때 “나를 다 부수고 다시 만들었다”는 고백까지 남긴 정려원. 그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

호주 이민 시절, 벽돌과 욕설을 견디며 자란 소녀
정려원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2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 당시 아시아인이 거의 없던 환경 속에서 그는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등굣길엔 콜라가 날아들고, 집 주변에서는 벽돌이 던져졌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마음에 눈물로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그는 결국 초등학교 졸업연설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오빠와 서로 의지하며 견뎌낸 시간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호주 이민 초기에 부모님이 사기를 당하면서 가족의 경제 사정도 어려워졌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가계를 도우며 성장했고, 청소년기부터 생존을 위한 ‘이해받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배경은 이후 연예계에서도 굴곡을 마주할 때마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실제로 정려원은 이후 우울증을 앓았던 시기를 털어놓기도 했고, “사람들이 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혼자 앓았다”고 밝힌 바 있다.

DDR 하다가 인생이 바뀌다…샤크라의 화려한 시작
고려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머물던 중, 압구정 오락실에서 DDR 게임을 하다 이상민에게 캐스팅된 정려원. 그 인연으로 1999년 샤크라에 전격 합류하게 된다. 연습생 과정을 거치지 않고 3개월 만에 데뷔한 그는, 방송에서 부모님이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될 정도로 갑작스러운 데뷔였다. 샤크라에서는 ‘려원’이라는 이름으로 서브보컬을 맡았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발랄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데뷔 후에도 문화적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익숙한 호주의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한국 연예계로 들어온 그는, 지나치게 빠른 변화 속에서 극심한 피로감과 혼란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돌 생활을 하며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을 느꼈고, 이 시기 그는 이미 몸이 급격히 마르고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경험은 정려원이 ‘진짜 나’를 찾기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

무수한 낙방 끝에 만난 ‘김삼순’…배우로 재탄생
정려원은 연기자로서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며 수많은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좌절감이 극에 달했을 무렵,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본” 오디션이 바로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해당 작품에서 현빈의 전 연인 ‘유희진’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인정받았다. 이 작품 하나로 백상예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며 배우 정려원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이후 《가을 소나기》,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등 멜로 장르에서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고, 영화 《두 얼굴의 여친》에서는 다중인격 연기를 소화하며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까지 수상했다. 연기력에 대한 의심을 ‘결과’로 증명한 것이다. 그는 이 시기를 “삶에서 가장 불안했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아이돌이 아닌 배우로의 전환은 단순한 커리어 변경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과정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서는 사람”
정려원은 작품을 고를 때 늘 도전과 변화, 그리고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샐러리맨 초한지》, 《자명고》, 《풍선껌》, 《마녀의 법정》, 《검사내전》,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졸업》까지.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특히 《마녀의 법정》에서는 여성아동범죄전담 검사로 등장하며 여성 서사 중심의 드라마 붐에 불을 지폈다.
그는 이 과정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몇 차례 큰 고비를 넘겼다고 고백했다. “연기를 하다보면 현실이 너무 멀어지고, 사람들과의 연결감도 끊어질 때가 있다”며 “혼자 감정에 갇히는 걸 경계하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마음챙김, 자기연민, 디톡스 등 심리적 건강 관리 루틴을 공개하며 팬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금의 정려원, 그리고 앞으로
정려원은 최근 OTT 드라마 《졸업》을 통해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다.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SNS를 통해 자신의 그림, 반려견과의 일상, 운동 루틴 등을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보다는 연기 중심의 삶을 선택한 그는, 작품이 없을 때도 마음 건강을 위한 루틴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는 예능에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출연 때마다 “에너지 자체가 맑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아마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회복하려는 삶의 자세 덕분일 것이다. 정려원은 여전히 ‘자기 안의 아이’를 돌보고 있고, 그것이 배우로서의 깊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엔 어떤 인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