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18켤레로 인생역전 “정품은 접착제 냄새가 달라요”

김성윤 기자 2024. 10. 26. 00: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되팔기의 달인
’스니커즈王' 로페즈

어머니는 스물한 살 된 아들에게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라”며 라스베이거스(LV)행 비행기표 한 장과 20달러 지폐를 줬다.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 재산을 슬롯머신으로 날렸다. 6개월을 노숙자로 살았다. 그는 스니커즈 리셀(resell·재판매)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한때의 노숙자는 연매출 2000만달러(약 280억원) 세계 최대 규모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 주인이 됐다. 영화에 나올 법한 인생을 살아 온 ‘스니커즈의 제왕’ 제이시 로페즈(Lopez·45)를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스니커콘 서울’ 행사장에서 만났다.

‘스니커콘 2024′에 참석하러 서울에 온 제이시 로페즈가 한정판 나이키 모델을 머리에 얹고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스니커스 400만 켤레를 되팔았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공항 슬롯머신에 날린 전 재산

-어머니가 편도 비행기표와 20달러 지폐를 주며 한 말씀은.

“가서 뭐라도 해서 살아갈 방편을 찾아봐라. 너도 이제 어른이잖니라고 했어요.”

-왜 하필 LV였나요.

“철없을 때 낳은 딸이 LV에 살고 있었어요. 자립도 하고 딸과도 친해지란 게 어머니 의도였죠. 그 딸이 벌써 대학교 4학년이 됐네요.”

-공항에서 전 재산을 날렸다고요?

“슬롯머신이 깔려 있더군요. 20달러를 100달러로 불려서 대마초를 사서 팔면 큰돈을 손에 쥐겠구나.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때는 가능할 것 같았죠.”

-노숙자로 6개월을 살았죠.

“공항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떻게든 시내로 가야겠다 싶었지만 버스 탈 돈도 없었어요. 8마일(약 13km)을 걸었어요. 6개월간 구걸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해결했고, 호텔 분수대에서 씻고, 공원에서 잤지요.”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나요.

“우리 집은 가난했어요. 다섯 명이 침실 하나뿐인 작은 아파트에 살았죠. 소파에서 형제들과 함께 잤고. 더 이상 어머니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스스로 해내고 싶었어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등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겨우 살았습니다.”

-어떻게 운동화로 돈 벌 생각을 했나요.

“목요일 저녁으로 기억해요. 신발가게 앞에 길게 줄이 서 있었어요. 영업 중이고 문이 열려 있는데도 줄 선 이유가 궁금했지요. ‘토요일 오전 출시되는 신상 스니커즈를 사려는 것’이라더군요. 스니커즈 한 켤레 사려고 직장에 연차를 내며 이틀 밤을 새운다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이 스니커즈를 되팔면 돈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니커즈 가게를 시작했나요.

“돈이 어딨어요(웃음). ‘대신 줄을 서 줄 테니 한 끼 사 먹을 정도만 달라’고 했죠. 40~50달러 받았나 봐요. 그러면서 스니커즈 리셀에 대해 차츰 알아갔죠.”

2013년 출시된 ‘나이키 바클리 포사이트 맥스 에어리어 72′. 제이시 로페즈는 이 모델 18켤레를 되팔아 매장을 낼 종잣돈을 마련했다. /SNS

◇17켤레로 오픈한 리셀 매장

로페즈는 스니커즈 리셀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바로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미국 통신업체 AT&T에 영업직으로 취직했다.

-스니커즈 리셀을 업으로 삼지 않은 이유는.

“몇 차례 짭짤하게 벌었지만 들쭉날쭉했어요. 생계를 유지하고 딸을 돌보려면 고정 봉급을 받는 안정적 직장이 필요했지요. 운 좋게 AT&T에 일자리를 얻었어요.”

-5년 만에 그만뒀네요.

“일이 적성에 맞았고, 평가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발작이 갑자기 와 병가를 내고 쉬었어요. 몸이 괜찮아져서 복직했는데, 이번에는 회사 사정으로 해고됐지요. 월세를 못 내 아파트에서 쫓겨났고, 할부금을 갚지 못해 자동차를 압류당했어요. 인생이 바닥까지 갔죠. 노숙할 때보다 더 우울했어요.”

-어떻게 생활했나요.

“현재의 아내(조니 바랑간)를 만나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감사하게도 처가에 머물게 해줬어요.”

-그리고 스니커즈 리셀을 다시 시작했군요.

“2013년 2월 ‘나이키 바클리 포사이트 맥스 에어리어 72(Nike Barkley Posite Max Area 72)’가 출시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되게 못생긴 스니커즈예요(웃음). 지금은 거들떠도 안 보지만, 당시에는 다들 신고 싶어하는 인기 모델이었어요. 아내와 둘이서 돈은 전부 끌어 모아 18켤레를 확보했어요. 켤레당 250달러에 구매해 17켤레를 450달러에 되팔아 3000달러 넘게 수익을 남겼죠. 가게를 여는 종잣돈이 됐어요.”

-남은 한 켤레는 어디 있나요.

“나중에 가게를 열고 점원을 뽑았는데, 주급 줄 돈이 없어서 스니커즈를 대신 줬어요(웃음).”

-사업을 시작한 건가요.

“아니요. 여전히 월급 받는 정규직을 찾고 있었어요. 100군데 넘게 원서를 내고 면접을 봤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스니커즈 리셀을 계속했죠. 어느 날 더 이상 되팔 재고가 없더라고요. 그때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어요.”

-어떤 아이디어였나요?

“제가 스니커즈를 판 손님들을 찾아갔어요. ‘필요 없는 스니커즈를 넘겨라. 되팔아주겠다. 얼마에 팔리든 수수료는 20달러만 받겠다(현재는 수수료 정책 변경)’고 했죠. 손님들은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라 684켤레를 모았고, 스니커즈 전람회에서 450켤레를 팔았어요. 전람회가 끝나고 ‘불르바드 몰(Boulevard Mall)’ 직원이 찾아왔지요. 입점을 제안하더군요. 임대료를 한두 달 정도 받지 않겠대요. LV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쇼핑몰인데, 손님이 오지 않아 오래 문을 닫은 외진 곳에 있는 좁은 매장이었어요.”

-드디어 오픈했군요.

“2014년 9월 17일 오픈하자마자 불르바드몰 전체에서 가장 손님 많고 매출 높은 가게가 됐어요. 연말까지 매출 100만달러를 올렸죠!”

제이시 로페즈는 "좋아하는 스니커즈를 수집하라, 돈을 좇지 말라"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스니커즈 ‘정품의 향기’

로페즈가 운영하는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 ‘어번 네세시티즈(Urban Necessities)’는 LV와 로스앤젤레스, 사우디아라비아 등 직영 매장 3곳을 두고 있다. 본점은 여러 번 확장 이전해 현재는 LV를 대표하는 호텔&카지노 ‘시저스 팰리스’에 있다. 면적 1만8000제곱피트(약 500평)가 넘는, 스니커즈 리셀 매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 매장 한가운데 156피트(약 48m) 길이의 ‘스니커 월(Sneaker Wall)’에는 고가·희귀 스니커즈 4000켤레가 전시돼 있다. 로페즈는 “창고에 6만 켤레가 더 있다”며 웃었다.

로페즈가 매장 세 곳과 온라인으로 벌어들이는 연매출은 2000만달러(약 280억원). 스니커즈를 직접 매입해 소비자에게 팔거나, 리셀을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떼거나, 스니커즈·스트리트컬처 관련 굿즈(상품) 판매 등으로 돈을 번다.

-스니커즈 매장에 아이스크림점, 태투(문신)점, 장난감(아트 토이) 가게, 바버숍(이발소)을 집어넣은 이유는?

“노숙자일 때부터 손님이 가게에 얼마나 머무는지 지켜봤어요. 30분 이상인 경우가 드물었어요. ‘어떻게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매장에서 스니커즈를 살 필요는 없지만, 긍정적 경험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손님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게 아이스크림, 태투, 장난감, 바버숍이었어요.”

-지금까지 거래한 가장 귀하고 비싼 스니커즈는 뭔가요.

“2022년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컬래버(협업)해 출시한 ‘루이비통×나이키 에어포스 1′이죠. 소더비 경매로 200켤레가 출시돼 제1번 제품이 35만2800달러(약 4억8600만원)에 낙찰됐어요. 나머지 199켤레는 대부분 10만달러(약 1억3800만원) 전후로. 그중 하나가 우리 매장에서 30만달러에 재판매됐죠.”

현재까지 가장 비싸게 거래된 스니커즈는 2019년 소더비에서 43만7000달러(약 6억원)에 낙찰된 ‘나이키 와플 레이싱 플랫 문 슈’다. 나이키가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육상 대표 선수를 위해 12켤레만 생산한 운동화다.

-운동화가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젊은 층이 ‘스니커테크(Sneaker Tech)’에 열광하는 이유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 없이 적은 돈으로 쉽게 투자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인가요.

“개인 차원의 스니커테크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사업으로서 스니커즈 리셀은 리스크가 큽니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어야 하고, 정품(正品) 확인·인증하려면 가품을 가려낼 수 있는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해요. 아무나 쉽게 뛰어들 비즈니스가 절대 아닙니다.”

-’정품의 향기’란 게 있다면서요.

“검수 마지막 단계에서 냄새를 맡아 봅니다. 신발 소재에 따라 달라지지만, 정품의 향기란 보통 접착제 냄새를 뜻해요. 정품은 접착제 냄새가 강한 반면, 가품은 약하거나 거의 나지 않아요. 정품은 대량으로 ‘찍어내기’ 바빠 접착제를 다량 사용하지만, 가품은 정품처럼 보이도록 조심조심 만들기 때문에 접착제를 덜 쓰지요. 정품과 가품은 박스부터 달라요. 색상 채도 차이가 크죠.”

-소장한 스니커즈 중 절대 되팔지 않을 모델이 있나요?

“‘푸마 디스코드’ 갈색 모델이요. 첫 매장의 벽을 페인트 칠할 때 신은 스니커즈예요. 인기도 없고 30달러(약 4만원) 정도로 비싸지도 않지만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가장 소중한 스니커즈입니다.”

-스니커즈 컬렉션을 시작하는 이에게 조언한다면.

“좋아하는 스니커즈를 모으세요. 돈을 좇지 마시고.”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