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가을, 강릉 앞바다 꽁치잡이 그물에 잠수함 한 척이 걸렸습니다. 그날부터 49일짜리 추격전이 시작됐어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사실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 기록을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96년 9월 18일, 잠수함이 그물에 걸렸다
1996년 9월 18일,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앞바다 꽁치잡이 그물에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걸려 좌초됐습니다. 무장공비 26명의 해상 복귀가 끊긴 순간, 49일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침투 목적 — 1996년 전국체전 김영삼 대통령 암살
1996년 10월 7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국체전 개막식, 그 자리에 참석하는 김영삼 대통령을 암살하는 게 침투 목적이었습니다. 작전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대규모 요인 암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49일간의 추격 — 일일 4만 2천, 연인원 150만 동원
9월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49일간, 육군 28개 부대·해군 1개 함대·공군 1개 전투비행단·예비군 수십만이 동원됐습니다. 일일 평균 전투병력 4만 2,000명, 연인원 약 150만이 강릉 일대 산악을 뒤졌습니다.

사망자 18명 — 군 12, 예비군 1, 경찰 1, 민간 4
49일 작전 동안 한국 측에서 군인 12명·예비군 1명·경찰 1명·민간인 4명, 총 18명이 사망했습니다. 평시 작전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였습니다.

마지막 2명, 11월 5일 인제 연화동에서 사살
침투 무장공비 26명 중 자결 11명·사살 13명·생포 1명·도주 1명으로 정리됩니다. 마지막까지 산악에서 버티던 정찰조 2명은 1996년 11월 5일 인제군 연화동에서 사살되며 작전이 종료됐습니다.
이 사건이 한국군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강릉 사건은 '잠수함을 통한 후방 침투'에 한국군이 얼마나 약한지를 가장 크게 노출시킨 사건입니다. 이후 한국은 대잠전력·해안 감시 자산·예비군 동원체계를 전면 재정비했고, 그 변화가 지금 우리 동해안 방어선의 토대가 됐습니다.
바다에서 시작된 49일 추격전은, 한국 안보의 한 시대를 바꿔놓고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