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의 리얼밸리 <11>] 나이 많은 한국의 젊은 창업자들

김태용 EO 대표 2024. 10. 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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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창업자 중 한 명인 피터 틸. /AFP연합
김태용 EO 대표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실리콘밸리에 와서 수백 명의 창업자를 만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다들 평균적으로 경력에 비해 어리고 젊다는 것이다. 필자는 1990년생 창업자로서 한국 스타트업 행사나 모임에 나가면 여전히 젊은 편에 속한다.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선 본인을 경력 16년 이상의 기업인으로 소개하는 사람을 꽤 많이 만났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첫 번째는 과거 페이팔 창업자이자 현재 세계 최고 투자자 중 한 명이며 인터넷 사상가인 ‘피터 틸’이다.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 이너서클의 핵심 중 핵심이다. 많은 창업자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하나가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제로투원’ 이라는 책이다. 다른 하나가 만 20세에 대학을 자퇴하고 창업하면 장학금을 주는 ‘피터 틸 펠로십’이다. 제로투원은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이 사실은 가능하고, 거대해 보이는 많은 것이 사실은 파괴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창업자의 야망을 키웠다. 피터 틸 펠로십은 특히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대학 교육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산업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사업과 인생,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 위해 사상을 세우고 장학금을 만들어 젊은이에게 따라오라고 하니 꿈이 많은 청년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대학에 붙고 스무 살이 되고 피터 틸 장학금을 받아야 창업하는게 아니라, 중고등학생 때 이미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꿈을 꿨던 이들이다. 한국의 대학생 창업자들이 졸업 후 경력을 소개할 때 ‘대학생 때 한 창업은 창업도 아니죠’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히 정반대다.

두 번째는 군대다. 피터 틸이 한국에서 같은 장학금을 운영했어도 잘 안됐을 이유다. 한국 남자는 수능과 군대 문제를 해결한 후 최소 스물셋부터 뭘 해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에도 고등학생 창업자가 몇몇있지만, 가장 큰 고민이 병역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투자 유치가 어려워 파괴적인 사업보다 현실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로 창업하게 된다.

미국에서 꽤 많은 피터 틸 장학생 출신 창업자를 만났다. 그중 제일 유명한 사람은 디자인 협업 툴 ‘피그마’ 창업자인 딜런 필드다. 1992년생으로 이제 갓 서른 초반인 그는 브라운대를 중퇴하고 피터 틸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2012년 피그마를 창업했다. 당시 많은 디자이너는 개발자와 프로덕트 매니저 등 여러 사람이 한 화면에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냉대했다. 하지만 더 많은 이해 관계자가 사용해야 소프트웨어를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업을 이어 나갔다. 창업 후 6~8년간 시장의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피그마의 철학에 동의하는 스타트업 중 소위 말해 제품으로 대박 난 곳들이 나오면서 너도나도 피그마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현재 피그마의 기업 가치는 약 20조원에 달한다.

인공지능(AI) 영어 학습 앱 ‘스픽’ 서비스 창업자인 코너 즈윅과 앤드루 수도 딜런과 함께 피터 틸 펠로십 동기였다. “피터 틸 펠로십에 가면 어떤 친구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냐”라고 묻자 10년 안에 화성으로 이주할 방법, 기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 등 온갖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술도 없이 밤새 떠든다고 했다. 이들도 여러 가지 아이템을 시도하다가 모든 인류가 같이 대화하고 같은 수준의 질적인 정보를 접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션을 세워 스픽을 창업했다. 스픽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육 스타트업 중 하나다.

개인과 사회의 관점에서 젊음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시간이 많으니, 장기간에 걸쳐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그걸 실행하는 과정에서 조급하지 않고 낙관주의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 예비 창업자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직장에 들어가서 경험을 쌓고 창업할 것인가, 아니면 젊었을 때 도전할 것인가’다. 이에 관해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는데,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창업할 경우 가장 성공 확률이 높지만, 전 세계 기업 가치 1000조원 단위의 회사는 모두 20대 창업자가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많은 젊은이는 사회에도 늦게 나오는데 남과 비교하며 쫓기듯 살아간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의 관점에서 젊음이라는 자산을 잘 다루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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