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서 작곡가 주영훈이 강남 한복판에서 유복하게 지내던 유년 시절과 미국 이민, 그리고 현지에서 이어진 혹독한 노동의 기록을 담담히 꺼내놓았다. 청담동에서 태어나 청담초등학교, 언북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강남 토박이인 주영훈은 이민 전 가족이 거주하던 청담동 150평 규모 집을 떠올렸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던 시점,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올림픽 이후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서둘렀다. 당시 아버지는 해당 주택을 1억 5000만 원에 급매로 처분했는데, 이후 주변 부지는 건물이 들어서고 자산 가치가 폭등했으나 가족은 이미 미국 버지니아주로 떠난 뒤였다. 살림을 맡았던 어머니는 이때의 처분을 두고 "그걸 왜 팔았냐. 몇 개월만 참고 있었으면"이라며 평생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결벽증 심했던 어머니, 10년 넘게 변기를 뚫었다

미국 이민 이후의 삶은 강남에서의 기억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선택한 일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 고등학교 청소부였다. 평소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맨손으로 누르지 못하고 옷소매나 팔꿈치를 이용할 정도로 위생에 민감했고, 외출 후 돌아오면 거실조차 더럽다고 느껴 방문을 닫고 생활할 만큼 결벽 성향이 강했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현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변기에 넣은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막힌 오수를 뚫는 일을 매일 8~9시간씩 감당해야 했는데, 심지어 마약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주영훈은 전했다.
하루 2시간 목욕, 쉬는 날 없던 10년

하루 노동을 마치고 귀가한 어머니는 오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 두 시간 가까이 목욕을 하며 몸을 씻어냈다. 주말에도 휴식은 없었다. 토요일에는 남편의 교회를 찾는 성도들을 위해 하루 종일 장을 보고 국거리를 손수 준비하는 고된 일정이 10년 넘게 반복됐다.
부친상과 어머니의 낙상, 그리고 회복
시간이 흘러 지난해 3월 부친상을 당한 이후,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었고 같은 해 가을에는 낙상 사고까지 당해 요양원 입원을 권유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영훈은 가족들과 교인들의 간호 속에서 어머니의 고관절이 깨끗이 회복되었으며, 기억력과 기력 역시 되찾았다고 전했다. 최근 어머니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서서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지난 세월의 고통과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