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여 오늘이 된 전통

뮷즈는 기념품을 상품으로, 전통을 힙으로 바꿔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MU:DS)

기념품에서 갖고 싶은 상품으로

필자와 같이 미술관 기념품에 고정관념을 가진 구시대 사람에게 지금의 현상은 낯설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 디자인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 미술관 기념품은 해외 출장 다녀온 기자들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선물이었다. 그때는 ‘굿즈’라는 용어 대신 ‘미술관 기념품’ 또는 ‘수브니어(Souvenir)’라고 불렀다. 미술관 기념품은 해외 경험을 기념하는 물건 정도였다. 일상생활에서 쓰기보다는 책꽂이 여유 공간에 올려놓는 장식품으로 기능했다. 명함꽂이나 컵 받침처럼 실용적인 사물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기능은 명분일 뿐 진짜 기능은 장식품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사람들은 미술관에 가지도 않고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기념품을 주문한다. 이는 기념품이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마치 쿠팡에서 갖고 싶은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현상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뮷즈, 박물관 상품의 브랜드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미술관 기념품을 ‘뮷즈(MU:DS)’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했다. 뮤지엄(Museum)과 굿즈(Goods)를 결합한 합성어로, 2022년 1월 박물관 상품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고자 론칭했다.

한국에서 굿즈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영어에서 굿즈는 일반 상품을 뜻한다. ‘Consumer Goods’는 소비재이고, ‘Luxury Goods’는 사치품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한국에서 굿즈는 팬덤 문화와 연계되어 있다. 아이돌 공연을 앞두고는 한정 수량으로 티셔츠나 머그잔, 에코백을 제작해 판매한다.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상품이다. 한국에서 굿즈는 판매가 확실히 보장된다.

한국인에게 굿즈는 일반 상품이 아니라 기념품이다. 예술계에서 말하는 ‘에디션(edition)’ 개념에 가깝다. 에디션은 언제든 복제해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라 한정판, 즉 소장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이런 의미로 통용되면서 ‘굿즈’는 그 자체로 특별한 상품이 되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아주 현명하게도, 한국인에게 높은 가치를 지니는 ‘굿즈’라는 단어에 뮤지엄의 첫 글자를 결합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MU:DS)

브랜드 파워가 아닌 디자인의 힘

이쯤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한 가지 짚어본다. 뮷즈의 인기는 단순히 국립중앙박물관의 브랜드 파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바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다.

뉴욕현대미술관도 파리 퐁피두센터도 런던 테이트모던도 그들이 선보이는 기념품을 특별한 브랜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수브니어 정도로 부를 뿐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기념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각 미술관의 브랜드 파워에서 비롯한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사면 그곳의 기념품이고, 퐁피두센터에서 사면 또 그곳의 기념품이기 때문에 가치를 더한다. 관광객들은 그 나라 문화유산을 표상하는 미술관에 방문한 것을 기념해 상품을 산다.

뮷즈의 인기는 이와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념품이라서 잘 팔리는 게 아니다. 상품 사용 후기를 보더라도 뮷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폭발적 인기로 품절된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구매 후기를 보면, 사용하는 동안 즐거웠다는 평이 다수다. 장식품을 넘어 실제로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잔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이 잔을 구매한 이유는 과거처럼 박물관 방문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좋은 가구를 주문하듯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온라인 매장에 접속해 주문한다. 실제로 온라인 뮤지엄 매장의 매출은 지난해 약 52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앞서 말했듯, 뮷즈의 인기는 디자인에 기인한다. 그런 만큼 뮷즈의 인기 요인을 파악하려면 디자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시대에 발맞춘 문화재

뮷즈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문화재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요즘 세대가 좋아하도록 변형했다는 점이다. 대중이 모르는 문화재 속 숨은 보물을 찾아내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대표적인 예가 폭발적 인기로 품절된 취객선비 술잔 세트다. 잔 표면에는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에서 따온 술 취한 선비를 새겼다. 원작은 가로 2m에 가까운 대형 그림이고, 엄청나게 많은 인물로 가득하다. 그들 중 유독 술에 취한 세 사람을 가려 뽑아 윤곽선을 보다 선명하게 그려 캐릭터화했다. 잔에 차가운 술이 차면 선비 얼굴이 붉게 변하고, 얼굴 주위에 꽃이 피어 술기운을 전한다.

이 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뛰어난 디자인 기획력이 돋보인다. 대개 미술관 기념품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을 선정하고, 이를 변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노트 같은 물건 표면에 복제한다. 무난하고 안전한 기획이지만 게으른 방식이기도 하다.

술잔에 복제된 그림 속 취객은 대중이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하지 않다. 원본 그림에서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찾아야 보이는 아주 작은 인물들이다. 이를 선정하고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선으로 새롭게 묘사한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전통 스타일로 해석해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이라는 정체성은 놓치지 않았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MU:DS)

‘기념’보단 ‘실용’을 택하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재 제일주의가 아닌, 문화재 내용을 실용적 대상에 적용하려는 노력이다. 미술관 기념품의 가장 무난한 접근은 머그잔 표면에 모나리자를 전사하는 것이다. 이런 기념품에서 머그잔은 무난하고 평범한 것이 선택될 뿐이다. 모나리자라는 작품에 걸맞게 물건 형태를 따로 디자인하지 않는다. 모나리자가 머그잔 표면에 인쇄되었다는 것만 중요한 것이다.

이런 디자인에서는 명확한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모나리자가 주인이고, 머그잔은 예속될 뿐이다. 대중은 머그잔이 매력적이지 않아도 모나리자의 가치 때문에 구입한다. 언뜻 머그잔과 모나리자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없다.

뮷즈는 다르다. 문화재 모티브를 어떤 물건에 적용할 때, 그 물건의 용도와 문화재 내용을 일치시킨다. 문화재 내용이 물건의 형태에 맞게 적절히 변형된다는 말이다. ‘책가도 미니 노트’는 민화 ‘책가도’를 노트 표지에 그려 넣은 상품이다. 책가도를 노트 판형에 정확하게 일치시켰다는 점이 포인트다. 실제로 존재하는 책가도를 활용했다면 그렇게 정확히 일치하는 민화를 찾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니 노트 판형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그 판형에 맞게 책가도 스타일로 새롭게 그림을 그렸다.

또는 문화재의 내용에 맞게 그것이 적용되는 물건의 형태를 변형하기도 한다. ‘버선 코스터’는 일반적인 원형이나 정사각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버선 모양이다. 원형이나 사각 코스터 안에 버선 모양을 새겼다면 이처럼 귀엽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 연필꽂이’는 위에서 보면 ‘통’이라는 글자로 보인다. 자음 ‘ㅌ’과 ‘ㅇ’, 그 사이의 모음 ‘ㅗ’가 이루는 선들로 연필을 안정적으로 꽂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문화적 모티브인 한글과 연필꽂이가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특히 탁월한 상품은 ‘갓잔’이다. 잔과 받침으로 구성된 이 상품은 받침 위에 잔을 거꾸로 올려놓으면 딱 갓을 쓴 것 같은 모습이 된다. 뒤집어진 잔은 갓모자가 되고, 받침은 갓양태, 즉 갓의 챙이 된다. 사용하지 않을 때 전혀 다른 모습, 갓 미니어처로 변신한다. 이를 위해 받침과 잔은 검은색 갓처럼 어두운색으로 마감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MU:DS)

새 시대에 눈높이를 맞추다

마지막으로 뮷즈 인기의 세 번째 비결은 문화재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세대의 시각에 맞게 자세를 낮추고 적응하려는 태도다. 실용적인 물건 표면에 문화유산 이미지를 단순히 프린트하는 게으른 상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용과 형식, 즉 문화유산 이미지와 그것이 적용된 물건은 온전히 그 자체의 상품으로 통합됐다. 뮷즈 상품은 대부분 특정 문화재를 변형하거나 한국적 스타일로 아예 새롭게 디자인했다.

‘백자 청화 호랑이 도자기’, ‘반가사유상 토우’, ‘까치 호랑이 배지’ 등의 상품은 오리지널 문화재를 완전히 재해석해 캐릭터화했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무해하고, 하찮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바로 이런 점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매력 포인트다.

품절된 인기 상품 ‘데니 태극기 키링’은 광복 80주년 기념 상품으로 기획됐다. 1890년 무렵 만들어져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기록된 ‘데니 태극기’를 수놓은 패브릭 키링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국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는데도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귀엽다는 반응이다. 상품 자체의 친근함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과거 ‘박물관 문화 상품’ 하면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문화재에 대한 현대적이고 재치 있는 재해석이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대부분 상품이 실용적인 물건이며, 대량생산을 전제로 해 일반 상품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런 노력으로 한국의 미술관 기념품 시장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적중했다. 뮷즈를 ‘힙’하다고 느끼는 1020세대는 자신이 구매한 뮷즈를 SNS에 올리며 자연스럽게 홍보까지 이뤄지는 중이다.

대담하면서도 세심한 디자인의 결과는 놀랍다. 2021년 약 66억원이던 매출이 2022년 론칭 후 117억원으로 급상승했다. 2023년에는 149억원을, 지난해 드디어 212억원이라는 폭발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전년 대비 무려 42% 성장이며, 5년 전과 견주면 약 5배 성장한 수치다. 최근 대중의 박물관 관람 횟수가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기획력과 디자인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뮷즈, 전통문화의 전환점이 되다

이런 성공에는 또 다른 요인이 하나 있다. 필자 또래의 구세대는 과거 한국 문화에 자긍심을 갖기 힘들었다. 은연중에 선진국 문화를 선망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는 늘 극복 대상이었고, 서둘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이 강박처럼 자리 잡았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깊어 보인다. 한복에 대한 관심도 우리 세대보다 더한 듯하다. 그들에겐 전통문화가 새로운 문화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대중문화뿐 아니라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갖는다는 현실에,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도 새삼 자긍심을 갖게 된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이 불러일으킨 시대의 흐름에 응원을 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10월호
글 김신(디자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정지환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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