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 MVP 야마모토, 3승으로 증명한 ‘돈값’의 끝

야구가 종종 ‘확률의 게임’이라 불리지만, 가끔은 한 사람이 그 확률표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밤이 있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2025 월드시리즈 7차전이 딱 그랬다. 다저스가 5-4로 이긴 경기의 마지막 장면은 윌 스미스의 11회 초 결승 솔로포, 그리고 11회 말 1사 1·3루에서 병살로 끝나는 차가운 수비였지만, 그 결말을 가능하게 만든 줄기는 내내 한 명에게로 되돌아간다. 야마모토 요시노부. 전날 6차전에서 96구를 던진 선발이, 하루도 쉬지 않고 7차전에 불펜으로 올라와 2⅔이닝 무실점으로 시리즈에 사인을 남겼다. 이 두 장면이 겹치며 비현실이 현실이 됐다. 그리고 MVP 트로피는 당연히 그의 품으로 향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야마모토가 남긴 숫자는 깔끔하고도 강렬하다. 월드시리즈 3경기 3승, 17⅔이닝 2실점, 평균자책점 1.02. 2차전 완투승으로 균형을 맞추고, 6차전 선발승으로 7차전을 강제했으며, 7차전에서는 9회 1사 위기에 마운드에 올라 그대로 경기를 잠갔다. 한 시리즈에서 3승을 수확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특히 6·7차전을 모두 따낸 것도 역사적 족보 위에 이름을 얹는 일이다. 이런 겹겹의 과감함과 완결성이 MVP라는 간판을 설득한다. 더불어 그는 일본 출신 선수로 오랜만에 월드시리즈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비싸다’는 계약서가 종잇장에 그치지 않으려면, 결국 가을에 답해야 한다는 명제를 정면으로 증명한 셈이다.

7차전 자체도 야구가 줄 수 있는 드라마의 밀도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토론토는 3회 보 비셋의 스리런으로 먼저 달아났고, 다저스는 8회 맥스 먼시, 9회 미겔 로하스의 솔로포로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9회 말, 토론토는 1사 만루를 날렸고 승부는 7차전으로서는 오랜만에 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1회, 윌 스미스가 셰인 비버의 슬라이더를 당겨 담장을 넘겼다. 경기는 그렇게 기울었다. 장면을 나열하면 단순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무키 베츠의 정교한 수비 판단, 교과서처럼 깔린 번트, 고의4구의 의중 같은 디테일이 빼곡했다. 야마모토가 9회 만루 위기를 끊는 순간마다 다저스 야수들의 발놀림은 어김없이 뒤를 받쳤고, 이 연쇄 반응이 ‘원정에서만 2연승’이라는 냉정한 결과로 이어졌다. 다저스는 25년 만의 백투백 우승을 이뤘다. 우승은 늘 한 팀의 업적이지만, 이런 밤엔 특정한 인물 한 명의 등판 간격과 공 배합, 그리고 멘탈리티가 균형추를 통째로 가져가곤 한다.

야마모토의 밤이 특별했던 이유는 ‘투수 운용의 금과옥조’를 과감히 어긴 결단과, 그 결단을 정당화할 만큼 선수가 준비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야구는 ‘휴식’을 철칙으로 삼는다. 전날 선발 96구 → 다음날 구원 등판은 매뉴얼에 없다. 그런데 로버츠 감독이 “다이조부”라는 선수의 눈빛을 믿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으로 들어온 건 단순한 패기나 무모함이 아니었다. 9회 1사에 올라와 몸 맞는 공으로 만루를 채우고도 흔들리지 않는 루틴, 빠른 템포로 스트라이크 먼저 넣는 단호함, 결정구를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체인지업·스플리터·포심의 비율을 바꾸는 유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실투가 나와도 다음 공으로 덮어버리는 회복력이 있었다. 최고의 무대에서 필요한 덕목을 짧은 이닝에 농축해 보여준 셈이다. 그 농축이 없었다면, 11회 스미스의 한 방도, 11회 말 병살도,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그의 MVP는 ‘돈값’ 논쟁에도 마침표를 찍는다. 초대형 장기계약은 항상 뒷말을 부른다. “정규시즌 누적만 커버하면 된다”는 식의 계산이 끼어들고, 막상 가을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우르르 터진다. 그런데 야마모토는 가을에 성적표를 가장 굵은 글씨로 적었다. 2차전 완투, 6차전 선발승, 7차전 구원승이라는 삼단 구성은, 팀이 필요로 하는 타이밍마다 역할을 바꿔 맡았다는 뜻이다. ‘에이스’라는 단어가 요즘은 과하게 쓰이지만, 이 정도면 그 단어의 원형에 가깝다. 평범한 팀이라면 ‘잘 던졌다’라고 쓰고 지나갔을 일을, 다저스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우승을 책임졌다’로 바꿔 적게 만든 것. 그래서 로버츠의 용기는 찬사가 되고, 투수 본인의 내구력과 기술은 신뢰가 된다. MVP 트로피는 그 신뢰의 물리적 증거일 뿐이다.

물론 상대였던 토론토의 투혼도 기록에 남을 만했다. 41세 맥스 셔저의 노련함, 비셋의 스리런, 게레로 주니어의 수차례 호수비는 홈 관중의 호흡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9회 말 1사 만루를 놓친 장면은 아쉽지만, 야구는 결국 ‘마지막 한 공’까지 집중한 쪽의 것이다. 다저스는 그 마지막 공에 더 가깝게 있었다. 김혜성의 연장 11회 2루 대수비 투입처럼 작은 교체조차 링 위에서 의미를 얻었다. 사소한 움직임까지 승리 서사에 줄줄이 매달리는 게 7차전의 무게다. 그 무게를 한 겹 더 눌러 준 게 야마모토의 연투였다.

이번 우승은 다저스라는 조직의 현재를, 그리고 앞으로의 문법을 바꾼다. ‘돈으로 강팀을 만든다’는 뻔한 수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돈으로 시간을 샀고, 그 시간에 선수는 스스로를 증명했다’는 문장으로 확장된다. 야마모토가 보여준 건 단순한 강속구나 날카로운 브레이킹만이 아니다. 루틴, 담대함, 회복력, 멘탈리티. 계약서는 재무의 언어로 적히지만, 그 가치를 지탱하는 건 결국 야구의 언어들이다. 가을의 산소가 모자랄 때 누가 숨을 더 길게 들이마시고 뱉는가. 그 질문에 가장 또렷하게 대답한 선수가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2025년 가을, 로저스센터의 마운드에서 우리는 ‘에이스’라는 말의 사전을 다시 썼다. 전날 선발, 다음날 구원. 만루 위기, 연장 사수. 그리고 3승과 MVP. 어떤 숫자도 이 장면들의 밀도를 완전히 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역사는 메모를 남긴다. “다저스, 25년 만의 백투백.” “스미스, 11회 결승포.” 그리고 그 사이에 굵은 밑줄 하나. “야마모토, 월드시리즈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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