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저마다 다른 풍광 산수화 같은 섬에서 쉼표 여행

통영 욕지도는 한때 버려진 섬이었다. 고려말부터 왜구 약탈이 심각했는데, 그 대책으로 조선 시대에는 섬을 싹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시행한다. 아예 남해안 섬 주민들을 모두 육지로 이주시킨 거다. 이후 욕지도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이로부터 400년도 더 지난 1800년대 후반이다. 당시 관리의 횡포와 흉년, 역병을 피해 일부 사람들이 섬으로 숨어들었는데, 이들이 욕지도의 새로운 개척자들이었다. 이 개척자들이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때는 숲이 울창하고 가시덤불과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뛰어다녀서 섬 이름을 '녹도(鹿島)'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풍부한 물과 풍성한 자연환경을 지닌 욕지도. /이서후 기자 

섬 자체가 살아 있는 관광 자원 = 욕지도는 풍성한 섬이다. 섬치고는 특이하게 물이 풍부한데, 섬 안에 저수지가 있을 정도다. 욕지저수지는 저수량 18만 1000t으로 욕지도는 물론 주변 연화도·상노대도·하노대도·우도 등 욕지면 5개 섬 25개 마을 2000여 명 주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한다. 땅은 대부분 비탈이라 벼농사는 못 지어도 밭농사는 풍성하게 짓는다. 대표적인 작물이 고구마다. 일명 타박이 고구마로 불리는 욕지 고구마는 일반 고구마보다 비싸게 팔린다. 물이 잘 빠지는 경사진 비탈의 수백 년 묵은 황토,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품질 좋은 고구마를 키워낸다. 이런 고구마는 욕지 사람들의 가을과 겨울의 주식이었다. 요즘에는 욕지도 고구마를 활용한 다양한 식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욕지 여객선 선착장 근처 한 빵집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욕지 고구마를 넣은 고구마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요즘에는 고구마 라떼, 고구마 도넛을 파는 가게들도 인기다. 지금은 유명해진 욕지할매바리스타를 포함해 곳곳에 들어선 예쁜 카페에서 고구마 라떼를 먹을 수 있다. 고구마 도넛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언덕, 출렁다리 가는 길에 있는데, 만약 휴일에 간다면 줄을 서야 맛볼 수 있을 정도 인기가 있다. 욕지 고구마로 만든 막걸리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다.

욕지도 고구마로 만든 다양한 빵을 파는 가게. /이서후 기자 
욕지 고구마 라떼로 유명한 욕지도할매바리스타. /이서후 기자 

욕지도 하면 또 생각나는 게 고등어다. 욕지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한 섬이다. 그래서 신선한 고등어회를 즐길 수 있는데, 이것도 욕지도 별미다. 욕지도 근처 바다 위에는 동그란 모양의 양식장이 여럿 보이는데 이런 곳들이 고등어나 참다랑어 양식장이다. 선착장 근처에 고등회를 하는 식당에 꽤 많다. 요즘에는 고등어 김밥으로 유명한 식당도 있다. 원래 욕지도 주변은 바다 위에서 대규모 시장(파시)이 열릴 정도로 흥성하던 고등어 어장이었다. 1910년 우편소, 소학교 등이 건립되고 목욕탕, 이발소, 상점, 술집 등 파시촌이 형성됐던 근대어촌의 발상지며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어업 이민지 중 하나였다. 그 중심이 됐던 게 욕지면 동항리 욕지할매바리스타가 자리한 좌부랑개(자부) 마을이다. 현재 옛 자취를 살린 근대역사문화 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사실 욕지도는 선착장 근처 마을에서 빈둥거리며 골목을 돌아다녀도 재밌다. 퇴색해서 멋진 담벼락, 아담하고 낮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은 마치 옛날 영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요즘에는 마을 골목 깊숙한 곳까지 갤러리도 생기고, 카페도 생겼다. 여객선터미널 근처 바닷가에는 화가 이중섭이 욕지도에 잠시 머물며 풍경을 그린 장소에 동상과 함께 전망대도 조성했다.

근대어촌 발상지 욕지도 자부마을에 조성된 근대역사문화 거리. /이서후 기자 
욕지도 곳곳에서 만나는 고등어 조형물. /이서후 기자 

차를 가지고 갔다면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섬 일주도로가 아주 잘 돼 있는데 이걸 돌아봐야 욕지도를 제대로 본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다 보면 드문드문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방향 별로 다른 바다 풍경을 선사한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5월 역대 도지사 중 처음으로 욕지도 섬마을을 찾아 좌부랑개 골목 등 관광자원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8월 욕지도는 행정안전부 주관 2024년 '섬 발전 특성화 사업'에 선정됐다. 그리고 10월 25일 창원에서 열린 2023년 한국 섬 포럼에서 경남도는 '경남 섬·해양 관광 거점 개발 전략'을 발표한다. 구체적으로 휴식과 체류형 관광을 접목한 콘텐츠 개발 전략을 통해 노인 창업 지원, 양식어종 다변화, 스마트양식 도입 등 지역민의 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사업과 원격진료, 쾌적한 업무공간 조성, 여객선 노선 다변화 등 젊은 층이 일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육지에서 멀다는 게 욕지도의 매력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보는 한려수도 풍경이 멋진데, 미륵산이 높은 곳에서 두루 펼쳐진 섬을 바라보기 좋다면 욕지도 가는 배를 타는 일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통영 섬들의 향연을 즐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통영의 숨은 매력을 즐기는 방법 = 여기 또 다른 방법으로 통영의 매력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노을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산양읍 척포 해안도로에 나타난다. 통영 다도해 사이로 해가 지며 하늘도 바다도 붉게 일렁인다. 노을을 실컷 바라보고, 사진도 찍은 후 근처 달아공원으로 향한다. 섬 뒤로 사라졌다 싶었던 저녁 해가 이곳에서는 아직 남아있다. 이번에는 녹음과 노을이 어우러져 또 다른 노을 풍경이 펼쳐진다. 통영 미래사 편백 숲에서 시작한 '통영 선셋 투어'는 두 시간 정도 되는 짧은 여정이지만, 참여자들이 저마다 어떤 평안과 위로를 얻어 간다. 이 여정의 핵심은 적당한 장소와 정확한 타이밍이다. 이는 통영 지역 여행사 '사월의 모비딕' 김기림(36) 대표의 경험에서 나온 여행 상품이다.

통영 지역 여행사 '사월의 모비딕' 김기림 대표(왼쪽)가 통영 바다 노을을 배경으로 여행객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 /이서후 기자 

경기도 일산 출신인 그는 10년 전 우연히 통영을 찾았다. 1~2년만 쉬다 가자고 한 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고 있다. 사업을 하던 그가 통영을 찾은 건 오롯이 스스로 쉬기 위해서였다. 통영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됐고, 그가 위로를 받은 풍경들이 그대로 여행 상품이 됐다.

"내가 힘들었을 때 힘이 됐던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저처럼 힐링이 필요하신 분들한테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이런 투어를 만들었어요. 내게 위로가 됐던 것들로 사람들한테 위로를 해줄 수 있다면 이 비즈니스는 가치가 있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월의 모비딕은 통영과 거제 바다를 중심으로 소규모(프라이빗) 단체 관광 상품을 운용한다. 재방문자가 많은 게 신기할 정도다. 지금까지 800여 명이 같은 상품을 또 신청해서 다녀갔다. 사람들에게 풍경 이상의 것을 준다는 뜻이겠다.

"똑같은 투어를 10번 넘게 한 분도 있고, 심지어 22번 오신 분도 있어요. 자기 혼자 왔다가 친구랑 오고, 엄마랑 오고, 애인이랑, 남편이랑 오세요.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분 중에는 그냥 여행만 하러 오신 게 아니라 자기 꿈을 찾고 계신 분이 많으시거든요."

'통영 지역 여행사 '사월의 모비딕' 소규모 단체 관광 상품으로 통영 바다를 즐기는 이들. /사월의 모비딕
통영 지역 여행사 '사월의 모비딕' 소규모 단체 관광 상품으로 통영 바다를 즐기는 이들. /사월의 모비딕

그가 통영에서 그만의 쉼을 발견했듯, 사람들은 그가 펼쳐준 풍경 속에서 쉼을 이어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발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궁극적인 목표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이런 걸 보여주자는 거였어요. 지금 아내도 사실 이 여행사 하면서 만났어요. 이제 아이들도 여기서 태어나서 이런 순간들을 같이 나누니까 이런 통영을 더 멋있게 더 아름답게 남기고 싶어요. 아이들이 아빠가 만들었던 여행들이 좋았다, 통영에 살아서 좋았다는 마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계속 활동하고 있어요."

솔직히 여행사만으로는 생계가 안 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정부나 자치단체와 함께 여행 관련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삶의 위로와 영감을 줄 수 있는 한 지금 하는 여행사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이서후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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