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성악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인물로 꼽히는 프리마돈나 조수미의 화려한 예술가적 삶 뒤에는, 그의 인생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인류의 선물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동양인 최초로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을 정복한 그였지만, 대학 시절에는 평범하고도 치열한 사랑의 열병을 앓았습니다.
수석 입학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서울대학교 음대 재학 시절, 그는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첫사랑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찬란한 예술적 성공의 도화선이 된 동시에, 감당하기 힘든 이별의 상처를 남기며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조수미는 서울대 음대 재학 당시 같은 대학교 경영학과의 동갑내기 학생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해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청춘들이 즐겨 찾던 다방과 영화관, 디스코클럽 등을 오가며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당시 엄격하게 시행되던 졸업정원제 규칙에 따라, 학업에 소홀했던 조수미는 결국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떠나게 되자 양가 부모님과 교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두 사람은 결국 타의에 의해 강제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조수미는 슬픔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음악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더욱 큰 충격은 첫사랑의 새로운 연인이 자신의 가장 친한 단짝 친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이국땅에서 홀로 버티던 젊은 유학생에게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깊은 배신감과 슬픔에 잠겼던 조수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 대신, 반드시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공해 당당히 돌아가겠다는 무서운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이 결연한 의지는 곧바로 폭발적인 학업 성취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온종일 어학 사전과 녹음기를 붙들고 살았으며, 악보의 모든 음표를 완벽히 외울 때까지 연습을 거듭하는 혹독한 자기 절제를 보여주었습니다.

지독한 노력 끝에 세계 오페라 무대의 주역으로 우뚝 선 조수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무대 초청을 받으며 마침내 고국으로 금의환향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속에 묻어둔 첫사랑의 기억은 쉽게 마모되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여전한 감정의 동요를 느낀 그는 결국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야만 했습니다.
훗날 그의 어머니는 딸의 음악적 재능이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반대했었던 속내를 미안함과 함께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비록 청춘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랜 세월 속에 소식이 끊겼지만, 그때 겪은 절절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의 정서는 조수미라는 예술가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고 깊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조수미의 애틋한 첫사랑 경험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세계 무대를 울리는 독보적인 예술적 감성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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