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지방에 세계서 가장 높은 다리 떡하니… 중국은 왜 '교량 기록'에 집착하나

이혜미 2026. 2. 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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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해외로 '다리 패권' 뻗치는 중국
건물 200층 625m 높이 화장협곡대교
스카이워크·번지점프·카페 등 놀거리 가득
한 국가 '종합 기술 역량' 보여주는 교량 건설
'묻지마 토목공사'에 안팎으로 빚더미는 문제
협곡 수면부터 상판까지 수직 높이만 625m. 지난해 9월 28일 개통한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성의 화장협곡대교는 험준한 협곡 지형에 낀 운무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안순(구이저우성)=이혜미 특파원

"어렸을 때 제 고향 구이저우는 중국 안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세계 최고(最高)의 현수교'가 지어진 광경을 보니 조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일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성의 화장협곡대교 앞에서 만난 탄징이(38)의 말이다. 광저우시에서 온 탄의 고향은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으로 꼽히는 구이저우성. 6세에 고향을 떠난 이후 거의 30년 만에 다시 찾은 그는 중국의 기술력으로 지은 세계 최고 높이의 교량 앞에서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구이저우성이 고향인 탄징이(38)가 3일 중국 구이저우성 화장협곡대교 아래에서 아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안순(구이저우성)=이혜미 특파원

625m. 협곡의 수면에서부터 화장협곡대교 상판까지의 수직 높이다. 일반적인 건물로 따지면 200층 높이에 달하고, 에펠탑(324m) 2개를 이어붙인 것과 맞먹는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잠실 롯데월드타워(555m)보다 높다. 지난해 9월 28일 이 대교가 개통하기 직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는 타이틀도 중국 '베이판장 대교(565m)'의 몫이었는데, 이 역시 화장협곡대교로부터 불과 200㎞ 떨어진 거리의 구이저우성 내에 있다.

이날 직접 본 화장협곡대교의 위용은 대단했다. 다리는 안순시 관링현과 첸시난현 전펑현을 잇는데, 두 지역 사이에는 '지구의 균열'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세가 험한 화장협곡이 놓여있다. 협곡 사이를 흐르는 강의 해발 고도가 약 490m인 것을 고려하면 어림잡아 해발 1,115m에 놓인 다리인 셈이다. 보슬비가 내린 탓에 교량은 운무 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전펑현 쪽 교량 아래에서 반대쪽을 한참 동안 바라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지형이 복잡해 대교 개통 전에는 산세를 굽이굽이 돌아 2시간을 운전해야 했지만, 이제는 고속도로 평균 요금만 내면 단 2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화장협곡대교는 입장료 99위안을 내면 차가 다니는 대교 상판 아래 설치된 스카이워크 등 놀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안순(구이저우성)=이혜미 특파원

입장료 99위안(약 2만1,000원)을 내면, 차가 다니는 대교 상판 아래에 설치된 보행자들을 위한 스카이워크를 걸을 수 있다. 스카이워크에 올라서니 협곡 사이에서 몰아치는 강풍이 세 이따금 몸이 휘청일 정도로 다리 전체에 진동이 일었다. 아래로 내려다본 절벽은 높고 가팔라서, 강 아래까지 햇빛이 직접 비치지 않아 그늘이 질 정도였다. 이렇게 험준한 지형에 무려 2만1,000톤에 달하는 구조물을 얹은 것이다.

이날 교량 현장에서 만난 프로젝트 담당자인 왕쑹위 구이저우교통투자그룹 부경리는 "시공 과정에서 극복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형으로 인한 바람의 변화였다"며 "산에 풍속과 풍향을 관리하는 레이더를 설치해 교량 전 구간의 바람 흐름을 4계절, 24시간 내내 포착·분석해 시공 안정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화장협곡에는 순간 풍속이 초속 41.5~46.1m(나무가 뽑히고 구조물이 훼손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 분다.

구이저우성은 대교를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닌 '랜드마크'로 활용해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교량-관광 융합 중점 프로젝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는 타이틀을 십분 활용해 전망대·카페·레저 시설을 함께 설치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1시간가량 다리 아래 스카이워크를 걷는 동안 놀고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공중 다리나 번지점프 시설도 눈에 띄었다. 다리 곳곳에는 보행객들이 협곡을 수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 바닥이 설치돼 있어 많은 관광객이 인증샷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카페나 기념품 가게도 다리 한가운데에서 영업 중이다. 다만 지난해 10월에는 몸에 줄을 매지 않고 다리 밑에 설치된 거대한 그물망에 곧장 뛰어내리는 '줄 없는 번지점프'도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안정성 논란이 일면서 개장이 잠정 연기됐다.

3일 화장협곡대교에 번지점프를 위한 시설이 설치돼 있다. 안순(구이저우성)=이혜미 특파원
3일 관광객들이 화장협곡대교의 투명 유리 바닥 위를 걸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안순(구이저우성)=이혜미 특파원

'세계에서 가장 ○○한 다리' 기록 대부분 中 차지

구이저우성 안순시 관링현과 첸시난현 전펑현을 잇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화장협곡대교의 전경. AFP 연합뉴스

"중국은 단 한 세대 만에 토목 공학의 한계를 재정의하며, 외국 교량 건설 기술에 의존하던 국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대담한 교량을 건설하는 설계국으로 변모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한때 세계 교량 건설의 역사를 보려면 1970년대는 유럽과 미국을, 1990년대는 일본을 보라는 말이 있었지만, 2000년 이후로는 중국이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전 세계에 건설된 초장대교량(주경간이 약 1,000m 이상인 교량)은 약 30~35개 수준으로 파악되는데 그중 약 15개가 중국 내에 있거나 중국이 건설한 것이다. 2023년 기준 중국 내 교량 수는 100만 개를 돌파하는 등 양적으로도 팽창했다.

특히 토목공학 관점에서 다리의 주요 지지물 사이의 거리인 '주경간'은 교량의 공학적 복잡성을 평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 하나다. 초고강도 소재, 정밀 구조해석, 대형 장비 운용, 디지털 설계 기술이 복합적으로 결합돼야 하는 만큼 '초장대교량 건설 능력'은 한 국가의 재료공학과 구조공학, 산업 생산 체계, 프로젝트 관리 역량이 집약된 결과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AI)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표되는 첨단기술 만큼이나 중국의 '기술 굴기'를 보여주는 종합 역량인 셈이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장쑤성 창타이 창장대교를 개통하면서 주경간(1,208m)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사장교' 기록을 거머쥐었다. 주탑에서 교량 상판으로 직접 연결되는 케이블이 부채꼴 모양을 이루는 구조인 사장교 가운데 기존 주경간 기준 최대 기록은 2012년 완공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 대교였다.

그 밖에도 중국은 현수교와 해상대교 등에서 모두 각각 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장징가오 창장대교가 2028년에 완공되면 주경간이 2,300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밖에 '세계 최장 해상대교(강주아오대교·총 연장 55㎞)'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단쿤터 대교·164.8㎞)' 등 교량과 관련된 세계 기록 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2018년 개통하며 홍콩과 광둥성 주하이, 마카오를 잇는 '세계 최장 해상대교'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강주아오대교의 전경. 주하이=신화 연합뉴스

'다리 패권' 해외에 뻗치는 중국

중국은 왜 이렇게 교량 관련 세계 기록에 집착할까. 실제로 중국은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교량 기록을 토대로 '다리 패권'을 해외로 뻗치고 있다.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핵심 대외 정책으로 발표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주변국의 민생과 복지를 증진한다는 명분 아래 다른 국가(주로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며 대규모 사회인프라 시설 확충 사업을 진행해왔다.

2018년 9월 섬나라 몰디브는 2억 달러를 들여 중국 기술로 전체 길이 2.1㎞의 대형 해상대교인 시나말레교를 지었다. 같은 해 11월 아프리카 모잠비크도 중국의 기술로 전체 길이가 3㎞ 이상, 주경간 680m의 '아프리카 내 최대 현수교'인 마푸투 대교를 개통했다. 2022년 완공된 크로아티아의 펠레샤츠 대교는 유럽 내에서 중국 기술로 지어진 가장 규모가 큰 인프라 프로젝트인데, 중국의 유럽 내 영향력이 강화된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중국 관영 언론은 "중국이 참여한 인프라 건설 시설들이 세계 각지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중국 장비, 중국 건조, 중국 기술들이 많은 국가에서 활약하고 있다"며 "세계를 연결하면서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역량을 기여하고 있다"고 자찬했다.


화려한 '다리 기록' 이면엔...안팎서 부작용 속출

지난해 구이저우성 우멍산 지역에 건설된 우멍산특대교는 '세계 최초 장경간 철골 트러스 콘크리트 아치교’라는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우멍산특대교 건설 당시 모습. 인민일보 캡처

하지만 부작용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몰디브의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기준 72억 달러에 불과한데 중국에 진 부채는 31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은 몰디브의 핵심 인프라 사업을 대신 지어준 중국에 갚아야 하는 돈이다. 일각에서는 빚에 허덕이는 몰디브가 중국의 자금과 기술을 지원받아 항구를 건설했지만 부채를 갚지 못해 중국에 99년간 운영권을 넘겨야 했던 스리랑카 꼴이 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호주 외교정책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돈을 빌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75개국이 역대 최대 규모인 220억 달러(약 32조 원)의 부채를 중국에 상환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국내 교량 건설의 그림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계의 교량 박물관'이라는 별칭이 붙은 구이저우성에는 전체 3만2,000개가 넘는 교량이 있다. 세계에서 높은 다리 100위 내 절반 가까이가 구이저우성에 모여있다.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으로 꼽히는 구이저우성은 대규모 토목 공사로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2020년 '빈곤지역 명단'에서는 탈출했지만, 계속된 다리 건설로 2022년 기준 3,880억 달러(약 568조 원)의 빚을 떠안았다. 결국 중국 당국은 2024년 구이저우성을 포함해 지방 부채 위험이 큰 12개 성급 지방정부에 주요 인프라 시설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데 이르렀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화장협곡대교를 두고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진 세계 최고의 다리"라고 평가했다. 화려한 기록 뒤에 숨겨진 지방정부의 천문학적인 부채, 그리고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수 침체 상황 속에서 중국은 언제까지 '더 높고', '더 길고', '더 어려운' 다리를 지어낼 수 있을까.

중국 구이저우성 장커강 위로 건설되고 있는 고속도로 교량 구간. 중국 인민일보 캡처

안순(구이저우성)=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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