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선이 부산으로 향했다. 6년 만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무대 뒤에는 또 하나의 조용한 경쟁이 있었다. 그것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자동차 전쟁’이다. 각국 정상의 ‘전용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술력, 권력, 그리고 국가의 자존심이 모두 녹아 있다.

트럼프의 ‘더 비스트’, 달리는 요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산 땅을 밟자마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은 그의 손끝보다도, 바퀴에 있었다.
그가 탑승한 차량의 이름은 ‘더 비스트(The Beast)’.
이 괴물 같은 이름의 차량은 단순한 리무진이 아니라 이동식 요새에 가깝다. 제너럴모터스(GM)가 제작한 이 차량은 ‘캐딜락 원(Cadillac One)’이라는 공식 명칭을 갖고 있다.

무게는 약 9톤, 차문 두께만 20cm. 총탄, 폭발물, 심지어 화학무기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문이 닫히면 내부 공기가 완전히 밀폐돼 외부 오염물질이 들어올 틈이 없다. 심장부에는 고강도 강철 프레임과 복합 방탄 소재가 겹겹이 둘러져 있다. 그야말로 ‘달리는 백악관’이라 불릴 만하다.
비스트는 약 21억 원에 달하는 가격표를 달고 있지만, 그 안에는 미국의 군사 기술과 정치력의 상징이 응축돼 있다. 트럼프가 이 차량에 오를 때마다, 세계는 미국이 여전히 ‘힘의 나라’임을 떠올린다.
시진핑의 ‘훙치 N701’, 붉은 깃발의 위용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걸음은 ‘붉은 깃발(훙치, 红旗)’과 함께였다. 그의 전용차 ‘훙치 N701’은 중국 최고급 국산 리무진으로, 중국제일자동차그룹(FAW)이 개발했다.
이 차량은 무려 5억7000만 위안(약 1070억 원)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N701’은 시진핑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모델로, 연간 생산량이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하다. 길이 5.5m의 거대한 차체와 붉은 깃발 엠블럼은 중국식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차체 내부는 최고 수준의 방탄, 방폭, 화학 방호 기능을 갖췄으며, 외관은 롤스로이스를 연상케 한다. 중국 언론은 이를 두고 “중국의 기술 자립을 상징하는 작품”이라 평가한다.
시진핑이 훙치에 탑승할 때마다,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중국몽’의 이동식 선언이다. 자국 기술로 세계 정상 자리에 오르겠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자동차로 드러난 권력의 언어

두 정상의 전용차는 서로 닮은 듯 다르다. 둘 다 ‘방탄 요새’이지만, 철학은 극명히 갈린다.트럼프의 비스트는 방어와 위압의 상징, 시진핑의 훙치는 자존과 기술 독립의 상징이다.
트럼프는 세계 어디서나 자국 기술의 절대 우위를 과시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반면 시진핑은 외국 브랜드의 럭셔리카 대신 중국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이제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국 두 차량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각국 정상의 정치 철학이 바퀴 위에서 달리는 형태인 셈이다.
APEC 무대의 또 다른 대결

이번 부산 APEC 회담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치적 리턴 매치였다. 경제·안보·기술 패권을 둘러싼 긴장감 속에서 두 정상의 전용차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상징적이다. 미국의 ‘더 비스트’가 안보의 절대성을 상징했다면, 중국의 ‘훙치 N701’은 자립과 기술 굴기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대화만큼이나, 도로 위의 장면들 또한 외교의 언어였다. 트럼프의 캐딜락은 미국이 만든 철의 요새로, 시진핑의 훙치는 중국이 직접 깎아 만든 붉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한쪽은 제국의 힘을, 다른 한쪽은 제국의 자존심을 품고 부산의 거리를 달렸다.
기술과 정치, 그리고 상징의 전쟁

세계가 주목한 것은 그들의 정책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차’였다. 이는 단순한 자동차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 간 기술 경쟁의 은유다. 미국은 여전히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 무쇠의 차체를 자랑하고, 중국은 “우리는 이제 스스로 만든다”는 자신감으로 맞서고 있다.
결국 두 전용차의 등장은 21세기형 권력의 언어를 보여준다. 강철, 기술, 디자인, 그리고 그 위에 앉은 권력자. 부산 도심을 가르던 두 차량은, 세계 정치의 중심에서 누가 진짜 ‘운전석’을 잡을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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