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레핀의 러시아 혁명화와 풍속화③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이야기]
'표정 예술의 마법사' 레핀의 그림앨범
지친 혁명가를 대하는 가족들의 표정
부패한 사제의 성사를 조롱하는 혁명가
레핀, 러시아가 나아가야할 방향도 제시

민족의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

일리야 레핀의 혁명화와 풍속화는 시대 모습 그대로다. 과장이 없다는 말이다. 그림 속에 러시아 민중은 주인공으로 단단히 서 있다. 그림 속 민중은 헐벗고 고난에 차 있을지라도 비굴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현실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로 역사 속에서 예술이 보여줘야 할 가치를 2차원 화폭에 창조해낸 이가 바로 일리야 레핀이다.

레핀의 혁명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일리야 레핀(1844-19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60.5 х 167.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 역사 주제를 바탕으로 한 작품 중 최고로 꼽힌다면, 혁명을 주제로 한 레핀의 작품 중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가 있다. 2007년 11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에서 이 그림의 습작이 전시되기도 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그림이다.

2007년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에 전시되었던 레핀의 습작

오랜 유형을 끝내고 막 집으로 돌아온 혁명가와 그를 맞이하는 가족들. 그들 사이에는 쉽게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흐른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차르의 전제 정치에 항거하여 가정을 떠나 혁명지를 전전했다. 서로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혁명가는 대의를 위한 삶을, 고향의 가족들은 묵묵히 일상의 생활을 지냈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 낸 각각의 삶의 모습일 뿐이다.

그림 속 집안에 누구도 예견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래전에 집을 떠난 혁명가 가장이 집으로 돌아왔다. 긴 유형 생활을 끝내고 지친 영혼과 몸을 이끌고 돌아온 그의 모습은 많이 피곤하고 남루해 보인다. 설렘, 반가움, 낯설음, 긴장감, 미안함 등을 품은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혁명가의 얼굴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그렇게 삶의 무게에 지친 혁명가 뒤로 햇살이 화사하게 비친다. 사진의 역광처럼 밝게 비치는 빛 때문에 우리는 남자의 표정을 명확히 읽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을 혁명가로서, 죄수로서 고단한 삶을 살았을 그의 인생 역경이 어찌 하나의 표정으로 표현되겠는가? 혁명가의 표정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화사한 햇빛 속에 묻어, 보는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는 레핀의 천재성이 눈부실 뿐이다. 그림 속 남자의 심경은 어떠할까?

주인이라 하여 초라한 남자를 들여놓긴 하지만 하녀는 경계의 눈초리를 놓치지 않고 문고리를 잡고 서 있다. 그녀는 남자가 혁명의 길을 떠난 후 이 집에 고용된 듯하다. 또, 의자를 뒤로 빼며 엉거주춤 일어나 반가움과 놀라움을 표현하는 검은 옷의 여인은 1년 삼백 육십 오일 노심초사 아들을 기다렸을 어머니다. 얼굴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세월이 내려앉은 구부정한 어깨 위로 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반가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아내는 남편의 예고치 않은 귀환에 피아노를 치던 손을 멈추고 놀란 기색으로 바라보지만 그를 향한 눈빛이 무척이나 메말라 있다. 남편의 큰 뜻을 이해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이성의 인식은 충분하지만, 긴 세월 혼자 가정을 꾸려온 탓인지 남편을 향한 표정에는 놀란 기색만 역력하다.

목을 죽 빼고 아빠를 쳐다보는 아들은 그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는지 반가운 기색이다. 아니면 할머니에게서 익히 들어 혁명가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딸 아이는 기억 속 아빠의 존재는 없는 듯 초라한 남자의 등장에 경계의 눈빛만 가득하다.

그림 속 가족이 만들어내는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바로 삶이요 역사다. 19세기 러시아에 소용돌이친 혁명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세련된 작품이 있을까? '천만가지 표정 예술의 마법사'라는 레핀다운 그림이다.

그림은 밝고 화사한 빛이 등장인물 전체를 감싸고 있다. 레핀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인상주의의 찬란한 빛이 러시아 현실에 알맞게 옷을 갈아입었다. 바로 그 빛은 러시아 민중의 밝은 미래와 희망의 상징이 되어 늘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고해를 거절하다>

일리야 레핀(1844~1930), 고해를 거절하다, 1879~1885년, 캔버스에 유채, 48x59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자신의 일신을 버리고 역사를 위해, 민중을 위해 평생을 보낸 혁명가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그는 죽음이란 현실 앞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다. 조국을 위해 생을 다할 것이라 결심한 이후 한 번도 안락한 삶을 누려보지 않았다. 또 오랜 유형 생활로 육신은 병들고 찌들어 볼품조차 없어졌지만 맑고 숭고한 정신은 더욱 강인해졌다.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를 구원한답시고 위선의 사제가 나타나 '잘못을 고해하고 갱생하라'고 뻔뻔히 말한다. 사제는 혁명가 앞에 십자가를 들이밀며 목숨만은 살려 줄 것임을 함부로 약속한다. 사실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초연해질 수는 없다.

십자가를 응시하는 혁명가의 눈빛

하지만 혁명가는 자신의 진실하고 헌신적인 신념 앞에 흔들림이 없다. 그는 사제 손에 들려진 십자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고국의 아픈 현실을 위한 자신의 희생은 숭고한 것이며, 십자가의 축복으로 자신은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십자가를 응시하는 혁명가의 눈빛에서, 그리고 표정에서 수만 가지 심경을 읽을 수 있다.

그림 전체를 검은색과 회색의 칙칙함이 지배하지만, 부정한 사제를 어둠 속에 묻어 버리지만 십자가와 혁명가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비친다. 바로 진실의 빛이다.

레핀은 지하 신문 『인민의 의지』에 실린 니콜라이 민스키(1863-1885)의 시 「마지막 고해성사」를 읽고 감동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혁명가와 고해를 듣기 위해 그를 방문한 신부의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민스키의 시는 다음과 같다.

신이여, 용서하소서, 가난한 자들과 배고픈 자들을/
내가 마치 형제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신이여, 용서하소서, 영원한 선을/
실현 불가능한 동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레핀의 풍속화 :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

일리야 레핀(1844~1930),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 1870~1873년, 캔버스에 유채, 131.5x281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일리야 레핀을 일약 스타작가로 끌어올린 대표작이으로, 작가의 끈기 어린 노력 끝에 탄생된 작품이다. 작품을 구상한 1868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1870년, 마무리 한 1873년을 모두 합쳐 6여년 만에 완성된 대작이다. 20대의 레핀이 만들어낸 쾌거로, 이 그림을 계기로 '불세출의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그림은 11명의 남루한 차림의 노동자들이 가슴에 빳빳한 밧줄을 두르고 커다란 배를 힘겹게 끌고 있는 장면이다. 헐벗고 지친 모습으로, 혹사당하는 가축들처럼 커다란 바지선을 끌어올린다. 현실 속의 그들은 러시아 최하층민으로 누구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 속 그들은 현실의 참혹함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러시아 민중 그 자체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수많은 선박이 왕래하는 볼가 강은 항만시설이 부족해 수심이 얕은 곳에선 사람이 직접 배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하루의 끼니를 위해 짐승처럼 혹독하게 일하고 있는 그들이다. 레핀은 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실상을 고발했다. 그 표현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극적이라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극한의 작업으로 인해 찌들대로 찌든 인부들의 고통이, 대각선의 구도를 통해 마치 중력의 힘으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땅으로 꺼질 듯한 무게로 그려진 것이 아주 절묘하다.

성직자 카닌

성직자 카닌

무리의 맨 앞에 두건을 쓰고 있는 사람은 레핀이 존경했던 성직자 카닌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레핀 자신에게 많은 정신적 영향을 준 성직자 카닌을 민중의 현자로 제시하고 대열을 이끌어 가도록 했다. 암초에 걸려 침몰하는 러시아호를 이끌 정신적 수호자다. 지친 영혼을 다독이고 쓰러진 민중을 일으켜줄 지도자를 바라는 레핀의 염원이 성직자 카닌을 통해 발현된다.

미래의 해답 어린 소년

미래의 해답, 어린 소년

붉은 옷을 입은 무리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년은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향 즉 미래의 해답이 어린 소년이 쳐다보는 바로 그곳에 있는 듯이 말이다. 두툼한 밧줄이 소년을 짓누르지만 이겨낼 수 있다. 삶의 무게를 싣고 현실을 이끌어 미래에 도달할 주인공이다.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도도히 흘러갈 젊고 싱싱한 생명인 것이다.

현실의 인부

현실의 인부

고개를 돌려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깊이 패인 주름이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실의 고충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밧줄처럼 가슴을 옥죄는 '현실의 인부'다. 헤어나지 못할 현실의 무게에 오직 침묵만으로 버티는 러시아 민중들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괴로움을 토로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레핀은 이렇게 인부들 개개인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모순에 저항하고 가난을 이겨내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개혁의 주체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를 제시했다. 이를 악물고 끌어야 하는 바지선처럼 러시아 현실은 참혹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표류하는 조국의 배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일념에서 말이다. 새로운 역사가 될 변혁의 핵심은 러시아 민중임을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려 했다.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일리야 레핀(1844~1930),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1800~1883년, 캔버스에 유채, 175×28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시대를 반영하는 서사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도 압도적인 성과를 이룬 레핀의 대표 풍속화다. 특히, 레핀식 인상주의적 빛 표현이 완성되었다고 평가받는 그림으로, 화폭 전반을 수 놓고 있는 화사한 빛 표현은 압권이다.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은 러시아 전통 그리스 정교 행사 중 하나로 마을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이콘이나 성물을 들고 행진하는 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하나님의 은혜를 뿌려 마을 사람 모두가 이콘의 성스러운 은총을 고루 받게 한다는 취지의 종교 의식이다.

누가 보아도 황금색 자수 옷을 입은 사제와 이콘을 들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부자이며 지주인 여인이 행사의 핵심처럼 보인다. 살찐 권력의 표상으로 이콘에 가장 가까이서 모든 은총을 흡입하는 듯하다. 마치 그들에게만 은혜를 내려 현세를 축복받고 있는 사람들처럼 군다.

살찐 권력과 피폐한 민중

이미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이는 살찐 사제는 단지 지금 내리쬐는 햇볕이 성가실 뿐 하나님의 은혜엔 관심도 없는 듯 짜증이 묻어난다. 말을 탄 병사들은 살찐 권력을 비호하고 채찍을 휘두르며 살찐 권력과 일반 백성을 분리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은혜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넘치는지, 여인 두 사람은 이콘을 담는 상자마저도 성스러워 거룩한 자세로 신주 단지 모시듯 빈 상자를 운반하고 있다. 두 여인의 진지한 표정에 그녀들의 애틋함이 전해지지만 왠지 모를 쓴 웃음이 번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행렬 선두에 성물 제단을 든 검은 옷의 남자들은 마치 당시의 기우뚱거리는 러시아를 대변하는 듯 낡은 옷을 입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선두에 서서 러시아를 개혁하는 힘이 될 것이다.

밝은 자연광 속에 저 멀리 보이는 깃발과 뿌연 먼지 속으로 십자가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미래를 이끌어갈 러시아의 힘인 양 물밀 듯 밀려드는 수많은 사람, 바로 러시아 민중임을 말하는 듯하다. 특히 강물처럼 밀려드는 이 거대한 행렬 속에서 각 계층의 특징과 인물 개개의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다. 바로 레핀 만의 천재성이 또 한번 발휘되는 부분이다. 수많은 민중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피는 것 또한 이 그림을 감상하는 포인트다.

레핀의 그림은 '역사적 사명'이라는 에너지에 힙입어

레핀은 그림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민중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놓치지 않았고, 당대 러시아의 현실이 어떠한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려 했다. 행렬에 끼지 못하고 무리 언저리에서라도 성화의 축복을 받고 싶은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계층을 레핀은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말을 탄 절대권력이 헐벗은 그들에게 채찍을 내리치지만, 무자비한 채찍질에도 그들은 앞으로 쏟아지며 이콘의 성스런 축복에 다가가려 한다. 쓰러져 가는 현재를 구원 받고 싶은 러시아의 소망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현실의 러시아는 저 멀리 보이는, 오래된 가뭄으로 나무가 다 베어진 민둥산처럼 갈 곳 없는 비참한 현실이지만, 그림 전체를 화사하게 비추는 햇살은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

레핀은 어두운 러시아 현실을 꼬집듯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로 나아갈 힘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쏟아져 밀려드는 민중의 힘이 화사한 미래의 햇살을 에너지 삼아 현실의 어두움을 극복할 것임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명이 예술을 입어 더욱 견고해지는 레핀의 그림이다.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