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기, 브랜드는 반(反)을 넘어 합(合)으로 진화한다”
[비즈니스 포커스]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브랜드는 시대의 혼돈을 읽고 그 안에서 합(合)을 만들어내며 진화한다.”
문지훈 인터브랜드 글로벌 대표 파트너는 올해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 콘퍼런스의 주제를 ‘브랜드 정반합(正反合)’으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 질서는 근본적으로 흔들렸고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 브랜드는 더 빠르게, 더 유연하게 움직이며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인터브랜드는 6월 17일 콘퍼런스에서 정(正)이라고 믿어온 브랜드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反)의 방식으로 시대를 재편한 브랜드들의 사례를 살펴 합(合)으로 정의되는 브랜드 전략을 제시했다.
이날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한국의 50대 브랜드 가치 순위인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에선 이번에도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 네이버, LG전자가 ‘톱5’ 자리를 지켰다. 외형상 큰 변화는 없어 보이지만 브랜드 가치의 상승률을 살펴보면 이들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LG전자는 전년 대비 40.9% 상승했고 기아(16.6%), 현대차(14.6%), 삼성전자(12%) 순으로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 브랜드 시장을 들여다보면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상위 10개 브랜드의 가치는 평균 10.7% 상승했지만 11위부터 50위까지의 40개 브랜드는 평균적으로 -1.1%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는 전년 대비 9.6% 성장했지만 상위 10개 브랜드에 집중되는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브랜드 양극화와 신유통의 부상…삼양식품 신규 진입
문 파트너는 “올해는 브랜드 양극화, 금융 브랜드의 강세, 신유통의 메인스트림화 등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졌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강한 브랜드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분석했다.
유통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은 더 뚜렷해졌다. 다이소는 9.8%, CJ올리브영은 8.5%의 브랜드 가치 성장을 기록했고 순위도 각각 49위에서 44위, 33위에서 31위로 상승했다. 반면 이마트(-10.4%), GS리테일(-4.9%) 등 전통 유통 강자는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며 대조를 이뤘다. 문 파트너는 “‘신유통’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다이소와 CJ올리브영은 이제 메인스트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소비자와 브랜드가 연결되는 방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해 순위에 신규 진입한 삼양식품(47위)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단일 브랜드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넘겼다. 제품 가격이 1250원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특히 이 브랜드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 틱톡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퍼진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를 통해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와 놀이문화로 연결되며 성장했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연결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러한 연결은 금융 브랜드 순위에서도 드러난다.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14개의 금융 브랜드가 50대 브랜드 안에 포함됐다. 특히 1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증가가 증권사의 브랜드 가치 성장을 견인했다.
문 파트너는 “사람들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기댈 수 있는 브랜드가 금융 브랜드”라며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더 지혜롭고 슬기로운 금융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브랜드들이 강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LG전자, B2B 성장세에 브랜드 가치 40% 급등
또 하나의 흐름은 기업간거래(B2B) 브랜드의 약진이다. LG전자는 2021년 스마트폰 철수 이후 코어 비즈니스 부재의 위기가 있었지만 B2B 사업에서의 반전이 시작됐다. VS사업본부(차량용 전장)와 ES사업본부(냉난방공조·HVAC)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인도법인 IPO 추진 등 긍정적인 사업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을 장식한 글로벌 캠페인 ‘Life’s Good’을 통해 글로벌 인지도도 한껏 끌어올렸다. “대기업의 B2B 비즈니스에서 삼성의 반도체사업이 지난 10년을 이끌어왔다면 향후 10년은 LG전자의 B2B가 이끄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문 파트너는 전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신규 진입도 주목할 변화다. 연매출 4조원을 돌파했고 글로벌 ‘톱20’ 제약사 중 17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CDMO(위탁개발생산) 분야에서는 이미 글로벌 1위 자리를 굳혔다. B2B 기반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네트워크와 사업 확장성 덕분에 브랜드 가치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문 파트너는 “이건희 창업자가 2010년 바이오·제약업을 10년 먹거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현실로 구현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B2B 산업 전반이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짚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순위에 오르지 못한 조선·방산 기업을 예로 들었다. 수주-인도 사이의 긴 시간차와 실적 변동성 때문에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는 불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텔레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대표주자인 CJ ENM, 하이브, SK텔레콤의 가치 하락에 대해선 “실적 악화, 평판 리스크(어도어 사태, 해킹 등) 등 일회성 이슈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도약 위한 ‘끌림과 공감’은 과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은 과제로 남았다. 현재 삼성, 현대차, 기아, LG를 제외하면 인터브랜드의 ‘100대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2024년 기준)에 진입한 한국 기업은 아직 없다.
글로벌 브랜드 평가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5개 대륙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아시아 외 지역에서 전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이 발생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확보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B2B 중심이거나 국내 시장에 집중돼 있어 이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SK그룹 내 LG전자보다 큰 계열사들이 많지만 대부분 국내 기반 사업이라 글로벌 브랜드 순위에 포함되기 어렵다”며 “오라클이나 GE처럼 B2B 영역에서도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기업만이 글로벌 랭킹에 오를 수 있다”고 문 파트너는 말했다.
B2B 브랜드는 대중 노출이 적어 인지도가 낮고 따라서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에선 불리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한국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으로는 감성적 끌림의 부족이 지적됐다. 제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은 우수하지만 브랜드 자체가 주는 정서적 매력, ‘이끌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 파트너는 애플의 ‘비하인드 더 맥(Behind the Mac)’ 캠페인을 예로 들며 “우리는 노트북을 노동을 위해 쓰지만 애플은 맥북 뒤에 아티스트가 있다며 ‘아티스트가 사용하는 도구’로 맥북을 포지셔닝한다. 품질 좋은 랩톱이 아닌 정서를 파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약점은 ‘비전 얼라인먼트’다. 한국 기업들은 전략 수립에는 강하지만 그 비전을 조직 구성원들이 실제로 이해하고 체화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다. 테슬라나 스페이스X처럼 비전이 내부에 뿌리내린 기업일수록 브랜드가 강력해진다는 점에서 향후 비즈니스 전략에서 브랜드 전략의 내재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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